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청운동=이민지 기자 2026년 2월 26일. 유난히 푸른 하늘 아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송파 세 모녀’ 1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생활고 끝에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막 편지와 월세‧공과금을 남긴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세 사람.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흐른 지금, 빈곤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풍경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2014년 서울 송파구 한 단독주택 지하방에서 발생한 세 모녀의 죽음은 한국 복지 사각지대 현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건 직후 정부와 국회는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이라는 이름으로 제도 개선에 나섰다. ‘국민 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하고,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빈곤 사각지대 해소를 약속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는 반복되는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전 모자 사망’ ‘익산 모녀 사망’ 등 빈곤이 배경이 된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을 통해 소득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중단되는 급여 체계,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여전히 남아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대표적인 제도적 한계로 지적된다.
이날 추모식은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추모 기도와 참석자들의 분향으로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안타깝게도 12년 동안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그저 지역만 달리하며 계속 반복돼 왔다”며 “새로운 세 모녀가 전국 곳곳에서 나타났고, 지난해 강남에서도 또 한 명의 죽음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어 “12주기를 맞아 우리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염원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는 수급당사자들과 사회복지 분야 관계자들이 참석해 추모의 뜻을 더했다. 수급당사자모임 ‘모힘’의 추경진 회원은 “(장애인 시설에서) 탈시설한 지 10년이 됐고, 그 사이 정부는 네 번 바뀌었다”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사각지대 해소 하겠다’ ‘찾아가는 서비스 하겠다’고 했지만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죽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탈시설 당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며 “사회생활을 하는 자녀가 두 명 있지만 가족과 단절된 상태다. 그런데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비가 삭감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준이 일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생활이 위협받을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빈곤 정책은 축소한 채 AI 복지에만 힘을 쏟고 있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세 모녀가 빈곤의 늪에 빠진 중요한 이유는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남겨진 병원비였다”며 “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았지만 병원비가 없어 치료받지 못했고, 작은딸은 생활비와 병원비로 쌓인 빚 때문에 신용불량 상태에 놓였다. 어머니는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절망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코스피 6,000을 찍어서 희희낙락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제 규모가 유사한 나라들은 최소한 아플 때 치료는 사회가 책임진다. 몸이 아픈 사람이 치료 받을 때 생활비를 보장해 준다”며 “송파 세 모녀가 힘들 때 국가는 냉혹했고, 병원은 치료를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OECD 국가 중 가계 의료비 부담이 가장 높고,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 상태인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아픈 사람을 탓하고 부담을 주는 의료급여 정률제 추진부터 멈추는 것이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며 “이재명 정부 첫해 예산에서 건강보험과 공공의료 예산은 축소되거나 배정되지 않았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 예산도 30% 삭감됐다. AI를 말하기 전에 복지 축소부터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추모식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계획 수립 △발굴 중심이 아닌 제도 개선 중심의 접근 △AI가 아닌 권리 중심의 사회보장제도 전환 등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대통령실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윤영 활동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죽음으로 발견되는 사람들의 방치된 시간을 모아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며 “대통령이 가난한 이들의 삶의 무게를 알고 있는지, 정말 원한 가득 담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을 잊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음이야말로 빈곤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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