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부부처럼 살았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저는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건가요?” 필자가 상담 현장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부부로 살아온 관계, 즉 '사실혼'이 깨질 때 가장 많이 제기되는 고민이다. 언뜻 법적 혼인과 달라 애매할 것 같지만, 사실혼도 일정 부분 법의 보호를 받는다. 특히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사실혼이 파탄에 이른 경우라면 재산분할과 위자료 문제는 정식 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례를 보자.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A씨는 동거를 시작한 지 12년이 되었고, 주변에서도 사실상 부부로 인식돼 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도 있었으며, 함께 모은 돈으로 김포시에 아파트를 매입해 공동명의로 등기했다. A씨는 전업주부로 가사를 책임졌고, 남편은 파주시 운정에서 사업을 운영하며 가정의 수입을 담당했다. 그러나 최근 남편이 직장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남편은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재산분할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지만, A씨는 상간녀를 상대로 한 상간소송과 남편을 상대로 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를 결심하게 되었다.
법적으로 사실혼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당사자 간에 혼인의 의사가 존재해야 하고, 둘째, 부부로서의 공동생활 실체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도 부부로 인정될 만한 동거와 협력 관계가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따라서 혼인신고가 없더라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사실혼으로 인정될 수 있으며, 사실혼이 파탄에 이른 경우에는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재산분할과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재산분할은 민법 제839조의2 규정을 사실혼에도 유추 적용한다. 혼인 기간 중 형성된 재산은 부부가 공동으로 이룬 것으로 보아, 명의와 관계없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원칙이다. 앞서 A씨 사례처럼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매입했다면 당연히 분할 대상이 되고, 상대방 단독 명의의 재산이라 하더라도 사실혼 기간 중 형성된 것이라면 재산분할에 포함된다. 또한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 역시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로 폭넓게 인정된다.
한편, 배우자의 외도가 사실혼 파기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재산분할과는 별도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다.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책임 규정을 근거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사실혼 관계에도 부부의 성실의무가 존재하며, 이를 위반해 파탄에 이르게 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이 따른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의 부정행위로 사실혼이 깨졌다면,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동시에 청구할 수 있다.
실무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네 가지다. 첫째, 사실혼 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주민등록 등·초본, 공동명의 부동산 등기, 혼인사진, 자녀 출생기록, 주변인의 진술 등이 대표적인 증거다. 둘째, 부정행위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문자·메신저 내용, 사진, 숙박업소 출입 내역 등 합법적으로 수집한 증거가 필요하며, 불법 도청이나 위치추적 자료는 증거능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셋째, 재산 내역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공동명의 재산은 물론 상대방 단독 명의의 예금·퇴직금·연금까지 빠짐없이 확인하고, 필요하면 금융자료 사실조회를 신청해야 한다. 넷째, 위자료 액수는 부정행위의 기간과 정도, 동거 기간,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 등에 따라 달라진다. 통상 1500만원에서 2500만원 정도가 인정되는 사례가 많다.
결론적으로, 사실혼이라도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파탄에 이른 경우라면 재산분할과 위자료 청구가 모두 가능하다. 혼인신고가 없다고 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혼은 이름 없는 혼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법이 보호하는 가족의 한 형태다. 핵심은 관계의 실체와 이를 뒷받침할 증거다. 사실혼 해소 역시 이혼소송과 동일한 법적 쟁점을 다루게 되므로, 경험 많은 이혼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혼은 시작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끝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부부처럼 살았다면, 청산도 부부처럼 해야 한다. 사랑은 서류 없이도 가능하지만, 재산과 책임은 법의 틀 안에서 나눠야 한다. 마음은 놓더라도 권리까지 놓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 권리를 지키려면 관계가 틀어지기 전부터 증거를 차근차근 남겨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사랑은 끝날 수 있어도, 함께한 세월이 만들어낸 재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본인에게 돌아온다. 노후의 평화와 안정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법과 절차 속에서 준비한 사람만이, 상처 난 사실혼의 끝에서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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