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한·미 관세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연되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요 시장에 ‘현지 전문가’를 전진 배치하고 있다. 중국·인도·일본·미국 등 핵심 시장별 환경에 맞춘 인사 전략으로 판매 회복과 수익성 개선, 공급망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모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그룹의 합작사 베이징현대는 리펑강 전 제일자동차(FAW)·폭스바겐 부총경리를 신임 총경리로 임명했다.
리 총경리는 청화대에서 기계 설계·자동차를 전공했으며, 2003년부터 FAW폭스바겐에서 근무하며 중국 합작법인 구조와 현지 소비자 수요에 모두 정통한 인물이다.
현대차는 지난 2016년 180만대를 팔며 중국 시장을 호령했으나 지난해 판매량은 20만3000대로 추락하며 점유율이 1% 아래로 떨어진 상황이다. 현대차는 리 총경리를 통해 현지 맞춤형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기능 강화와 신에너지차(NEV) 라인업 재정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정식 임기는 내년 1월부터다.
현대차는 중국 내 사업 전략을 ‘내수 회복’보다 ‘수출 기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베이징현대의 올해 1~8월 수출 물량은 4만4703대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으며, 중국 생산 차량을 동남아·중동 등 신흥 시장으로 돌려 공급망 탄력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올해 첫 중국 현지 전략형 전기차 ‘일렉시오(ELEXIO)’를 투입한 데 이어 2027년까지 6종의 현지화 전동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앞서 현대차는 인도법인(HMIL)에는 타룬 가르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내정하며 현지 경영 색채를 강화했다. 가르그 COO는 마루티 스즈키 출신으로 2019년 현대차에 합류한 ‘인도 역내 경영통’이다.
인도는 연간 480만대 규모의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현대차는 1998년 진출 이후 줄곧 2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올해 1~9월 전년 대비 21% 감소한 32만1851대 판매량을 기록하며 타타·마힌드라 등 현지 브랜드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30년까지 7조원을 투자해 인도에 EV 5종 포함한 총 26종의 신차를 투입하고, 연간 생산 능력을 110만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하이브리드와 소형 전동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현지 최적화 모델에 집중하며, 인도를 중동, 아프리카 등을 잇는 전략적 수출 허브로 육성해 수출 비중 30%를 목표하고 있다. 가르그 신임 COO 역시 내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일본에서도 현지화 전략을 가속 중이다. 현대차는 올해 초 일본 법인 대표로 시메기 토시유키 사장을 선임했다. 그는 포르쉐 재팬 대표이사, 부가티·코닉세그 일본 총괄 컨설턴트를 지낸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 전문 경영진이다.
현대차는 2009년 일본 승용차 시장 철수 후 2022년 전기차(EV) 단일 전략으로 재진입했으며, 그 결과 올해 1~8월 누적 판매량은 648대로 이미 지난해 실적(618대)을 넘어섰다. 판매의 80%는 인스터(캐스퍼 EV 수출명)가 견인하고 있다.
현대차는 일본 특유의 경차·소형차 중심 시장에 맞춰 인스터와 ‘인스터 크로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온라인 중심 판매 전략에 오프라인 쇼룸·체험 공간 확충을 결합해 고객 접점을 넓히는 전략도 병행한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는 현지 전문가 대신 ‘규제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했다. 지난해 선임된 성 김 사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배터리 요건 대응, 북미 전기차 생산 전환 지원, 정책 로비 등 대외 협력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 3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그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시장별 법·제도·소비 트렌드·정치 리스크가 중요한 글로벌 환경에서 ‘맞춤형 인재 배치’ 전략을 앞세워 공급망 유연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중국·인도·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는 현지 전문가 중심의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미국에서는 규제 중심의 외교형 리더십을 통해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현지 인사 중심의 ‘사람 경영’을 통해 시장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며 “SDV·전기차 시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적 재정비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이달 중순 사장단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대규모 인사가 이뤄진 만큼 올해는 보완 성격의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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