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은 수도권 연간 25만호 이상 오는 2030년까지 총 135만호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책 최전선에 서야 할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는 지금 재정난과 조직 불안이라는 이중 위기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여전히 LH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걸까.
◆막대한 부채에 신뢰 바닥, 수장의 부재까지
LH를 향한 국민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2021)을 비롯한 전관 특혜‧내부 비위가 누적되면서 국민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특히 전관 업체와의 유착이 부실 시공 및 특혜 발주 의혹으로 이어지며 개혁 필요성이 한층 부각됐다.
나아가 수도권 일부 단지에서 발생한 무량판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역시 LH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LH 설계‧감리 독점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고, 당시 이한준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사퇴 압력을 받았다.
재정 건전성에 있어서도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올해 기준 LH 부채는 약 170조원에 달하며, 국토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2029년에는 262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비율 역시 현재 226%에서 260% 이상으로 치솟아 국내 공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 재무 지표 악화가 아니라, 신규 사업 추진과 차입 능력에 직접적인 제약을 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재정 부담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공급 확대 정책과도 직결된다.
정부는 9‧7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LH가 그간 민간에 매각한 공공택지를 직접 시행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개발 리스크와 비용 부담을 온전히 LH가 떠안는 구조다. 공공성이 강화되는 대신, LH 재무 건전성은 한층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문제는 흔들리고 있는 조직 안정성이다.
'수도권 연 25만호, 2030년까지 135만호 공급'이라는 초대형 계획을 책임질 이한준 LH 사장이 임기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정책 추진 동력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9.7 대책 핵심'은 LH가 공공택지를 민간 매각하지 않고 직접 시행하는 구조 전환이다. 여기에 △노후 공공임대 재건축 △도심 복합개발 △신규 공공택지 지정 등 LH 적극적 역할이 필수다.
그러나 수장을 잃은 LH는 단기간에 조직 결속을 다지기 쉽지 않다. 특히 부채 관리와 자금 조달 등 민감한 결정은 사장 책임과 직결되는데, 대행 체제에서는 속도와 무게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LH가 지금 상태로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예정된 공급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 조달과 인력 재배치가 필수지만, 현 시점에서 LH 재무‧조직적 여력은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가 LH에 매달리는 5가지 이유
이처럼 심각한 부채와 신뢰 하락 등 각종 위기에도 정책 중심축으로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국 단일 조직, 압도적 규모 △공공성 확보와 정책 신뢰성 △기존 사업 연속성 △정부 직접 통제 가능성 △단기간 목표 달성 수단으로 분석된다.

우선 LH는 자산 200조원 이상을 운용하며 전국 단위로 택지를 보유 개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관'이다. SH공사(서울), GH공사(경기), 인천·부산 등 지방 공기업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재정과 조직 규모가 작아 수도권에서 연간 25만호를 공급한다는 정부 목표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공공성 확보와 정책 신뢰성 측면에서도 대체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민간 건설사는 경기 변동과 수익성에 민감해 불황기에는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LH는 법적으로 공공임대 공급 의무와 개발이익 환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정부 정책 안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
기존 사업 연속성도 LH에 대한 의존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왕숙‧교산‧창릉 등 3기 신도시는 LH가 보상과 조성 절차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주체를 바뀔 경우 법적‧행정적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에 사업 지연은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으로 정부 직접적 지휘‧통제도 받는다는 게 핵심이다. 정치적‧사회적 책임이 수반되는 대규모 공급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또 정책 실패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책임을 관리하고 통제하기도 용이하다.
나아가 정부가 제시한 수도권 공급 부족분 연간 9만호를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곳은 LH뿐이다.
민간이 자금력에서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인허가와 토지 보상, 택지 조성 경험은 LH만큼 축적되지 않았다. 즉 단기간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결국 LH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결국 정부의 LH 의존도는 '불가피한 구조적 현실'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다만 부채 확대 및 신뢰도 하락 '리스크'가 정책 추진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결국 이번 주택공급 확대 방안 현실화를 위해선 LH 단독 추진보단 '지방공사‧민간‧금융권과의 협력 구조가 병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정부가 'LH 카드'에만 의존한다면 공급 목표는커녕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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