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여성은 꽃’이라는 북한, ‘후계자 김주애’ 가능할까

시사위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북한 대중가요 가운데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곡이 있다. 가정을 알뜰살뜰 돌보는 존재로 여성을 자리매김 시키며 그들이 없으면 ‘생활의 한 자리가 비어 있으리’라는 서사를 풀어간다. 서정적인 1절 가사와 달리 2절로 넘어가면 ‘아들딸 영웅으로 키우는 꽃’이라며 북한 체제의 특성을 드러내는 대목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우리 사회의 정서나 성(性) 평등 의식에 비춰보면 여성을 ‘꽃’에 비유한다는 게 부적절하게 비춰지고 비난까지 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북한에선 남녀 모두에게 인기리에 불린다. 아직 북한사회가 여성의 인권문제나 남녀평등 같은 인식에서 한참 멀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도 체제 차원에서 여성을 각별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이 ‘3.8 국제부녀절’로 부르며 기념하는 세계여성의 날도 그 중 하나다. 지난 8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행사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연설을 하며 여성과 어머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겉과 속이 좀 달라 보인다. 발언 자체로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차원이지만, 그 내막은 ‘혁명을 위한 희생·헌신’을 촉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설에서 “우리 여성들 특유의 힘과 재능 그리고 더없이 고결한 자기희생적인 헌신으로써 우리 혁명이 더욱 빨리 전진하게 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우리 여성들은 이 나라를 보다 화목하고 부강하게 하는 데서 큰 역할을 놀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에 불법 파병됐다가 북한 당국의 세뇌·강요 등으로 자폭한 병사들을 염두에 둔 듯 “우리 군인들이 생사를 판가름하는 싸움판에서 그토록 용감한 것도 조국이라는 성스러운 부름 속에 안겨오는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안해(아내), 사랑하는 애인, 사랑하는 딸들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 하려는 마음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름 스위스에서 조기유학하며 서방세계를 경험했고, 올해 42살 난 청년세대 최고지도자라 일컬어지는 김정은 위원장의 안타까운 여성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인식은 엘리트 간부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한 탈북 엘리트 외교관은 요즘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느라 바쁘다. 북한에서 살 때는 “재떨이를 가져오라”면 군말 없이 ‘대령’했었는데, 한국에 정착한 뒤에는 “자기가 담배 피우는 데 왜 나한테 재떨이를 가져오라 하느냐”며 불만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이 외교관은 “이게 다 남조선 TV드라마를 보고 배운 때문”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봉건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여전한 데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북한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인식은 미미한 수준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성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하대가 만연해 있고, 특히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 2월 열린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드러난 핵심 간부들의 구성이나 면면을 보면 ‘남성 독식’이 확연히 드러난다. 당 대회 대표자 구성과 노동당 정치국과 비서국, 당 중앙위원회 멤버 구성에서 여성의 진출이나 인사발탁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확인된다.

당 대회 대표 구성의 경우 모두 5,000명의 대표자 가운데 여성은 413명에 불과해 8.2%에 그쳤다. 고위직책으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져 북한 권력의 중추인 노동당의 중앙위원(후보위원 포함)은 249명 중 여성은 4명으로 추산돼 1.6%에 불과했다.

중앙위원에회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총무부장과 측근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현송월 당 부부장이 포함됐고, 최선희 외무상도 이름을 올렸다. 후보위원에는 여성동맹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향순이 유일했다.

특히 권력 최고 핵심부로 가면 여성의 비율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黨)국가’ 체제인 북한에서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김정은 위원장을 ‘수위(首位)’로 박태성 총리, 조용원 당 전 조직담당 비서, 김재룡 당 부장, 리일환 정치국 위원 등 남성 4인방 체제로 꾸려졌다. 당 정치국 위원으로는 최선희 외무상, 후보위원으로는 김여정 부장이 각각 유일한 여성이다. 장관급에 해당하는 당 중앙위원회 전문부서 부장의 경우 17명 중 김여정 부장만 포함됐다.

물론 예외는 있다. 바로 김정은 위원장과 그 일족을 지칭하는 이른바 ‘백두혈통’ 측면에서는 확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일성·김정일 통치 시기엔 여성들이 은둔을 강요받았다. 이들의 복잡한 여성편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배우자들조차도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존재감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엔 평양 안방권력을 틀어쥔 여성들이 매우 활발하게 공개 활동에 나서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8 국제부녀절’ 행사는 이를 잘 보여줬다. 이 자리엔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와 딸 주애는 물론 최근 노동당 부장으로 승진한 여동생 김여정과 수행비서 역할을 해온 현송월, 최선희 외무상 등 권력 내 여성 핵심 인물들이 총출동했다. 축하공연 무대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총애를 토대로 우리의 ‘국민가수’ 반열과 비견되는 인물인 김옥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인 건 후계자로까지 여겨지는 김주애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만연한 북한 체제의 특성은 딸 주애를 4대 세습 후계자로 내세우는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숙제를 던진다. 국가정보원이 최근 김주애가 후계 ‘내정 단계’라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는 등 예상보다 발 빠른 권력승계 구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탈북민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주애 후계 구축에 있어 북한 주민들이 ‘여성 후계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북한이 ‘후계자론’ 등을 통해 여성의 후계자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양성평등 의식이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상교양과 선전·선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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