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극지연구소(KOPRI)는 김옥선 생명과학연구본부 책임연구원팀이 서남극 빙하 아래 메르세르 빙저호에서 수천 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진화한 새로운 미생물을 발견하고 생존전략을 규명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국 몬태나 주립대 연구진과 공동 진행했다.
빙저호는 남극과 북극의 두꺼운 빙하 아래 존재하는 호수다. 고립된 환경에서 장기간에 걸쳐 독특한 진화를 겪기 때문에 과학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막대한 탐사 비용과 기술적 난이도 탓에 온전한 시료 확보 사례는 극히 드물다.
김옥선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미국 몬태나 주립대학교 존 프리스쿠(John Priscu)교수, 플로리다 대학교 브렌트 크리스트너(Brent Christner)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과 함께 서남극 1,087m 두께의 빙하 아래에 있는 메르세르 빙저호(Subglacial Lake Mercer)를 탐사하고 확보한 시료를 분석했다.
탐사는 미국팀 주도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이뤄졌다. 분석은 우리 연구팀이 주도했다. 청정 열수시추(hot-water drilling) 기술을 이용해 오염 없이 빙저호 시료를 확보한 것은 2013년 윌란스 빙저호 이후 인류 역사상 두 번째다.
연구팀은 메르세르 빙저호에서 확보한 1,374개의 단일세포 유전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부분 해양·지표 미생물과 유전적으로 고립된 새로운 종이 발견됐다. 이들은 산소 농도에 따라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이러한 차이는 군집 구조에서도 나타났다.
극지연구소 황규인 박사는 “대사적 유연성이 암흑·저영양·고압의 환경에서 미생물들이 수천 년간 생존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빙저호 시료에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극히 적은 생물량에서 유전체 수준의 분석을 구현했다. 앞서 윌란스 빙저호(Subglacial Lake Whillans)에서 예상외로 다양한 미생물이 발견된 후, 한 단계 더 진전된 것이다.
이번 성과는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은 우리 연구팀 제안으로 시작됐다. 빙저호 연구를 한층 끌어올린 성과로 평가된다. 또한 남극의 초극한 환경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적응, 진화하는지 규명한 사례다. 이를 통해 얼음 아래 바다가 존재하는 유로파(Europa), 엔셀라두스(Enceladus) 등 외계 천체의 생명 가능성 연구에도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우리 연구팀의 아이디어와 미국의 탐사 기술이 만나서 거둔 성과”라며 “남극에는 아직도 인간이 접근하지 못한 600여 개의 빙저호가 존재한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국제 협력을 강화해 미지의 극지 생태계를 개척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극지연구소와 미국 과학재단 ‘SALSA(Subglacial Antarctic Lake Scientific Access)’ 프로젝트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8월자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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