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핵심 무대가 개별 기술에서 도시 단위 실증으로 옮겨가고 있다. 차량 자체의 기술력만으로는 자율주행 상용화를 설명하기 어려워지면서, 이제는 △차량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이 결합된 생태계 구축이 경쟁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현대자동차(005380)와 기아(000270)가 국내 자율주행 실증 사업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자율주행 실증도시 조성사업' 일환으로 추진되는 'K-자율주행 협력모델'에서 자동차 제작사와 운송 플랫폼사 두 부문에 동시에 선정되면서다.
이번 사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시 단위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실증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증 대상 지역은 광주광역시 전역이다. 특정 구간이나 시험도로가 아닌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험하며, 실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 개발과 제도 정비, 산업 표준 수립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그동안 제한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테스트 트랙이나 일부 지정 구간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복잡한 도시 교통 환경에서의 운영 능력이 필수적이다. 보행자, 교차로, 대중교통, 다양한 차량 흐름이 얽혀 있는 실제 도로 환경에서 기술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자율주행 실증도시 사업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도시 단위 실증을 통해 대규모 실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기술 표준과 제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 K-자율주행 협력모델은 △차량 제작사 △자율주행 기술 개발사 △서비스 플랫폼이 협력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단일 기업 중심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개방형 협력 모델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현대차·기아는 이번 사업에서 두 가지 핵심 역할을 맡는다. 첫 번째는 자율주행 개발 전용 차량 제작이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 기업들이 각자의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맞춤형 차량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센서 장착, 차량 제어 시스템 연동,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등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검증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이는 최근 자율주행 산업에서 등장한 차량 파운드리 개념과 유사하다.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가 설계 기업을 위해 생산을 맡는 것처럼, 완성차 기업이 자율주행 개발사를 위한 차량 플랫폼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현대차·기아는 이미 이런 방식의 협업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자율주행 기업과 협력해 아이오닉 5 기반 로보택시 차량을 공급하며 전용 차량 제작 역량을 쌓아왔다.
이번 실증 사업에서도 자율주행 기술 개발사들이 실제 도시 환경에서 기술을 시험할 수 있도록 차량 기반을 제공하고, 실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주행 데이터를 공유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가 맡은 두 번째 역할은 운송 플랫폼 운영이다. 이번 실증 사업에는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셔클(Shucle) 플랫폼이 투입된다. 셔클은 AI 기반 수요응답형 교통 서비스 플랫폼으로, 차량 호출과 배차, 경로 최적화, 차량 관제 기능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자율주행 서비스에서 플랫폼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차량이 자율주행을 하더라도 서비스 운영과 차량 관리, 이용자 연결은 결국 플랫폼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셔클 플랫폼은 이미 국내 여러 지역에서 실증 경험을 쌓아왔다. 2019년 이후 전국 30여 개 지자체에서 운영되며 수요응답형 교통 서비스 운영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이번 자율주행 실증 사업에서는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량·플랫폼·이용자를 연결하는 통합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사업은 자율주행 산업 경쟁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초기 자율주행 경쟁이 센서와 알고리즘 같은 개별 기술 개발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차량·소프트웨어·플랫폼이 결합된 생태계 구축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웨이모(Waymo), 테슬라(Tesla) 등이 각각 다른 방식의 자율주행 생태계를 구축하며 경쟁하고 있다. 중국 역시 도시 단위 자율주행 서비스 실증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번 실증도시 사업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뿐 아니라 서비스 운영 모델까지 동시에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셈이다. 특히 완성차 기업이 차량 제작과 플랫폼을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는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완성차 기업의 역할이 단순 제조를 넘어 서비스 인프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로 위에서 실제 서비스로 운영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실제 교통 환경에서의 안정성 검증과 서비스 운영 경험이 필수적이다. 광주에서 진행될 이번 실증 사업은 이런 과정을 도시 단위에서 시험하는 첫 사례다.
차량, 자율주행 기술, 플랫폼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데이터 확보와 기술 고도화, 제도 정비를 동시에 추진하는 실험이 시작되는 셈이다. 자율주행 산업이 기술 경쟁 단계를 넘어 서비스와 생태계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실증 사업이 국내 자율주행 산업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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