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남극 빙하는 정말 멋집니다. 펭귄도 귀여워요.” 올해 남극 현장 취재를 다녀온 후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남극의 상징인 ‘빙하’와 ‘펭귄’에 대해 사람들의 흥미가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보도도 자주 나오니 그 관심도 더욱 높을 듯했다.
하지만 남극의 빙하가 ‘어떻게 녹고 있는지’, 이로 인해 ‘어떤 피해’가 우리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해 직접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또 펭귄들은 기후변화가 닥친 남극 환경에서 어떤 곤경에 쳐했는지에 대한 관심도 높지는 않았다.
물론 기자 역시 남극을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는 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 일원으로 방문한 서남극 킹조지섬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매일 같이 남극세종과학기지 앞바다 마리안소만에선 녹아버린 빙하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펭귄들은 눈밭이 없어 푹 젖은 이끼와 돌밭에 둥지를 틀었다.
남극뿐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취재한 우리 바다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동해 강릉의 해변은 해수면 침식으로 깎여나갔다. 서해안은 해수면 상승과 백중사리(白中毒潮) 현상이 겹쳐 주민들의 집이 침수됐다.
더 나아가 수온 상승은 우리 식탁도 위협하고 있었다. 통영 지역 멍게는 90% 이상이 폐사했고 제주도에선 육상 양식까지 무너졌다. 그동안 ‘세상의 끝’에서 온 기후변화가 우리의 의식주 자체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기후변화에 있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가장 최근 발표한 ‘IPCC 제6차 종합보고서’에서 최초로 ‘인간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전 보고서까지 ‘인간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는 대조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극지의 기후변화에 대해 ‘먼 곳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는 듯하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이 4월 발표한 ‘2024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로 기후변화를 꼽은 응답자는 68.2%였다. 2018년 70.5% 대비 12%p(퍼센트포인트) 줄어들었다. 기후변화에 무관심하다고 답한 응답자도 30.2%에 달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마지노선을 넘을지도 모른다. IPCC는 탄소 저배출량 시나리오(RCP2.6)에서조차 극지 온난화가 인간 사회에 미칠 위험도가 한계에 달했다고 지적한다. 만약 고배출량 시나리오(RCP8.5)로 유지될 시, 즉, 지금처럼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시엔 2050년부터 생태계, 기후재난, 식량난 등의 재앙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생할 수 있다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의 이야기를 들을 땐 ‘남극이 녹는다더라’ 정도로 생각한다. 심각성은 막연하게 인지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경제·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은 부족하다. 결국 이 문제는 언론과 미디어가 극지 현장의 목소리를 더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진행 중인 현실이다. 남극의 빙하 파편, 젖은 이끼 위의 펭귄, 폐업한 양식장과 침수된 마을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신호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번에 극지 취재를 다녀오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남극이 녹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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