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외국인’ 책임경영 실종…MBK·쿠팡, 수조원 버는 실질 총수 누구?

마이데일리
김병주 MBK 회장이 지난 10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에 대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관계자와 이야기는 나누고 있다. /마이데일리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김범석 쿠팡 의장을 둘러싼 책임경영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미국 국적을 보유한 두 사람은 한국 시장에서 성장해 수조원의 가치를 일궜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해외 법인과 지배구조 뒤로 숨는 ‘검은 머리 외국인’ 논란의 중심에 섰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김병주 회장과 김범석 의장은 각각 사모펀드와 플랫폼 산업을 대표하는 경영자로, 국내 주요 산업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두 기업 모두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최근 경영 위기와 대형 사고 국면에서 지배주주의 책임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 핵심은 국내에서 발생한 경영 실패와 사고의 부담은 내부와 사회가 떠안는 반면, 국적과 지배구조를 앞세워 법적 책임의 중심을 해외 법인에 두면서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구조적으로 책임에서 비켜서 있다는 점이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1963년 10월 8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해버퍼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학업을 마친 뒤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와 홍콩 지사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살로먼스미스바니로 자리를 옮겼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국 정부의 약 40억달러 규모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작업에 참여하며 국제 금융시장 경험을 쌓았다.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칼라일그룹에 합류해 한미은행 인수에 관여하며, 사모펀드 업계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2005년에는 MBK파트너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MBK라는 사명은 김 회장의 영문 이름 ‘마이클 병주 김(Michael Byungju Kim)’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MBK에서 유통·금융·미디어·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대형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딜라이브, 롯데카드, ING생명(현 신한라이프생명보험), 코웨이, 두산공작기계(현 DN솔루션즈)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일부 거래에서는 성공적인 투자 회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있지만, 차입을 활용한 인수 구조와 단기 재무 전략을 둘러싼 논란 역시 반복돼 왔다.

이 같은 논란이 가장 집중된 사례가 홈플러스다. MBK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인수한 이후 점포 매각과 자산 유동화, 재무 구조 조정 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유통 환경 악화와 실적 부진 속에서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현재 홈플러스는 유동성 악화로 이달 직원 급여를 한 차례에 지급하지 못하고, 일부를 나눠 지급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등 현금 부족이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원은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오는 29일까지로 정해 놓은 상태다. 이 시한까지 인수자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절차가 폐지돼 파산·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 회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책임 회피 의사는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위기 국면에서 대주주로서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투입하거나 고용 안정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MBK의 지배구조상 최상단에 김 회장 개인이 위치해 있는 만큼 책임의 귀속은 비교적 분명하지만, 실제 책임 이행은 제한적으로 드러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김범석 의장. /쿠팡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한국 전자상거래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1978년 10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의장은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쿠팡을 창업했고, 대규모 물류 투자와 자체 배송 시스템을 앞세워 사업을 확장했다. 쿠팡은 지난해 연매출 41조원을 넘기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주요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다만 성장 과정에서 논란이 이어졌다.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사고와 화재 사고가 잇따랐고, 최근에는 약 3700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불거지며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김 의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 책임을 설명하거나 사과한 사례는 없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쿠팡은 경영진 교체에 나섰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국 법인 대표였던 박대준 대표는 물러났고, 후임으로 쿠팡Inc의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인 해롤드 로저스가 임시 대표로 선임됐다.

그러나 대표 교체 이후에도 김 의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서도 김 의장 본인은 출석하지 않았고, 대신 로저스 임시 대표가 증인으로 나와 질의에 응했다.

쿠팡이 2021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이후 김 의장이 한국 법인의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난 점도 책임 논란과 맞물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김 의장의) 지분율은 높지 않지만 차등의결권 구조를 통해 쿠팡Inc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위기 상황에서 책임 주체가 구조적으로 흐려진다"고 분석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쿠팡Inc의 지난해 연매출 약 303억달러 가운데 90% 이상은 한국에서 발생했으며,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 매출 비중은 개별 국가 기준으로 5%를 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 국적과 미국 법인 중심의 지배구조를 이유로 김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지 않고 있으며, 동일인을 법인인 쿠팡Inc로 지정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이 개정됐지만, 김 의장은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두 사례가 현행 제도가 형식적 지배구조에는 민감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지배주주의 실질적 책임을 묻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두 사람 모두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미국 국적과 지배구조를 활용해 법적 책임에서 비켜선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범석 의장이 국회 출석조차 거부하며 침묵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정서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쿠팡의 절대적인 창업자이자 최종 책임자인 만큼, 최소한 직접 성명문을 통해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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