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멀었는데 규제만 앞섰다”…철강업계 ‘NDC 쇼크’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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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이 공개되면서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인 철강 업계가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이미 감축 가능한 영역을 대부분 소진한 상태 인데다 탈탄소 전략으로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도 2030년대 중반 이후에나 상용화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선 최악의 경우 조업 일수나 공장 가동률 조정 등을 통해 감축률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오후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열고 2035년 NDC 상향안을 심의했다. 전날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논의된 감축 폭은 2018년 대비 53~61%로, 기존 2030년 산업 부문 감축률과 비교해 두 배 이상 강화된 수준이다.

특히 난감축 업종으로 분류되는 철강업계가 이번 NDC 상향의 최대 피해 업종으로 지목되고 있다. 철강산업은 이미 에너지 효율화, 폐열 회수 등 감축 가능한 영역을 대부분 소진한 상태여서 추가 감축 여력이 크지 않다. 2020년대 적용 가능한 전기로 전환이나 고로 수소 취입 기술 역시 감축 효과가 10~20% 수준에 그쳐 정부 감축 목표와 큰 간극을 보인다.

여기에 포스코의 ‘하이렉스(HyREX)’나 현대제철의 ‘하이큐브(Hy-Cube)’ 등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2030년대 중반 이후에야 상용화가 가능한 만큼 기술적 시차가 불가피하다. 전기로 확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로 원료인 스크랩·HBI는 철광석보다 비싸고, 전기로는 오히려 전력 비용이 급증해 원가 부담이 더 커진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탈탄소 투자를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시장의 압박 때문이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면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막대한 관세를 부담해야 하고, 글로벌 완성차·소재 바이어들도 공급망 전반에 걸쳐 저탄소 제품을 요구하고 있다. 무탄소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시장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철강사들은 상용화까지의 기술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중단기 전략을 내놓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독자 수소환원제철 모델 하이렉스의 2030년 데모플랜트 실증까지 이어지는 과도기를 대비해 설비 효율화와 전기로 확대로 탄소 배출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회사는 내년 가동되는 광양제철소의 연 250만톤 규모 전기로 가동률을 높여 고로 의존도를 줄이고,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을 처리하는 전로에 스크랩 투입 비율을 늘리는 ‘상저치(上低置) 전로’ 기술 도입도 검토 중이다. 고로 원료 구성에 바이오 코크 등 저탄소 원료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병행하며 공정 배출량을 줄인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은 장기 목표인 수소환원제철 기반 하이큐브 기술 상용화를 앞두고 전기로-고로 복합 공정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2030년까지 당진제철소에 전기로와 고로를 결합한 복합 구조를 구축해 연 500만톤 규모의 저탄소 철강 생산 체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저탄소 브랜드 ‘하이에코스틸(HyECOsteel)’은 이미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되고 있으며,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전용 강판으로도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그룹 차원의 수소 생산·저장 인프라 확대 전략과도 연계해 향후 고로 수소 취입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기로 기반 철강사인 동국제강은 전기로 효율을 높여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회사는 전기로 공정에 수소 활용도를 높이고 고철 및 직접환원철(DRI) 혼입률을 극대화하는 ‘하이아크(Hy-ARC)’ 기술을 개발 중이며, 이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30~40% 수준의 탄소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멕시코 등 해외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저탄소 원료 조달망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현판. /뉴시스

문제는 이 같은 중단기 전략의 감축 효과가 10~20% 수준에 그친다는데 있다. 2035년 NDC의 산업 부문 감축률이 최대 28%포인트 추가 상향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술 상용화 이전까지의 공백 기간을 기업 자체 노력만으로 채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전문가들은 목표치와의 격차를 메우려면 조업 일수 축소나 공장 가동률 저하를 통한 인위적인 생산 감축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과 고용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NDC 상향에 따른 철강업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규제 중심에서 지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부터 3주간 산업계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탈탄소 전환 지원 간담회’를 열고 산업계의 탈탄소 전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철강업계는 산업별 분배가 남아있는 만큼 정부와 소통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정책적 결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없이 감축 목표만 높이면 결국 조업 축소 외에는 답이 없다”며 “정부의 에너지 인프라와 투자 지원 없이는 수십조원 규모의 탈탄소 투자가 ‘초고비용 공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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