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산업현장의 경고음이 다시 울렸다. 얼마 전 울산 화력발전소 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산업현장의 안전 강화 대책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 온 처벌·규제 중심의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산업안전 정책에 조세정책을 결합하자는 새로운 접근법이 제기됐다. 중대재해 예방을 형사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재정·세제 중심으로 확장해 보다 실질적인 안전투자를 유도하자는 취지다.
◇ 조세특례 활용,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 제안
20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국회의원 권칠승·소병훈·민병덕·박홍배·이용우 의원과 세금정의실천연대, 민변 복지재정위원회가 공동 주관한 ‘조세특례제도를 활용한 산업재해 감소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좌장은 김갑순 동국대 교수(한국회계학회 회장), 사회는 김상철 세무사(세금정의실천연대 사무차장)가 맡았다. 발제자로 나선 김신언 동국대 겸임교수(세무사/미국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사고는 줄지 않고 처벌도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며 “산업재해 예방에 조세정책을 본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신언 교수는 먼저 중대재해가 줄지 않는 구조적 원인으로 ‘비용절감 중심 경영’을 지목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098명으로 건설업 23.6%(496명), 제조업이 22.6%(476명)를 차지했다. 재해자 역시 두 업종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사고의 상당 부분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 교수는 “안전설비나 안전인력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으면 사고는 반드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비용은 즉시 지출이지만 사고는 ‘나중에 책임을 지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아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 대상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까지 확대했음에도 효과가 낮은 이유도 설명했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곧바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압수수색과 문서 분석 등 방대한 조사를 필요로 해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된다. 김 교수는 “사고 직후 기업이 느끼는 불이익이 거의 없다 보니 안전투자보다 비용절감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며 “처벌 중심 정책만으로는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조세특례를 활용한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을 제안했다. 핵심은 조세 인센티브와 제재를 결합한 이중 구조다. 먼저 △안전설비 투자 △보호구 구입 △위험작업자 2인 근무 전환 △제조업의 3교대 전환 등 안전관리비 증가에 대해 전용 세액공제를 신설해 기업이 적극적인 안전투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는 방안이다. 현재도 일부 안전설비에 대한 세액공제가 존재하지만 여러 항목에 통합돼 있어 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김 교수는 “안전설비 전용 세액공제를 별도 조항으로 신설해야 한다”며 “기업이 안전에 투자해도 재무제표가 나빠지지 않도록 조세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중대재해 발생 시 해당 연도의 조세특례를 전면 제한하는 ‘즉시 제재’ 방식이다. 사고가 나면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 △고용증대세액공제 △투자세액공제 등 각종 조세혜택을 받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는 형사처벌처럼 경영책임자의 의무위반 입증이 필요 없고, 사고 발생 사실만으로 바로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김 교수는 “특히 건설·제조업처럼 세제혜택 규모가 큰 업종에서는 체감 효과가 압도적으로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의 조세특례까지 함께 배제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위험 공정이 하청으로 이전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원청이 책임을 지지 않는 이상 산업재해는 구조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원청에 조세상 손해가 발생해야 관리·감독 인센티브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조세특례를 산업안전정책에 활용하려면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은 특정 법률에 한해 세제 혜택 또는 제한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김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조세특례제한법과 지방세특례제한법 안에 포함시켜 조세정책과 산업안전정책을 연계해야 한다”며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도 산업안전정책의 핵심 플레이어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세미나는 산업안전정책이 형사·행정 규제 중심에서 경제·재정정책으로 확장될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조세특례는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돼 근로자 안전과 국민 생명은 후순위였다”며 “산업재해 감소를 위해 조세정책을 안전정책의 핵심 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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