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로봇이 호텔 체크인을 돕고 인공지능이 맛집을 추천하는 시대다. 하지만 정작 고객이 느끼는 결핍은 그 어느 때보다 깊다.
최근 한 컨택센터 녹취분석하다 이런 사례를 들었다. 부모님 상을 당해 급히 예약을 취소하려는 고객에게 "규정상 환불이 불가합니다"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상담이었다. 업무 처리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나 고객의 슬픔과 당혹감이라는 '맥락'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필수 안내 멘트는 다 했지만,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우수 사례는 만들지 못했다.
우수 사례를 찾으려고 콜을 분석해 봐도 매뉴얼대로 하는 상담만 나온다. 문제는 '시키는 대로 겨우 하는 상담'만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유머러스한 기내 안내, 세일즈포스의 전설적인 고객 응대 사례들은 모두 고객이 말하지 않은 영역, 즉 그가 처한 배경과 감정의 파고를 헤아리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고객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규정 너머의 인간적 온기를 전하는 태도가 곧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많은 상담사가 감정 노동의 피로 속에서 평정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덤덤함,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밋밋한 상태로 상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생한 경험 없이는 진정한 공감도, 창조적 응대도 불가능하다.
무감각한 사람이 어떻게 고객의 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기계가 못하는 사려 깊은 고객 경험 디자인은 오직 상담사 자신이 스스로를 사려 깊게 관찰할 때 가능하다. 내 안의 경험을 세밀하게 감각할 수 있어야 비로소 고객의 경험도 헤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경험에 대한 감수성을 깨우는 세 가지 단계를 제안한다.
첫째, 자동 모드로 일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자율주행 모드로 산다. 익숙한 민원을 처리하며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고객을 판단한다. 그건 '경험'이 아니라 '입력된 처리'일 뿐이다. 예를 들어, 화난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진상이네"라고 자동으로 분류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의 구체적인 상황을 놓친다. 내가 지금 개념과 기억에 의존해 반응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기계적인 대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다.
둘째, 불편한 경험도 온전히 느껴야 한다. 좋은 경험 나쁜 경험 가리지 않고 알아차리고 느껴야 한다. 상담 업무 중 마주하는 슬픔, 창피함, 고통 같은 불편한 경험을 억누르다 보면 모든 경험에 무감각해진다. 불편한 경험은 결코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창피함이나 멍청해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화를 계속 누른 사람이 어느 순간 폭발하듯, 경험을 거부할 때 부작용이 생긴다. "나는 긴장된다"라고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대신, "나는 지금 긴장이라는 경험을 하고 있구나"라고 분리해 수용할 때 감정을 다룰 근육이 생긴다. 롤러코스터가 익숙해지면 공포가 즐거움이 되듯, 불편한 감정도 온전히 마주하면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온다.
셋째, 경험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단순히 맛보고 듣는 감각적 차원을 넘어, 그 경험을 음미하고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신난다'라는 형용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신을 내는' 창조적 행위가 필요하다.
일반인이 마시는 와인과 소믈리에가 마시는 와인의 경험은 다르다. 소믈리에는 향과 맛을 구분하고, 그 미묘한 차이를 언어로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경험의 감수성이 높아져야 고객이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 고객의 곤경을 알아차리고, 고객의 부끄러움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우수 상담 사례가 나온다.
이제 컨택센터의 임무는 오상담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기계가 못하는 우수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자전거 타기처럼 한 번 일어설 수는 있지만, 계속 연습해야 한다. 연습하면 할수록 더 빨라지고, 성실한 시행착오는 뇌의 지도를 다시 그려준다.

우리의 응대 방식은 뇌가 길러낸 습관과 태도의 산물이다. 스스로의 세계에서 경험을 창조하는 자만이 고객의 세계를 비추는 진정한 하이터치를 실현할 수 있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 성신여대 외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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