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언제나 진심을 다한 연기로 보는 이를 설득하고야 마는 배우 전소니가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로 한층 깊어진 내공을 입증했다. 죄책감과 용기가 교차하는 인물의 상처와 성장을 섬세한 감정선으로 그려낸 그는 “누군가를 이해하다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고 캐릭터에 다가간 과정을 떠올렸다.
전소니가 열연한 ‘당신이 죽였다’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나오미와 가나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드라마 ‘악귀’ ‘VIP’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은 이정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7일 첫 공개된 ‘당신이 죽였다’는 공개 2주 차 더 큰 화제를 얻으며 국내외에서 인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78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다. 또 한국을 포함, 아르헨티나·오스트리아·프랑스·이탈리아·멕시코·뉴질랜드·필리핀 등 총 71개 국가에서 TOP 10 리스트에 오르며 흥행 순항 중이다.
극 중 전소니는 조은수를 연기했다. 은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다 자신과 비슷한 고통 속에 있는 친구 희수(이유미 분)를 구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다짐하는 인물이다. 전소니는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연대하는 이야기 속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의 감정을 내밀하게 표현하며 몰입을 이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전소니는 캐릭터 구축 과정부터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 작품에 임한 마음가짐 등 ‘당신이 돌아왔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마음을 다한 연기 뒤 어떤 고민과 시간이 있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원작의 팬이었다고. 대본을 받고 감회가 새로웠겠다.
“5~6년 전에 친구가 재밌다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유독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영화가 되면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그러고나서 잊고 지냈다. 그 후 2년 뒤쯤 영화화된다는 소문을 듣고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다’며 찾아봤지만 접점이 없었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흘렀고 그 영화가 시리즈가 되고 넷플릭스로 오고 ‘당신이 죽였다’라는 제목으로 나한테 왔다. 되게 신기했다. 대본을 받았을 때는 책을 읽은 지 오래돼서 원작과 차이를 느끼기보다 ‘어디서 본 이야기 같은데’ 싶어서 물어보니 원작이 맞더라. ‘이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하겠다고 했다.”
-작품이 다루는 주제 자체가 쉽지 않다. 부담감은 없었나.
“그런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읽고 상상만 해도 상쾌하진 않은 이야기다 보니까. 하지만 감독님과 배우들의 생각은 1, 2부에서 조금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더라도 은수와 희수에게 공감이 되고 이 친구들의 편이 돼주고 싶을 때 이야기가 전개돼야 진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보기 어려웠을 수 있는데도 봐주신 분들께 더 감사한 마음이다.”
-소재가 예민한 만큼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어떻게 다가갔나.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먼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사람마다 다 다르고 내가 모르는 경우의 수도 있을 수 있으니까 감독님, 희수(이유미)와 함께 공부하고 관련된 책도 읽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각자 주변에 그런 경험이 있던 사람들도 있어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대변하는 건 누구에게도 자격이 없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연기를 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으니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도달할 순 없지만 최소한 이 인물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전에 주어진 시간을 전부 쓰는 것 같다.”
-은수를 연기하며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어려운 인물이었다. 어떤 일을 겪고 상처가 남았을 때 그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잖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이게 정답’이라 정해두고 어떻게 해서 이렇게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은수는 과거 엄마를 구하지 못한 기억이 후회로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일에 욕심이 큰 사람으로 자라났다고 봤다. 언젠가 엄마를 데리고 나와 아빠 없이도 둘이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자신도 모를 만큼 초인적인 힘으로 달려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이룬 결과다 보니 엄마의 현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바로 행동하지 못하잖나. ‘본인 일일 땐 못 하면서 왜 희수는 구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나는 그 흐름을 이해해야 했는데 한 번의 경험으로는 그런 결심을 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은수의 행동은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죄책감,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누적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떨어져 있던 동안 ‘지금은 아닐 거야’ 하고 부정하던 현실을 엄마를 통해 보게 됐는데 다시 또 희수를 보게 되는 연쇄적인 게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깊게 들어간 만큼 빠져나오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은수와 희수가 각자의 자유를 찾는 결말로 끝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갑자기 해외에서 촬영이 끝나다 보니, 너무 다른 나라로 가서 마지막 촬영을 하게 돼서 끝나는 게 엄청 실감이 나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뭐랄까. 은수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이자 현장이 끝나는 순간이라 다른 작품들보다 엄청 실감이 났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오니까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되게 이상하더라. 공허하고.”
