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 분)를 감시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의 영혼 탈탈 털리는 이야기를 담은 악마 들린 코미디 영화다.
2019년 데뷔작 ‘엑시트’로 942만명의 관객을 매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이상근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엑시트’ 흥행 공신 임윤아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안보현과 성동일, 주현영 등 매력과 실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함께해 풍성한 재미를 완성한다.
지난 13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는 ‘악마가 이사왔다’는 이상근 감독 특유의 순수함과 기발함이 가득 담긴 이야기로 기분 좋은 ‘힐링’을 선사한다. ‘악마가 깃든 인물’이라는 특별한 설정이지만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런 선지를 지키려는 평범한 인물들의 진심을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담아내 따스한 웃음과 진한 감동을 안긴다. 최근 이상근 감독을 만나 영화의 출발부터 촬영 비하인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엑시트’ 성공 후 6년 만에 돌아왔다.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
“942만명이 다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고 취향 차이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많은 숫자라는 것은 나중에 느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봐주셨는지 큰 잔치를 벌이고 난 뒤 깨닫고 엄청난 일이었구나 소름이 돋았다. 차기작으로 어떤 걸 보여드려야 할까, ‘엑시트’를 만든 감독의 차기작으로서 기대하는 걸 만족시킬 수 있을까 생각도 있었는데 성격상 오들오들 떨거나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잘하고 싶다, 하고 싶은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닥쳐오면서 상황적으로 모든 게 정지됐다. 그래서 그 사이 간극이 벌어졌고 빨리 찾아뵙고 싶고 하고 싶었는데 상황적 여건이 그러지 못했다. 그냥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걸 하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원래 제목은 ‘2시의 데이트’였다. 어떤 고민의 과정이 있었나.
“어느 순간까지 ‘2시의 데이트’라는 제목을 유효하게 썼다. ‘새벽’이라는 단어가 괄호 안에 있었다. 보통 낮 두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에도 내러티브가 있길 바랐다. 그런데 ‘2시의 데이트’라는 제목이 검색이 될까 싶은 마케팅 측면의 고민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차용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젊은 감각으로 ‘악마가 이사왔다’라는 제목으로 어필해보자 싶었다. ‘이사왔다’라는 단어가 뭔가 움직인다는 뜻이잖나. 이사가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있지만, 살짝만 움직여도 이사라는 느낌이 있다. 짐을 옮긴다고 해도 되지만 누군가의 감정이 들어왔다 나갔다 해도 이사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변화가 없고 다른 방식의 어필을 해보자 해서 바꿨다.”
-이야기의 출발이 궁금하다. 오래전부터 구상했다고.
“11년 전에 초고를 썼다.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설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전에는 악마 설정 자체가 없었고 로맨틱 코미디에 더 가까운 이야기였다. 시나리오 폴더 맨 위칸에 있었는데 다시 펼쳐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의 이상근이 과거의 이상근 것을 소환해서 바꿔볼 수 있겠다, 조금 더 성장한 내가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완전히 고쳤다. 그때는 일상물에 가까웠다.”

-밤이 되면 악마가 깨어난다는 설정은 어떻게 추가하게 됐나.
“아파트에서 계속 살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수많은 이웃을 마주친다. 몇 호에 사는지 모르니까 인사하기도 어색하다. 이제는 인사 안 하는 게 암묵적 룰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밤에 어떤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모니터만 봤다. 그런 순간이 되게 묘했다. 다음날 그 이웃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되게 다른 모습인 거다. ‘이분에게도 나름의 삶과 다른 모습이 있구나’ 그런 것들이 축적되고 쌓였다. 또 고등학교 때 4층 소녀에게 감정이 있었거든. 그 친구를 만나려고 엘리베이터를 몇 번 보내다가 지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엘리베이터 서사에서 여러 사연으로 이어졌다. 그런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서 발현되지 않았나 싶다.”
-안보현이 길구는 이상근 감독의 모습이 많이 반영된 캐릭터라고 하던데.
“착한 사람 콤플렉스까진 아닌데 선한 사람들이 나오는 걸 좋아한다. 세상에 다 선한 사람들만 있을 수 없고 100퍼센트 선하거나 50퍼센트 선할 수도 있다. 선한 사람이면 이타심도 있고 동정심도 있을 텐데 그런 워너비적인 모습을 안보현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다. 용남(‘엑시트’)이라는 캐릭터, 길구라는 캐릭터도 내 안에 어떤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자신을 투영하는 거니까. 그런 부분에서 길구라는 캐릭터는 누군가를 구하는데 서포트하고 직접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타파하고 그런 모습이 어필돼서 따뜻한 이야기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구 역에 안보현을 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그동안 보지 못한 얼굴이었는데.
