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3년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현대차·기아 도난 챌린지' 집단 소송 사건이 이번엔 현지 주정부와의 대규모 소송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물어준 현대차그룹이 이번 소송까지 패소할 경우 10억 달러(약 1조3879억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소송이 미국 내 제조사의 ‘공공 피해 책임’을 인정하는 첫 사례로 남을 수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11일 산업·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제9순회항소법원(Ninth Circuit)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주정부들이 제기한 '과실(negligence) 책임 소송'과 관련해 현대차·기아가 요청한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기각했다.
전원합의체 재심리는 항소심을 진행하는 3명 패널이 아닌 항소법원 전체 판사들을 대상으로 사안을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현대차·기아는 앞서 재판을 계속하라는 항소법원의 판단에 "항소심 판결이 기존 연방법률과 충돌한다"며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되면서 본안 심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2년 현대차·기아 차량을 훔치는 이른바 '도난 챌린지'가 발단이 되면서 시작됐다.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한 2011~2022년형 차량에 도난방지장치(엔진 이모빌라이저)가 장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도난 사고가 급증했고, 결국 집단 소송으로 번졌다.
먼저 피해를 호소한 건 소비자들이었다. 같은 해 피해 차주들은 도난 방지에 소홀한 책임을 물어 현대차·기아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고, 이듬해인 2023년 5월 합의안을 도출했다. 당시 합의 과정에서 제시된 예상 합의 금액은 약 2억 달러(약 2715억 원)였지만, 현대차·기아는 이보다 약 6500만 달러(약 880억 원) 낮은 1억4500만 달러(한화 약 1970억 원)를 제시했다.
현대차·기아가 제시한 합의금은 11월 법원으로부터 예비 승인을 획득했고, 약 5개월 뒤인 지난해 4월 원고 측이 법원에 최종 승인을 요청하면서 매듭을 지었다.
주정부 집단 소송은 소비자 집단 소송 제기 1년 뒤인 2023년 추가 소송 차원에서 진행됐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업친 데 덮친 격이었다.
소송에 나선 주정부들은 도난 챌린지로 인해 도시들이 경찰력 투입, 공공 대응 등 막대한 비용을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고, 차량 결함에 따른 공공비용을 제조사가 부담해야 한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1심은 캘리포니아 중부 지방법원이 맡았다. 지방법원은 소송이 제기된 7개 주 가운데 △오하이오 △위스콘신 △뉴욕 총 3개 주 지방정부의 과실 주장에 대해 본안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현대차·기아가 “제조사가 제3자 범죄로 인한 피해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다”며 중간 항소(interlocutory appeal)를 제기했다.
중간 항소는 재판이 끝나기 전, 중요한 쟁점에 대해 항소심 판단을 먼저 받는 제도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지방정부 과실 책임 주장이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중간 항소를 결정했다.
중간 항소에 따라 이뤄진 항소심에서 항소법원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뉴욕주 건에 대해서만 뉴욕주법상 전례 없는(new or novel) 문제로 보고, 주 대법원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곧바로 현대차·기아는 중간 항소 기각에 대응해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사건을 처음 심리한 3인 판사 패널이 만장일치로 재심리를 반대했고, 전체 판사단 내에서도 표결 요청이 없었다"고 기각했다.

현대차·기아는 남은 본안 재판 승소에 남은 역량을 쏟겠다는 계획이다.
패소할 경우 지방정부가 청구한 공공 비용 배상까지 책임지게 되는데, 이는 미국 내에서 제조사의 ‘공공 피해 책임’을 인정한 이례적 사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배상 규모 또한 구조적으로 볼 때 과거 소비자 집단소송의 수십 배에 달할 가능성이 있어 손실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 상고(Petition for Certiorari)'라는 마지막 카드가 남았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대법원이 상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연간 수천 건 중 심리가 허용되는 건 100건 안팎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지 소송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드물게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다시 요청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고 승인될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기아를 상대로 다중관할소송(MDL)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은 7개 주 17개 지방정부다. 구체적으로 △뉴욕주( 뉴욕시·버팔로시·로체스터시·용커스시·토나완다타운) △오하이오주(콜럼버스시·클리블랜드시·신시내티시·파르마시) △위스콘신주(밀워키시·매디슨시·그린베이시) △미주리주(세인트루이스시·캔자스시) △인디애나주(인디애나폴리스시) △워싱턴주(시애틀시) △메릴랜드주(볼티모어시)다. 지난달 앨라배마주 버밍햄 시도 소송전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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