-먼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만약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걸 알게 된다면 실제로는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
“나는 솔직히 은수처럼 대담하진 못하다. 그래서 오히려 연기하면서 좋았다. 내 눈엔 은수가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자기 걸 다 던지고 나아갈 수 있는 인물이라 ‘이걸 누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극 안에서나마 그걸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은수가 희수를 구하기도 하지만 희수에게 힘이 돼주는 주변 사람들이 또 있다. 나는 우리 작품에서 아랫집 여자분을 되게 좋아한다. 정말 짧은 대화 한두 마디로도 누군가가 행동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생존자분들도 누군가에게 모든 걸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들의 하루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길 바라는 마음일 거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현실이라면 나도 희수와 함께 가능한 방법부터 찾아봤을 것 같다. 그리고 일단 같이 있었을 것 같다.”
-가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냥 모든 폭력이 (가해자도) 다 한 번만 똑같이 당해봤으면 좋겠다. 법정에서 처벌 같은 것도 어렵고 한데 그냥 다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당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인 것 같다. 뭐라 말한다고 시원하겠나.”
-액션 장면도 많았다. 주짓수도 배웠다고.
“한 두세 달 정도 준비했다. 주짓수라는 운동 자체가 굉장히 방대한 기술을 요하는데 은수가 해야 할 동작들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그것만큼은 누가 대신하지 않아도 되게 열심히 연습했다. 주짓수가 되게 깔끔하지 않은 운동이더라. 물고 늘어지고 잡아당기고 엉켜서 하는 운동이다 보니 대역을 쓰기 어려워서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노력했다.”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이 있나.
“은수가 희수를 구한 게 은수가 어린 은수도 구하기도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장면을 써줘서 너무 좋았다. 다 그렇다고 하잖나. 우리 모두 마음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실제로 어린 은수에게 손을 잡아주고 꺼내줄 수 있어서 좋았다.”
-최후의 진술 장면에서 두 인물의 성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
“나는 항상 이야기 안에서 인물들이 이 사건을 통과한 후에 그 이전과 달라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은수가 강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희수처럼 똑같이 흔들렸겠지만 희수가 그런 상태니까 그 친구를 버티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그런 상태로 있었던 거다. 그리고 희수는 결국 자신이 자신의 자유를 얻어냈을 때 강인함이 생겨났던 것 같다. 최후의 진술을 할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희수에게는 이렇게 해줄 수 있었지만 결국 은수의 마음엔 한 명 더 있잖나. 그래서 뭔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고 해냈지만 해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여전히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은수의 말들은 그 법정 안에 놓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서 그냥 속상했다. 은수가 힘이 있고 히어로 같은 거라서 뭔가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밖에 못했던 자신이 후회가 되는데 누구라도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은수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했던 것 같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이)유미는 희수와 정말 다른 사람이다. 웃음도 많고 밝고 정말 비타민 같은 인간이다. 만날 때마다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웃고 떠들었다.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 힘들 수 있지만 현장에선 꼭 그렇게 있을 필요는 없다’고 서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둘 다 그런 타입이 아니라 현장에서는 즐겁고 밝게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연기할 때는 희수와 유미가 명확히 구분되는 느낌이라 재밌었다.
장승조 선배는 엄청 다정하다. 항상 ‘밥 먹었어~?’ 물어보고 특유의 말투가 있어서 엄청 귀여웠다. 선배가 괜히 수줍어하고 그러니까 ‘선배님 왜 이렇게 잘생기셨어요? 진짜 좋겠다 잘생겨서’하면서 장난도 많이 치고 현장이 늘 밝았다. 이무생 선배는 실제로도 정말 ‘진사장님’ 같은 분이었다. 속이 잘 안 보이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긴장하게 만드는 데 동시에 내가 힘들 때는 확실히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든든함이 있었다. 그런 기운이 현장에서 연기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은수와 희수 그리고 이 작품을 만난 후 연기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변화나 성장이 있었다면.
“은수를 하면서 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나는 되게 솔직해졌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만큼 했다. 사실 은수가 되게 이해가 됐거든. 그래서 은수를 연기하는 동안 편안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 인물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가면서 갑자기 나에 대해 깨닫게 된 게. 멍하니 앉아서 ‘은수가 이랬겠지, 저랬겠지’ 생각하면서 수첩에 적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겠더라. 나한테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어떤 인물을 이해하다가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구나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게 되고 싶은지 몰랐거든. 그런데 은수를 만나면서 뭔가 그랬겠구나 하고 잊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선택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시청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건 이야기잖나. 시작할 때는 가짜라고 생각하고 보다 그때서야 진짜라고 느끼면 좋겠다. 영화든 드라마든 어쨌든 극이잖나. 그러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마음을 가볍게 받아들여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그 핑계를 딛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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