“안보현은 누가 봐도 남자다 싶은 느낌이 있다. 떡 벌어진 어깨에 작은 얼굴 ‘사람인가?’ 싶을 정도인데 외강내유 느낌이 강하다. 겉은 강하지만 그 안에 어떤 작고 소중한 게 있을 것 같았다. 길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꺼벙이’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런 느낌을 가진 배우가 정직하게 나오는 것도 재밌겠지만 아주 상반된 느낌인 배우가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안보현의 내재된 디테일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성격이 비슷했다. 성격적인 면에서 통하고 섬세했다. 같이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만난 임윤아는 어땠나. ‘엑시트’ 이후 차근차근 성장해 왔는데.
“내가 생각한 강도보다 조금 더 세게 했다. ‘이렇게까진 안 해도 되는데’ 싶을 정도였다. 한 번 좋은 추억을 갖고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작품을 했던 터라 벽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고 ‘이 캐릭터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쁘게 보이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고 그런 강박은 없었던 것 같다. 얼굴을 구기고 흉하게 보이는 것도 거부감 없이 펼쳤다. 보호 차원에서 덜어주고 싶기도 했다.(웃음) ‘엑시트’와는 또 다른 결로 성장했다. 원래 좋은 사람인데 더 단단해지고 나아진 사람이 됐다. 그런 모습이 발현되지 않았을까 싶다.”
-임윤아·안보현 등 배우들이 줄곧 이 영화를 두고 ‘이상근스러운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근스러움’은 무엇일까.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일부러 웃기려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다.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여러 감정을 나타낼 수 있고 그런 걸 추구한다. 클리셰를 잘 이용하는 것도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르게 비트는 것도 좋은 감독이라고 본다. 그런 것에서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겠지만 가장 큰 기조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희화화하면서 그 사람의 영혼까지 박살 내고 싶진 않다는 거다. 남의 인격을 파괴하면서까지 웃음을 주고 싶진 않다. 물론 그런 게 또 재밌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강렬하지 않아도 진라면 순한 맛 버전으로 할 수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이상근은 이런 식의 코미디를 구사하는구나’ 하는 걸 실험하는 과정, 그런 단계라고 생각한다.”
-코미디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건드리는 장면들도 담백해서 더 좋았다. 특히 장수의 뒷모습을 담담히 비추던 신이 울림이 컸다. 고민한 지점은.
“악마 선지가 마지막을 정리할 때 가족들과의 헤어짐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케어했던 모습에서 마지막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얼굴을 바라보면서 ‘수고했어, 고생했어’라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오는 짠한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점점 굽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 어린 시절에서 성장해 가는 딸의 모습 등 그런 게 더 터칭이 될 것 같았다. 사람의 등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조금 떨어져서 감성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게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 신 자체가 계산된 신이었고 효과적으로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버지의 지난한 여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황만 설정하고 연기 장인(성동일)에게 맡겼다. 어느 정도 베테랑 된 선배들과 작업할 때는 그분들의 의견을 듣고 빼먹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로맨스 비중이 생각보다 적더라. 감독의 의도는.
“결과가 바로 보이면 재미없잖나. ‘언제 할까?’ 하는 긴장감이 재밌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될까, 관객이 상상하는 게 더 재밌다. 물론 직접적인 해프닝이 벌어지는 걸 원하는 분도 있겠지만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여정을 기원하는 마음을 자극하는 걸 좋아한다. ‘엑시트’도 용남과 의주가 나중에 만나는 식으로 끝났듯 이번에도 열린 결말로 보여주고자 했다. 언젠간 완전히 닫힌 결말의 작품도 해보고 싶다. 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엑시트’ 2편 계획은 없나.
“박수칠 때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세월도 지났고. 당장은 구체적인 생각이 없다. 냉정하게, 좋은 IP가 다시 등장했을 때 아쉬운 경우를 많이 봤다. 거기에 대한 우려도 있고 겁도 난다. 절대 안 한다까진 아니지만 고마운 작품이기 때문에 가끔은 ‘둘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만 한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나. 관객에게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이상근 감독의 영화는 이런 거다’라는 시그니처가 있으면 좋겠다. 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다작하고 싶지만 훈련이 아직 덜 돼서 느리다. 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이제는 백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백수의 다른 진화된 형태, 여러 형태로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공감대 있는 상황, 특히 우리 국민, 한국 사람만 아는 웃음을 담고 싶다. 자막으로 보면 모르는 그런 웃음 말이다. 그런 걸 많이 발견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