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좌석 개조 백지화… 대한항공, 합병 규제에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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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B777-300ER 기종 11대의 좌석을 개조하는 계획을 밝혔으나, 공정위의 압박에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B777-300ER 기종 11대의 좌석을 개조하는 계획을 밝혔으나, 공정위의 압박에 이를 전면 백지화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 대한항공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로 인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정위 규제 사항으로는 ‘운임인상 제한’과 ‘서비스 축소 제한’ 등이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규제 노선 외 ‘비규제 노선’에 한해 이코노미 좌석을 ‘3-4-3’ 배열로 개조한 항공기를 투입해 수익성을 개선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공정위의 태클로 제동이 걸렸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초 자사의 보잉 B777-300ER 항공기 11대 전면 개조(레트로핏) 계획을 밝혔다. 해당 기재의 이코노미 좌석 배열을 기존 ‘3-3-3’ 구조에서 ‘3-4-3’으로 변경하고, 프리미엄 클래스를 새롭게 도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통로 간격을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너비를 ‘약간’ 줄인 좌석을 탑재하게 됐다.

‘3-4-3’ 레트로핏이 적용되는 B777-300ER에 탑재되는 이코노미 좌석의 너비는 17.1인치(약 43.4㎝)로 알려졌다. 기존 3-3-3 배열 좌석에 비해 너비가 1인치(2.54㎝) 줄어든 것이다. 좌석 앞뒤 간격은 기존과 동일한 33∼34인치를 유지한다.

3-4-3 좌석 배열이나 너비가 17.1인치 수준의 좌석은 대한항공이 운용 중인 다른 항공기에도 적용돼 있다. 또한 B777-300ER 기종을 운용 중인 글로벌 25개 항공사 중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에티하드항공 △루프트한자 △유나이티드항공 △아메리칸항공 △에어프랑스-KLM △에어캐나다 △캐세이퍼시픽 △동방항공 등 18개 항공사도 이코노미 3-4-3 배열을 채택해 사용 중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이코노미 좌석 개조를 두고 ‘서비스 질 축소’라는 지적부터 ‘공정위 규제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대한항공의 B777-300ER 기재 레트로핏을 두고 지적하는 이들의 근거는 공정위에서 2022년 2월 및 2024년 12월 각각 발표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관련 항공 여객 운송 분야 행태적 조치 주요 내용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관련 시정조치 주요내용 등이 있다.

레트로핏이 적용되는 대한항공 보잉 777-300ER 기재에는 ‘프리미엄 클래스’ 좌석(사진, 예상 이미지)도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레트로핏 계획이 전면 백지화 됨에 따라 프리미엄 클래스 도입도 잠정 중단됐다. / 대한항공
레트로핏이 적용되는 대한항공 보잉 777-300ER 기재에는 ‘프리미엄 클래스’ 좌석(사진, 예상 이미지)도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레트로핏 계획이 전면 백지화 됨에 따라 프리미엄 클래스 도입도 잠정 중단됐다. / 대한항공

공정위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2022년 2월 지적 사항에는 ‘좌석 간격’ 등을 2019년보다 불리하게 변경을 금지하는 ‘서비스 질 유지’ 조치가 포함됐으며, 지난해 12월 발표에서는 ‘좌석 간격’ 등을 2019년보다 불리하게 변경을 금지하는 ‘서비스 질 유지’ 조치가 포함됐다.

다만 이는 국제선 26개 특정 노선과 국내선 14개 노선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항공에서도 레트로핏을 적용하는 B777-300ER을 공정위의 규제 노선을 피해 ‘비규제 노선’에만 투입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대한항공의 B777-300ER 레트로핏은 공정위 규제 범위 밖 사항임에도 여전히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고, 공정위에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특히 주병기 공정위원장 후보자가 최근 인사청문 서면 답변에서 “소비자 후생 감소가 우려되는 이슈를 다각도로 살펴보겠다”며 사실상 대한항공의 좌석 개조 방침을 겨냥해 압박을 가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B777-300ER 레트로핏을 잠정 보류,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항공 측은 “B777-300ER 항공기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일반석 3-4-3 배열 좌석 개조 계획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며 “좌석 제작사와 협의 및 재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관계로, 향후 계획은 추후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공정위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반대 여론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좌석을 3-4-3으로 개조한 B777-300ER 항공기는 비규제 노선에만 투입할 계획으로 알려진 만큼 따지고 보면 공정위 규제 외 사항”이라며 “그럼에도 대한항공이 이를 전면 재검토하고 나선 것은 새로운 공정위원장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느껴져 다소 아쉽다. 향후 추진하는 다른 안건도 공정위 눈치를 볼까봐 우려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항공기 좌석 개조와 관련해 개입을 하는 것에 대해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 뉴시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항공기 좌석 개조와 관련해 개입을 하는 것에 대해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 뉴시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레트로핏에 대해 규제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B777-300ER 기종의 기내 및 좌석 리뉴얼을 문제 삼는다면 새롭게 도입하는 항공기에 너비 17.1∼17.2인치 좌석을 3-4-3 배열로 탑재하는 것도 못 하도록 규제를 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공정위 규제 내용에 포함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좌석 너비가 18.1인치인 B777-300ER 기종이 투입되던 특정 노선에 대한항공이 좌석 너비가 17.2인치(약 43.69㎝)이고 이코노미 좌석 배열이 3-4-3인 B747-8i 기종을 투입하는 것도 ‘서비스 질 축소’인가”라며 “공정위가 비규제 노선에 3-4-3 레트로핏 기재를 투입해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대한항공의 경영 전략까지 간섭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항공이 B777-300ER 항공기의 좌석 개조를 추진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정위 규제를 벗어나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합병함에 따라 국내 항공업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 것을 우려해 ‘항공권 운임 인상 한도를 2019년 평균 운임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만큼만 인상할 것’이라는 규제를 걸었다. 이는 합병 승인으로부터 10년간 적용된다.

사실상 대한항공은 수익성 증대를 위해서는 운임 인상 외에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 일환이 항공기 기내 리뉴얼 및 레트로핏이었으나 공정위의 태클로 인해 이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은 수익성을 높이는 데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는데, 향후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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