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81]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마이데일리

[교사 김혜인] “엄마, 다녀오세요.”

내가 이 말을 들으며 출근하리라고는 감히 기대하지 못했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오래도록 맴돈다. 빙긋이 웃으며 집을 나선다.

사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내 역할을 잠시라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걱정했다. 복직하기도 전에 아예 퇴직부터 떠올릴 정도였다.

하루는 아이 하원 시간에 내가 친정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돼서 남편 혼자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원 후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발달센터에 가는 일정이었다.

그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건 내 몫이었지만 남편이 일을 잠시 쉴 때 함께 데리러 간 적도 많았다. 한 번쯤 남편만 가도 괜찮으리라 여겼다.

남편은 웬만한 어려움은 혼자 감당하며 말을 아끼는 편인데 이내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이의 우는 소리가 귀를 찌르는 듯했다. 남편은 아이를 차에 태울 수가 없을 정도로 발버둥친다고 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병원에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나는 얼른 택시를 타고 가서 아이를 발달센터에 데려다주었다. 아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병원에 되돌아가서 친정엄마 진료실에 동행했다. 그 후 다시 발달센터에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내가 출근을 하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등원과 하원 어느 것도 온전히 할 수 없다. 등원, 하원 시간, 병원 및 발달센터 일정을 정리하며 앞으로 고등학교 교사로 계속 일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전직을 권했다. 나는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진지하게 탐색했다. 그간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교사로만 사느라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일을 가늠해 보았다.

꽤 구체적인 제안을 한 친구도 있었다. 그가 보내 준 자격증 준비 교재를 받자 정말 교사를 그만두는 것만 같아서 눈물이 찔끔 났다.

어쨌거나 복직은 시도해보자며 한 달 전부터 용기 내어 준비했다.

아이에게 매일 요일을 알려주며 어린이집에 가는 날과 주말을 구별하도록 했다. 자폐 아이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습득하는 데 익숙하므로 사진과 그림을 넣어 요일별 일과표를 만들었다.

3주간 등하원 도우미와 다니고 마지막 1주는 실제로 내가 출근할 때처럼 자리를 비웠다.

첫 연습 날.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에 외출하려 하자 아이가 내 손을 잡으며 또렷하게 “싫어!”라고 말했다. 우는 소리를 뒤로 한 채 현관을 나섰다. 이 시기에 누구나 다 운다고 하지만 아무리 마음 준비를 해도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굳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지 말자고 생각하고도 현관 밖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아이는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울었다.

10분이 지났다. 울음 소리가 그쳤다. '아, 됐다.' 또 울 수도 있지만 잠시라도 그쳤다는 건, 다시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제야 쭈그려 앉아 저린 다리를 절뚝거리며 거리로 향했다.

그날 아이는 울다 그치길 반복했지만 큰 분노발작은 없었다. 다음 날부터 다소 칭얼거리긴 해도 내가 출퇴근 하는 일상을 받아들였다.

모든 게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아이는 또 한 뼘 자랐는데, 나만 과거에 머물러 있었나보다.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여정에서 어느 한 시기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아이가 세면대 앞에 둔 받침대에 올라가 수도꼭지를 틀고 비눗물을 만들어 손을 씻고 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느새 아이 팔다리가 많이 길어진 걸 느낀다. 이렇게 크다가 아이도 어느덧 학교에 다니게 될까?

“학교 다녀올게.”

아이와 남편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선다. 앞으로 학교에 잘 다닐 수 있겠다. 나도, 아이도.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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