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우리 몸은 세포의 생성·소멸과 함께 ‘이동’을 통해 생명활동이 이뤄진다. 특히 세포의 이동은 ‘암 전이’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포가 외부 자극없이 스스로 이동하는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때 국내 연구진이 세포 이동 현상 원리를 밝혀 암세포 전이 원인을 새롭게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과학과와 바이오및뇌공확과의 허원도·조광현 석좌교수 연구팀이 세포가 외부의 신호 없이도 스스로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자율주행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이갑상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공동 연구팀은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징 기술 ‘INSPECT(INtracellular Separation of Protein Engineered Condensation Technique)’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세포가 스스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정하는 내부 프로그램의 원리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세포 이동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Rho 계열 단백질(Rac1, Cdc42, RhoA)의 작동 방식을 새롭게 분석했다. 그 결과, 이 단백질들이 기존에 알려진 이론인 단순히 세포의 앞뒤를 나누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백질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세포가 직진할지, 방향을 바꿀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INSPECT 기술은 단백질이 서로 붙을 때 서로 잘 섞이지 않고 구분된 영역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상분리(phase separation)’현상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세포 속에서 단백질들이 실제로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형광 신호로 직접 볼 수 있다.
연구팀은 단백질 페리틴(ferritin)과 형광단백질 DsRed를 활용,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할 때 작은 방울처럼 뭉친 덩어리인 ‘응집체(condensate)’를 눈으로 확인했다. 이 기술로 연구팀은 15종의 Rho 단백질과 19종의 결합 단백질을 조합해 총 285쌍의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실험 결과, 연구팀은 139쌍에서 실제 결합이 일어남을 확인했다. 특히, Cdc42–FMNL 단백질 조합은 세포의 ‘직진’을, Rac1–ROCK 단백질 조합은 세포의 ‘방향 전환’을 담당하는 핵심 회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세포의 방향 조절에 중요한 단백질 Rac1의 일부(37번째 아미노산)를 살짝 바꿨다. 그 단백질이 ‘핸들 역할’을 하는 ROCK 단백질과 잘 붙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자 세포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계속 직선으로만 이동했다.
반면 정상 세포에서는 Rac1과 ROCK이 잘 결합해서 세포 앞부분에 ‘아크 스트레스 섬유(arc stress fiber)’라는 구조가 생겼다. 이 섬유는 세포가 방향을 바꿀 때 직각에 가까운 방향 전환이 되도록 했다.
또한 세포가 붙어 있는 환경을 변화시킨 실험에서 정상 세포는 주변 환경에 따라 이동 속도가 달라졌다. 반면 Rac1F37W 세포(핸들이 고장난 세포)는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속도는 항상 똑같았다. 이는 Rac–ROCK 단백질 축이 세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세밀하게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허원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 이동이 무작위적인 운동이 아니라 Rho 신호전달 단백질과 세포 이동 관련 단백질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내재적 프로그램에 의해 정밀하게 제어된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새롭게 개발한 INSPECT 기술은 세포 내 단백질 상호작용을 시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며 “암 전이와 신경세포 이동 등 다양한 생명현상과 질병의 분자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폭넓게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10월 31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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