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한 20대 여성 A씨. 설렘 가득한 직장 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불편함으로 얼룩졌다. 상급자인 30대 남성 B씨가 지속적으로 A씨의 외모와 옷차림을 평가하고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며 집요하게 사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것이다. A씨는 "처음엔 그냥 웃고 넘겼지만 같은 상황이 계속되니 너무 힘들었다. 주말에는 집 앞으로 찾아오기도 했다"며 "이건 아니다 싶어 그 이후로 대화를 피하고 무표정으로 대응하니 오히려 제 태도를 지적하며 화를 냈다"고 털어놨다.
위 사례처럼 직장 내에서 상사가 원치 않는 구애를 지속하는 경우 과연 성희롱으로 신고할 수 있을까?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은 사업주나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그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상사의 외모 평가나 업무 외 사적인 연락, 원치 않는 만남 요구 등으로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으로 간주될 수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을 판단할 때는 행위자의 의도보다 피해자의 입장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기 때문이다.
법원은 "성희롱 판단 시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인의 관점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직장 내 상하 관계, 근속 기간, 나이 등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침묵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 사실이 축소되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 기준에 따라 보면 A씨의 사례는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외모를 성적으로 평가하거나 원치 않는 만남을 강요하는 언동은 대표적인 성희롱 유형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크게 환경형(성적 언동 자체로 불쾌감을 주는 경우)과 조건형(거절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으로 나뉘는데 A씨 사례처럼 구애를 반복하고, 이를 거절한 후 감정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 양쪽 모두에 해당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수원지방법원은 직장 내 상급자가 수차례 후임자에게 문자와 언행을 통해 구애한 사건에 대해 "후임인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사생활의 침해로 인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을 여지가 충분하다"며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을 인정했다.
성희롱으로 고통받고 있는 근로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4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률은 4.3%로 2021년보다 0.5% 감소한 수치이며 성희롱 행위자로는 상급자(기관장·사업주 등 제외)가 50.4%로 가장 많았고 행위자 중 80.4%는 남성이었다.
피해 유형으로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3.2%)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1.5%)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0.8%) 등이 있었으며 성희롱은 사무실(46.8%)과 회식 장소(28.6%) 등 일상 업무공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피해자의 12.3%는 성희롱 후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2차 피해 유형 중에는 '주변에 성희롱 피해를 털어놓았을 때 의심받거나 참으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응답이 8.9%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악의적인 소문이 유포되었다(5.5%) △부당한 처우에 대한 암시나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발언 등으로 피해자에게 압력을 가했다(3.8%) 등의 응답도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피해자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조치는 사내 고충상담창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법적으로 모든 사업장은 고충상담창구를 운영하게 돼있으며 피해자는 이 창구를 통해 상담을 받거나 신고를 진행할 수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사용자는 지체 없이 사실 확인 및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기간 중 피해자의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부여 등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내 절차 외에도 피해자는 고용노동부 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 공적 제도를 통해 법적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특히 가해자가 반복적인 언행을 통해 업무환경을 심각하게 저해한 경우, 또는 피해자가 성적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불이익을 받은 경우에는 형사적 책임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이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사전 예방 교육과 조직 차원의 인식 개선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최근 고충상담원 전용 온라인 교육 플랫폼과 사건 처리 지침 개정, 2차 피해 예방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예방교육도 단순한 법령 소개 수준을 넘어서 직급별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실질적인 사례 중심으로 구성하는 등 현실 반영을 강화했다.
아울러 직장 내 성희롱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조직 문화가 필수다. 피해자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기능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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