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소은 기자 2024년 ‘강남역 교제 살인’ 과 ‘거제 교제 살인’ 등 최근 교제폭력이 생명을 위협하는 강력범죄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별도의 법적 근거는 부재한 상태다. 현장에서는 ‘가정폭력처벌법’상 임시조치나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를 빌려 쓰고 있다. △피해자 주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메시지·이메일 등 연락 금지 △유치장 구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준용하고 있는 제도 자체의 결함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보호의 주체여야 할 피해자의 신청권이 배제되고 짧은 보호 기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재판 끝나기도 전에 보호 종료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접수 건수는 2014년 6,675건에서 2022년 1만2,841건으로 92.4% 폭증했다. 범죄는 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법안은 부실하다.
현재 준용 중인 임시·잠정조치는 기간이 너무 짧다. 임시조치는 최대 6개월까지 가능하며 잠정조치 역시 최대 9개월에 그친다. 반면 관련 사건의 1심 판결까지는 평균 15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가해자의 보복 위험이 큰 재판 과정 중에 법적 보호 장치가 먼저 사라지는 ‘보호 공백’이 발생하는 셈이다.
해외 주요국은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김혜미 입법조사관의 ‘관계성 범죄 피해자 보호조치의 한계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법원이 추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사실상 기한 없는 보호를 제공한다. 미국 워싱턴주 역시 보호 종료 전 판사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직접 대면 심리해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보호조치 연장 제한 완화를 통한 보호 지속성 강화를 제안했다.
보호조치 여부의 결정권이 수사기관에만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임시·잠정조치는 수사기관이 신청하고 법원이 결정하는 방식이다. 수사기관이 위험성을 낮게 판단해 신청을 기각할 경우 피해자는 무방비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스토킹 신고가 3차례나 접수됐음에도 “스토킹이 반복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이 조치 신청을 기각해 피해자가 살해된 사례가 발생했다.
◇ ‘피해자보호명령’ 실효성 확보 관건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피해자보호명령’이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보호를 요청하는 제도로 최대 3년까지 보호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행법상 해당 제도는 ‘가정폭력처벌법’에만 한정돼 있을 뿐 스토킹·교제폭력의 경우 신청권을 갖지 못한 상태다.
문제는 제도 도입 시 실효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제도를 시행 중인 ‘가정폭력처벌법’에서조차 절차가 까다롭고 법원의 심리가 느려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실효성이 떨어지다 보니 실제 보호명령 신청 건수는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스토킹처벌법 내 보호명령을 도입함과 함께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해자가 홀로 싸우지 않도록 미국처럼 법원 내 ‘절차지원관’을 배치해 문턱을 낮추고, 전담 법관과 조사관 인력을 확충해 신청 즉시 24시간 이내에 발령될 수 있는 신속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치권 내에서도 ‘피해자보호명령제’ 도입 논의는 물살을 타고 있지만 결국 관건은 실효성 있는 시스템 구축이다. 교제폭력이 연일 발생하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 설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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