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협의이혼을 앞두고 작성한 이른바 '재산분할 합의서'가 이혼 후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혼 직전의 혼란한 상황에서 서둘러 작성한 문서가 시간이 지난 뒤 한쪽에 불리하게 작용하면, 당사자 중 한 명은 "그건 진정한 합의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았으니 무효다"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던 A씨는 2019년경 협의이혼을 준비하며 남편과 재산분할에 대해 서면으로 합의했고, 그 무렵부터 남편은 파주시 운정에 별도의 거처를 마련해 별거를 시작하였다. 이후 남편은 김포시로 이주하였고, 두 사람은 결국 2025년 2월 협의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A씨의 전 남편은 "그때 작성한 재산합의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합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재산분할 합의서가 언제 작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법적으로 유효한지는 단순히 이혼일자나 서명 여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핵심은 해당 문서가 당사자 간의 실질적인 합의와 의사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는지, 그리고 재산분할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 아래 체결되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대법원 역시 협의이혼 전에 체결된 재산분할 합의서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일방 당사자에게 현저히 불이익하지 않으며, 작성 과정에서 강박이나 기망 등 의사표시에 하자가 없다면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즉, 각자의 재산 내역과 분할 비율, 이전 방법 등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고, 그 합의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면, 이혼 이전에 작성된 문서라고 해도 법적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2019년부터 별거가 시작되었고, 사실상 결별 상태에서 재산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작성된 합의서라면, 이는 장래의 이혼을 전제로 한 재산분할 약정으로서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 물론 협의이혼이 최종적으로 성립되지 않았다면 무효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해당 문서가 '이혼 시 효력을 발생한다'는 조건부 또는 유보적 합의로 해석될 수 있는 경우에는 여전히 그 효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무적으로는 재산분할 합의서의 문구, 체결 당시의 정황, 서명 및 날인 여부, 그리고 상대방의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특히 "이혼이 확정되면 이 합의 내용에 따라 재산을 분할한다"는 표현이나 "향후 재산분할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 해당 문서는 단순한 의견 교환 수준을 넘어 재산분할 청구권 자체를 포기하는 계약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합의 내용이 일방 당사자에게 과도하게 불리하거나,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도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분할이 이루어진 경우, 그리고 그 과정에 강요나 착오 등의 정황이 존재한다면, 법원은 해당 합의를 무효 또는 일부 무효로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뒤늦게 "속았다"거나 "당시에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며 재산분할을 다시 청구하더라도, 합의서의 작성 경위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명할 수 있다면 유효성을 방어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와 같은 사안은 사실관계와 법리 판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혼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대응하는 것을 추천한다.
결국, 협의이혼 전에 작성한 재산합의서라도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공정하며, 자발적으로 체결된 것이라면 법적으로 유효하다. 이혼보다 먼저 썼다는 이유만으로 효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간보다 '의사'다.
이혼은 5년 뒤에 했더라도, 합의는 이미 끝났을 수 있다. 뒤늦게 "그땐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서명은 이미 진심처럼 남는다. 사람의 마음은 변해도, 합의서의 문장은 그대로 남는다. 식은 감정은 잊히지만, 그때 또박또박 적은 A4 한 장은 법정에서 끝까지 기억된다. 사랑은 찰나였지만, 서명은 책임이었다. 결국 법정에서 웃는 쪽은, 그때 조용히 펜을 들었던 사람이다.
김광웅 변호사(이혼전문) /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제37기 수료/ 세무사 /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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