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우주에는 ‘암흑물질’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히 설명되진 않았지만 암흑물질은 우주 전체 질량·에너지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전 세계 우주과학자들은 이 미지의 물질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25년간 이어온 암흑물질 신호 포착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연구를 발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지하실험 연구단이 이끄는 ‘코사인-100(COSINE-100)’ 국제 공동연구팀이 단독 분석 연구를 통해 이탈리아 다마 실험이 포착한 신호가 암흑물질의 증거가 아님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1998년 이탈리아 그랑사소 지하실험실의 ‘다마(DAMA/LIBRA) 실험’ 연구팀이 암흑물질의 신호를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신호는 명확히 검증되지 못했다. 진위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시작됐다. 현재까지도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가리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암흑물질의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윔프(WIMP)’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를 뜻한다. 전자나 양성자보다 훨씬 무겁다. 하지만 빛이나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아 검출이 어렵다.
다만 윔프는 아주 드물게 물질 속 원자핵과 충돌해 생긴 극히 미약한 섬광(빛)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 초정밀 검출기로 포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하 깊은 곳에서 우주선(cosmic rays) 등 배경 잡음을 최소화한 실험이 필요하다.
이때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면서 은하 내 암흑물질과의 상대 속도가 달라진다. 이에 따라 검출기에 포착되는 충돌 신호의 빈도가 계절적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검출기 데이터에는 매년 주기적으로 세기가 변하는 ‘연간 변조 신호’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마 연구팀은 배경 잡음은 연중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관측한 변조 신호가 윔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실험에서도 같은 신호가 재현되지 않으면서 이것이 암흑물질의 결정적 증거인지 아니면 실험적 오류인지에 대한 의문은 세계 물리학계의 오랜 난제로 남았다.
이에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다마 실험을 직접 검증에 나셨다. 이를 위해 2016년 강원도 양양 지하 700m에서 코사인-100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실험은 다마 실험과 동일한 고순도 요오드화나트륨(NaI(Tl)) 결정을 이용한 검출기를 사용해 실험 간 비교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다마 신호를 직접 검증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2016년부터 2023년까지 6년 넘게 수집한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 다음 다마와의 직접 비교를 위해 에너지 측정 방식을 다마와 동일하게 적용하는 등 분석 정밀도를 극대화했다.

분석 결과, 코사인-100 실험에서는 다마가 주장한 암흑물질 연간 변조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3시그마(신뢰도 99.7%)를 넘는 수준에서 다마의 주장을 반박하는 결정적 결과였으며, 특히 다마가 신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1~3킬로전자볼트(keV) 에너지 영역에서는 3.57시그마에 달하는 신뢰도를 확보했다. 즉 다마가 주장한 신호는 암흑물질에 의한 것이 아니며, 동일한 실험 조건에서 재현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이어 연구진은 경쟁 연구팀 중 하나인 스페인 아나이스(ANAIS)-112 실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교차검증에 나섰다. 두 연구팀은 각각의 최신 6년 간의 데이터를 종합해 분석했으며, 다마가 주장한 신호를 4.68시그마라는 압도적 신뢰수준으로 부정했다. 5시그마의 신뢰수준이 과학계에서 ‘새로운 발견’으로 인정받는 기준임을 고려할 때, 다마의 신호가 암흑물질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일축하는 결과다.
실험을 주도한 이현수 지하실험 연구단 부단장은 “수년간의 노력 끝에 한국이 주도한 실험으로 세계 물리학계의 오랜 난제에 답을 제시할 수 있어 기쁘다”며 “특히 두 독립적인 실험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이번 공동연구는 완벽한 교차 검증의 성공 사례”라고 강조했다.
김영덕 지하실험 연구단 단장은 “이번 연구는 국제 협력을 통해 오랜 과학적 논쟁을 종결지은 의미있는 성과이자, 한국이 세계 암흑물질 연구를 이끄는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앞으로 정선 예미랩에서 시작될 차세대 실험을 통해 다마 신호의 기원을 밝히고, 새로운 암흑물질 탐색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9월 4일 게재됐다. 아나이스-112 연구팀과의 교차검증 연구는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게재 승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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