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중동 사태 확산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과 성장 둔화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가격과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경기 흐름까지 흔들리며 향후 경제 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판단에서다.

이 총재는 10일 기준금리 동결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중동전쟁으로 물가의 상방 압력·성장의 하방 압력이 동시에 증대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향후 중동 사태 관련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사태의 추이와 파급 영향을 좀 더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50%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각 금통위원의 기준금리 전망인 포워드 가이던스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2.0%)를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성장 경로는 중동 사태 전개 상황과 통상환경 변화, 반도체 경기·내수 회복 흐름 등에 크게 영향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물가는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환율 변동성 확대 등의 영향으로 상방 압력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이 총재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 전망치 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보이고, 근원물가 상승률도 지난 전망치 2.1%보다 다소 높아질 것"이라며 "다만 국제유가와 환율의 움직임, 정부 대책의 효과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 결정의 가장 큰 변수로는 중동 사태의 전개 방향을 지목됐다. 이 총재는 "중동 사태가 여기서 끝나느냐, 그다음 에너지 인프라 손실이 있느냐 없느냐"라며 "이것이 가장 크게 경기 예측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 3월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은 당시 "중동지역의 상황전개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하다"는 문구를 정책결정문에 새로 추가했다. 중동 사태를 핵심 변수로 본 점에서 한국은행의 판단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번 공급충격을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비교하면서도 차이점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러·우전쟁 당시 팬데믹 기간 중 억눌렸던 수요가 확대되면서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국면에 있어 전쟁 충격이 경기 둔화보다는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상승 압력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며 "반면 이번에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아시아 지역이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는 데다, 경기 개선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상황에서 공급 충격이 발생해 물가와 경기 간 상충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러·우전쟁 당시와 비교해 환율 수준이 크게 높아져 있고 팬데믹 이후 고인플레이션을 겪은 만큼 경제 주체들이 물가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기대 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원·달러 환율은 중동전쟁에 따른 달러화 강세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로 1500원대로 높아졌다가 미·이란 임시휴전 이후 하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외국인의 주식 매각 액수가 478억달러로 작년 한 해 전체 70억달러의 7배에 달한다"며 "현재 환율은 중동 사태와 외국인 매도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면에서 지난해 11~12월과는 차이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이란 사태가 안정되면 환율이 빠른 속도로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며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물가가 2.2%인 상황에서 추경까지 더해져 "이 상태가 종결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은 적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되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간다면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8일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도 스태그플레이션과 관련해 "현재로선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한 바 있다.
신 후보자는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반도체 경기 호조,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등이 충격을 일정 부분 완충할 것"이라면서도 "전쟁이 길어져 물가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확대되면 통화·재정 정책을 포함한 여러 정책을 함께 활용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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