[프라임경제] 현대모비스(012330) 램프사업부 매각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한 고비를 넘겼다. 고용승계와 연구개발 거점 유지 등을 담은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면서 프랑스 OP모빌리티를 상대로 한 매각 절차도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갈등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합의안은 찬성률 52.2%로 가까스로 문턱을 넘었다. 찬성 187표, 반대 169표. 표 차이는 18표에 그쳤다. 매각을 받아들이되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론과 사업부 매각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반발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의미다.
현대모비스가 마주한 질문도 달라졌다. 이제 쟁점은 램프사업부 매각 성사 여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램프에 이어 범퍼사업부 매각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현대모비스의 사업 재편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가 더 큰 논란으로 떠올랐다.
현대모비스는 미래차 핵심 영역에 집중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조정이라고 설명하지만, 노조는 이를 사업부별 구조개편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월 OP모빌리티와 램프사업 매각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램프사업부는 차량 전·후면 조명 시스템을 개발·생산하는 조직으로, LED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지능형 조명 시스템 등을 담당한다.

현대모비스가 내세운 방향은 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oftware Defined Vehicle, SDV), 전장 부품 등 미래차 핵심 분야로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산업 흐름만 놓고 보면 낯선 선택은 아니다. 자동차 부품사의 경쟁 축은 이미 바뀌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와 SDV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부품사도 기계 부품 공급 중심의 사업 구조만으로는 성장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전장, 반도체, 통합제어, 소프트웨어, 로보틱스 같은 분야에 더 많은 연구개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해졌다.
현대모비스가 기존 부품사업 일부를 정리하려는 배경이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제한된 사업을 덜어내고, 미래차 전환에 필요한 기술 영역으로 투자 역량을 옮기겠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현대모비스의 재편이 보통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합의안 통과에도 남은 52.2%의 의미
이번 합의안에는 재직 직원 100% 고용승계, 국내 마북·의왕 R&D 거점과 연구인력 규모 유지, 노조와 기존 단체협약 유지, 매각 이후 고용 안정·생산물량·투자·사업 운영 관련 정기 보고 및 협의 등이 담겼다. 최종 매각합의서 체결 전 인수사와 노조, 현대모비스가 3자 합의를 진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조항들은 램프사업부 매각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치다. 매각 이후 고용과 노조 지위, 연구개발 거점, 국내 생산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제도화한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모비스가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다른 사업 재편에도 부담을 남겼다.

특히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명의의 서명이 합의문에 담기게 된 대목은 가볍지 않다. 노사 합의의 직접 당사자는 자회사인 현대IHL(아이에이치엘)과 노조지만, 원청인 현대모비스가 협상 과정과 합의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금속노조가 이를 원청 책임을 끌어낸 성과로 평가하는 이유다.
현대모비스 입장에서는 램프사업부 매각을 마무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받아든 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범퍼사업부 등 다른 사업 재편 과정에서도 노조가 같은 수준의 원청 책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 번 만들어진 협상 구조는 다음 갈등의 기준이 되기 쉽다.
노조가 이번 매각을 일회성 거래로 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원용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모비스EBS천안지회장은 지난 13일 현대모비스 본사 앞 결의대회에서 "이번 램프 사업 매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합의안 통과 이후에도 이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램프사업부의 갈등은 봉합 국면에 들어갔지만, 현대모비스의 사업 재편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승우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안양지회장도 매각과 구조개편 이후 구조조정, 전환배치, 외주화, 노동강도 강화 등의 부담이 현장 노동자에게 집중돼 온 사례를 거론하며 책임 있는 소통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번 합의안에 고용승계와 단체협약 유지, R&D 거점 유지가 포함된 것도 이런 현장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또 박상만 금속노조 위원장은 매각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부담이 결국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매각 당일의 고용 유지에 그치지 않는다. 매각 이후 남는 조직의 재배치, 물량 확보, 투자 지속성, 외주화 가능성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있다.
◆범퍼사업부로 옮겨가는 구조개편 쟁점
램프사업부 합의안이 통과됐지만, 현대모비스의 구조개편 쟁점은 이제 범퍼사업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투자은행업계와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가 해외 범퍼 생산 거점 매각을 추진 중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매각 대상은 미국, 멕시코, 중국, 슬로바키아, 브라질 등에 위치한 해외 범퍼 생산 거점으로 알려졌다.

범퍼사업부 매각 가능성에 대해 현대모비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사업 효율화 방안을 다양하게 추진해왔다"면서도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설명했다. 램프사업부 매각과 달리 범퍼사업부는 해외 생산 거점과 영업권이 중심으로 거론되는 만큼, 회사도 공식화의 폭을 조절하는 분위기다.
인수 후보로는 OP모빌리티, 서연이화, 에코플라스틱 등이 거론됐다. 특히 OP모빌리티는 램프사업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도 이름을 올린 곳이다. 매각 대상 해외 범퍼 생산 거점 5곳의 자산 규모는 4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매각 방식은 통매각보다 지역별 분할매각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램프와 범퍼가 각각 다른 거래로 진행되더라도, 두 사업이 동시에 매각선상에 오른 것만으로 현대모비스의 재편 방향은 분명해진다. 전통 하드웨어 사업 비중을 줄이려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쟁점도 램프사업부 하나의 노사 갈등에서 기존 부품사업 전반의 정리 기준으로 옮겨간다.
현대모비스가 전동화와 SDV 중심의 기술 회사로 방향을 잡는다면 사업 재편 자체는 산업 변화와 맞물린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업을 남기고 어떤 사업을 파는지,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자회사, 원청의 책임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대한 설명은 별개의 문제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차그룹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논란을 키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에서 현대차, 현대차에서 기아, 기아에서 다시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핵심 부품 계열사이면서 지배구조의 주요 고리다.

이 때문에 현대모비스의 사업 구성 변화는 늘 지배구조 질문과 함께 따라붙는다. 2018년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분할하고 일부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했지만, 주주 반발 속에 철회했다.
이후 현대모비스의 사업 재편은 단순한 체질 개선으로만 소비되지 않았다. 회사의 기업가치, 사업 분할 가능성, 그룹 지배력 문제와 함께 해석돼 왔다.
이번 논란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현대모비스가 램프와 범퍼 같은 기존 부품사업을 덜어내면 회사의 사업구조는 더 선명해질 수 있다. 전동화, 전장, SDV, 로보틱스 중심의 성장 스토리도 강화된다. 반면 노동계와 시장 일각에서는 그 과정을 사업부별 매각을 통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여지가 생긴다.
현대모비스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미래차 전환이라는 큰 방향만으로는 부족하다. 매각 대상이 된 사업의 기준, 남겨질 핵심 사업의 경쟁력, 매각 이후 고용과 기술 역량 유지 방안, 원청 책임의 범위, 그룹 지배구조와의 관계까지 설명해야 한다.
이번 합의로 램프사업부 매각은 절차상 중요한 고비를 넘었다. 그러나 52.2%라는 찬성률은 현대모비스 구조개편을 둘러싼 내부 불안이 작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현대모비스 대표 서명이라는 원청 책임의 선례, 범퍼사업부 매각 가능성, 순환출자 구조라는 지배구조 문제가 겹쳐 있다.
현대모비스의 사업 재편은 미래차 시대를 향한 체질 개선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사업부별 매각으로 이어질수록 질문은 더 구체적으로 바뀐다. 현대모비스는 어떤 회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다음 장면과 어디까지 맞닿아 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매각의 속도보다 설명의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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