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에 남은 한국전의 기억, 다시 다듬는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지만, 그 기억은 국경 밖에도 남아 있다. 필리핀 마닐라 국립 영웅묘지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비는 그 상징이다. 참전비는 약 7m 높이의 삼각기둥 형상이며, 상단에는 국제연합(UN) 엠블럼과 함께 한국·필리핀 양국의 국기가 부착돼 있다. 

전사자 112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 기념비와 인근 한국전 참전 기념관이 새 단장을 앞두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국가보훈부와 함께 시설 보수와 환경 개선에 나서면서다.

필리핀은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 한국전 파병국이다. 필리핀 한국 원정군(PEFTOK) 7420명이 다섯 개 전투대대로 참전했고, 상당수가 귀환하지 못했다. 1967년 건립된 참전비는 오랜 시간 양국 우방 관계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부터 참전비 개보수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정비 작업은 균열과 변색을 보수하고, 계단과 바닥 대리석을 교체하는 물리적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안내판과 상징 조형물을 설치해 방문객의 접근성을 높이고, 공간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또 참전비에서 약 1.2㎞ 떨어진 한국전 참전 기념관도 개선 대상에 포함됐다. 2012년 건립된 이 공간은 전쟁 기록물과 사료를 보관·전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건물 보수와 가구 교체를 진행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리모델링 여부도 검토된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현지 사회와 연결되는 교육·문화 공간으로 기능을 확장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사업은 필리핀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양측은 다른 한국전 참전국의 추모시설 환경 개선도 검토하고,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과 관리에서도 협력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기업의 공간 기획 역량과 공공의 보훈 정책이 결합되는 지점이다. 기념물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기억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시설과 독립운동 사적지를 보존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역사적 가치를 전하는 일이다"라며 "국가보훈부와 협력해 해외 참전용사들과 독립운동가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현대차그룹은 필리핀에서 재난 대응 차량과 물품을 지원하는 '현대 휠스 온 더 고!(Hyundai Wheels on the Go)',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호프 인 어 백 프로젝트(Hope in a Bag)' 프로젝트 등 현지 밀착형 활동을 이어왔다. 기술 교육 프로그램과 장학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현지 유력 일간지 필스타(Philstar)는 이런 활동이 재난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교 77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에서 이번 정비 작업은 과거를 기리는 동시에 미래를 설계하는 행보로 읽힌다. 전쟁의 기억을 어떻게 보존하고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중요해진다. 마닐라의 참전 추모공간은 다시 정비되지만, 그 공간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기억을 잇는 일은 외교이자, 세대 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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