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휴민트’에서 신세경이 연기한 채선화는 생존을 향한 의지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인물이다. 두 남자의 구출 서사 한가운데 서 있지만 결코 기다리는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신세경은 조용하지만 강력하고 깊이 있는 감정으로 선화를 단단하게 빚어내며 짙은 여운을 만든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이들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 첩보 액션물이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지난 1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신세경은 과한 감정 대신 박건(박정민 분) 앞에서의 미묘한 시선, 조 과장(조인성 분)과의 긴장 속 인간적 온기, 그리고 결정적 순간 터져 나오는 감정까지 분명한 온도 조절로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처음 도전한 북한 사투리 역시 과하게 도드라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조율하며 현실감을 더했다. 최근 신세경을 만나 ‘휴민트’ 속 채선화와 마주한 과정을 들어봤다. (*해당 기사에는 결말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결과물은 어떻게 봤나.
“스크린을 통해 드라마든 영화든 내가 스스로 한 건 객관적으로 보기 너무 어렵다. 기술 시사 때 직접 보기는 했지만 객관적이지 않으니 (관객이) 어떻게 보실지 되게 궁금했다. (시사회 후) 재밌게 봐주셨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내 연기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워서 걱정 반 설렘 반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감상으로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특히 그런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부분도 너무 재밌었지만 감독님이 진두지휘한 많은 액션도 관객의 입장에서 너무 잘 봤다. 아주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선화를 구하기 위해 두 남자가 자동차 엑셀을 부앙 밟지 않나. 그때 심장이 두근하는 기분이 있었다. 그 후에서 계속 ‘채선화, 채선화’ 하잖나. 그게 아주 설레더라.(웃음)”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류승완 감독님 작품이라는 게 너무 기뻤고 시나리오 자체도 재미있었다. 후루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그 안에서 내가 맡아야 하는 캐릭터 역시 매력적인 지점들이 많아서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거의 바로 결정을 했던 것 같다. 채선화가 삶에 대한 의지를 아주 강하게 지닌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런 여성상을 연기하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스스로가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보니 작품이나 연기를 통해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캐릭터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생존을 향한 의지가 강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점이 크게 다가왔다.”
-두 남자가 구하는 인물이지만 기다리기만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어떻게 다가왔나.
“어떻게 보면 내가 그런 여성상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했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채선화는 가장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상황 안에서 되게 심플한 느낌으로 표현이 돼 그렇지, 선화가 살아온 삶을 텍스트로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정말 보통의 결단력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길을 걸어왔더라. 그래서 자기가 책임지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아주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생존을 위한 열망이 굉장한, 아주 의지가 강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 식당 종업원으로서, 휴민트로서 그리고 박건 앞에서 다른 얼굴로 서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진짜 얼굴과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생존이다. 나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박건뿐이라서 골목 앞에서 옛 연인을 마주했을 때 본연의 민낯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숙소에 혼자 있을 때 고뇌하는 신이나 달러를 숨기는 신 같은 경우에도 큰 폭으로 이 캐릭터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대략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그 신도 그렇게 담겼다고 생각한다. 잔잔하게 깔려 있는 생존을 위한 선화의 몸부림 같은 것들이 선화의 민낯이 아닐까.”
-박건을 향한 선화의 감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는다.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고자 했나.
“선화랑 박건이 헤어지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가족과 연관돼 있다.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치료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가 밀수를 하다가 걸렸고 그걸 담당한 게 박건이었다. 양쪽이 다 이해되는 상황이라서 둘의 운명이 기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건을 다시 재회했을 때 선화의 감정은 사실 너무 위험한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근처에 오지 않길 바라는, 위험한 상황을 감당하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하다, 내 일이니까 그렇게 밀쳐내는 게 컸다고 생각한다. 선화는 그간의 삶에서 얻은 삶의 태도 때문에 힘듦을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거든. 절제된 느낌으로 보이다가 결정적 순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자신의 감정 표현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조 과장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했나.
“인간적인 유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정서는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절대 어떤 선을 넘는 수준은 아니었다. 조 과장의 경우 한 번 그런 뼈아픈 경험을 한 게 있기 때문에 자기 휴민트를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고 선화의 경우는 인생이 진짜 가시밭길인데 그 가운데에서 일말의 온기라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게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일종의 유대감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상황도 굉장히 복잡하다. 조 과장과 함께 등장하는 신들이 영화 구성상 긴박하게 정보 전달을 하거나 긴장감이 있거나, 100% 믿어도 되는지 아직은 불안한 상황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를 함께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절제된 톤을 유지하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시나리오나 콘티북에는 선화의 리액션이 구체적으로 적혀있진 않았다. 감독님과 현장에서 논의를 거친 부분들이 있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는 상황이니까 선화가 시각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도 궁금했다. 감독님과 논의를 거친 끝에 지금 완성된 대로 그런 리액션을 보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선화의 마음속에 아주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겠지만 사실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이 들더라.”
-절절한 사랑 연기를 해본 소감도 궁금한데.
“되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영화를 그냥 관객처럼 앉아서 감상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여운이 되게 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영화의 후반부에 짙게 깔리는 그 정서 그대로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또 이 영화가 어떤 관계만 주로 훑는 작품은 아니잖나. 여러 가지가 다 공존하는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짙은 여운을 가져가는 건 아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투리 연기를 향한 호평도 많다. 특히 노래를 부를 때도 억양을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준비 과정은.
“사투리 연기를 하는 게 처음이다.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편이라 항상 새로 도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게 뭐 대단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항상 모든 작품이 나에겐 큰 도전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사투리를 써야 하는 부분까지 있어서 부담이 있었다. 달리 지름길이 없어서 북한말 선생님으로부터 열심히 배우고 녹음해 주신 파일을 받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했다. 내가 한 걸 녹음해서 들어보고 입에 익었을 때는 까먹지 않도록 계속 다시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캐릭터에 맞게 또래 여성, 그리고 평양 사람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 지도를 받았다. 어쨌든 평양 여자니까 가사를 읽을 때도 북한말로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신은 단순히 노래만 선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박건과의 재회, 사랑하던 시절에 내가 선물로 줬던 노래, 그 노래의 가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신이라 사투리가 너무 과하게 도드라지지 않게 신경을 썼다. 그렇지만 북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느낌은 남아있도록 유지하려고 했다.”
-고문 당하는 신 촬영은 어땠나. 쉽지 않았겠더라.
“물 공포가 심하다. 시나리오가 너무너무 다 매력적이지만 이걸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다행히 안전하게 촬영하기 위해 대역분이 현장에 있었고 무리 없이 아주아주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물고문을 당하는 행위 자체도 영화 전체에 있어서 중요하지만 행위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감정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건과 선화의 표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놨지만 서로를 보는 눈에서 정말 다양한 감정이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때 정말 사랑했던 사이이고 원망도 있고 성장한 사람들이니 각자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텐데, 어떤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게 될까 생각했다.”
-총기 액션 장면도 있었다.
“대단히 익숙하고 그런 액션을 소화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표현을 했다. 감독님이 워낙 베테랑이기 때문에 액션 같은 경우는 특히 더 디테일하게 지도해줬다. 손과 발의 방향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감독님이 원하는 느낌을 전달해 주면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하는 느낌으로 임했다.”
-류승완 감독의 현장은 어땠나.
“정말 정말 녹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액션 시퀀스를 찍어내는 과정들이 그랬다. 액션 연기라는 게 그냥 의지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가져가게 됐다. 그리고 그게 되게 근사했다. 그런 엄청난 사이즈의 신들을 찍어내는 데 있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다 감독님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나. 엄청난 것들을 책임져야 되는데 나 같으면 진짜 그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더라. (류승완 감독이) 워낙 베테랑이고 너무 잘 아니까 그런 결정들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들이 개인적으로 너무 존경스럽고 멋졌다. 감독님은 직접 시범을 보이시고 현장에 뛰어나가시는 등 솔선수범하는 느낌이 확실히 있다. 그런 점들이 배우들로 하여금 온전히 감독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안전에 있어서도 되게 철두철미하게 신경을 많이 쓰셨던 기억이 있다.”
-조인성·박정민·박해준과의 호흡은.
“조인성 선배는 되게 좋은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장시간 머물면서 촬영을 했던 독특한 현장이었는데 해외에서 긴 시간을 머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그동안 지치거나 힘들어하는 동료, 후배 배우들이 없도록 많이 신경 써 줬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분들까지 엄청나게 살뜰하게 챙겼다. 선배 촬영 분량도 만만치 않아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끝까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되게 많이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박정민 선배 같은 경우 나는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는 거라 현장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었는데, 선배는 이전에 작업해 본 경험이 있어서 내가 감독님의 현장에 더 빨리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되게 많이 의지했다. 다른 선배 두 분에 비해 비교적 나와 나이 터울이 적은 또래 배우이기도 한데,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부분을 따라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박해준 선배는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독특한 빌런의 탄생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그런 리듬이 영화에서도 잘 묻어난 것 같아서 아주 즐거웠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같이 있으면 늘 웃게 되는, 아무리 힘들고 지쳐있는 상황일지라도 웃게 되는 해피바이러스 같은 에너지를 지닌 분이라, 선배지만 함께 있으면 너무 편안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분들도 박해준 선배와 같이 있으면 웃고 있더라. 현장에서 인기가 정말 많았다.”
-선화의 결말은 어떻게 다가왔나.
“의미하는 바가 여러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조 과장의 대사를 통해 나오듯 선화는 정말 모든 걸 다 잃지 않았나.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가운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 말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 캐릭터를 통해 발견했던,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삶을 향한 의지가 잘 드러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남은 삶이 가시밭길일지라도 그걸 꿋꿋이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엔딩이자 대사라고 생각해서 그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엔딩에 나오는 장소가 시골 마을의 소극장 같은 곳인데, 거기서 선화가 자의 일도 하고 무대 정리도 하며 지내고 있다. 워낙 무대를 좋아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렇게 소박하고 작지만 자신만의 삶을 다시 새롭게, 작은 문이긴 하지만 개척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대로 끝까지 잘 그려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의 방향성과 앞으로의 생각은.
“지금보다 비교적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을 상상하게 되고, 구체적인 실체가 보이지 않을 때도 고민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다기보다는 주어지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소화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마음으로 매 작업에 임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대중 예술인으로서 관객분들, 시청자분들, 팬분들이 보고 싶어 해야 그분들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감사하게도 꽤 긴 시간을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를 찾아주시는 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온도로 계속 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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