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좀비딸’ 이정은의 박자로

시사위크
배우 이정은이 영화 ‘좀비딸’로 돌아왔다. / NEW
배우 이정은이 영화 ‘좀비딸’로 돌아왔다. /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눈물겨운 모성애부터 광기 어린 얼굴까지,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빚어내는 배우 이정은이 영화 ‘좀비딸’(감독 필감성)로 또 하나의 대표 캐릭터를 추가했다. 

‘좀비딸’은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해 극비 훈련에 돌입한 ‘딸바보’ 아빠의 코믹 드라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이윤창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 ‘인질’, 티빙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을 연출한 필감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발한 설정과 예측 불가한 전개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좀비 영화를 예고한다. 

극 중 이정은은 어촌 마을에 사는 흥과 정이 넘치는 할머니 밤순을 연기한다. 밤순은 음주가무는 물론 케이팝까지 섭렵한 ‘핵인싸’ 할머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아들 정환(조정석 분)과 손녀 수아(최유리 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도 좀비 손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효자손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정은은 웹툰을 찢고 나온 비주얼 변신부터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웃음과 감동,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연출을 맡은 필감성 감독 역시 “우리 할머니처럼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면모를 지니고 와이어 액션까지 완벽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이정은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정은을 만나 캐릭터 구축 과정부터 촬영 비하인드 등 ‘좀비딸’에 과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 

“필감성 감독님과 ‘운수 오진 날’을 찍고 있을 때였는데 감독님이 ‘좀비물인데 좀비 이야기가 위주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에 관련된 이야기고 그 바이러스에 걸린 인물을 살려내는 이야기’라고 말을 했다. 그 지점이 끌려 선택하게 됐다.” 

-필감성 감독에게 다시 한번 선택을 받았는데 전작은 장르물이었고 ‘좀비딸’은 코미디 색채가 짙은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어땠나.

“필감성 감독님은 상황 안에서 힘을 빼고 유머를 발생시키는 연출자였다. 웃음을 만드는 장면도 자연스럽지 않으면 계속 다시 찍었다. 장르물 찍을 때도 그랬다. 넘치지 않게 그런 것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극 초반 정환과 수아가 좀비들을 피해 탈출하는 시퀀스를 좋아하는데 되게 억지 같잖나. 탈출하는 과정도 그렇고. 그런데 몰아닥치는 좀비들의 위험이 실감 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필감성 감독이) 장르물에서 이미 다져진 솜씨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싱크로율 100%를 보여준 이정은. / NEW
싱크로율 100%를 보여준 이정은. / NEW

-원작 웹툰도 봤나. 캐릭터 구축 과정에 어떤 영향을 줬나.

“대본에 나와 있는 이 어머니의 구조적 역할, 어느 정도 개입을 해야 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간섭이 굉장히 심한 부모가 있고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보는 부모가 있잖나. 그런 과정을 봐야 해서 웹툰을 먼저 봤다. 흉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더 얻기 위함이었다. 서사적인 부분은 대본보다 풍요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참고만 했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도움이 된 것은 칠곡 어머니들이었다. 영화에는 짧게 등장하지만 실제 음주가무를 즐기는 동네 어머니 커뮤니티다. 그분들의 삶을 보면서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했고 자식들을 떠나 보내고 한가한 농촌에서 이웃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인물을 찾아갔던 것 같다. 감독님에게 좋은 서사를 부여받았다.”

-‘웹툰을 찢고 나왔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았다. 비주얼 구축 과정은. 

“내가 한 것은 없고 분장팀과 헤어, 메이크업팀, 의상팀이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총출동했다. 분장도 노인 분장을 심하게 하는 게 좋을지 표정을 더 살리는 게 좋을지 여러 부분을 논의했다. 머리도 새롭게 가발을 제작했다. 거의 ‘미세스 다웃 파이어’ 수준으로 분장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런 느낌을 살리는 데 나의 오종종한 얼굴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확실히 배우에게 보호막이 있으면 색다르게 만드는 것 같다. 또 내가 특수한 것을 입고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놀이 같잖나. 그래서 재밌었다.”

-큰 아픔을 가진 인물이기도 해서 만화적이면서도 현실에 딱 붙게 표현해야 했다. 어떤 고민을 했나. 

“칠곡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어머니들이 랩을 즐기는데 랩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이 쓰는 가사가 장난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녹여내서 랩을 만드는 게 ‘아, 이 어머니들이 바로 밤순이구나’ 싶었다. 자기의 젊음은 이미 한 시대를 겪고 지나갔고 나의 자식과 손주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 마음 편하게 와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충분히 근거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의 다큐멘터리가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사투리 연기는 어렵지 않았나. 

“너무 힘들다. 그만 시켰으면 좋겠다.(웃음) 요즘에는 사투리 담당하는 선생님도 많이 붙여주는데 나는 아무래도 젊은이들이 쓰는 어투와 다를 수 있어서 한 5명에게 녹취를 얻어서 계속 연습했다.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정도로 답했는데 진짜 힘든 일이다. 사투리 선생님들에게 연출부에서 비용을 들여서 붙여주는데 그분들에게 정말 좋은 페이를 드릴 수 있을 정도로 체계화되면 좋겠다. 배우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카이브 같은 게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조정석과 이정은. / NEW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조정석과 이정은. / NEW

-웃음 타율도 높다. 특히 조정석과의 절묘한 앙상블이 돋보였는데 촬영은 어땠나. 

“‘오 나의 귀신님’ 할 때 이미 조정석이 특화돼 있고 감각적인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진심도 있지만 어떤 상황을 되게 페이소스 있게 다루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름을 강타하는 많은 영화에 출연한 게 아닐까 싶고 그게 이 작품에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애드리브를 잘한다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신을 이해하는 능력, 또 그 완급조절을 잘 아는 배우다. 놀라운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그냥 숟가락 얹었더니 잘 가더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무언가를 던졌을 때 그런 게 불편하지 않고 감독님이 알아서 커트해 줄 거니까 계속 가보자는 마음으로 했다. 재밌게 만들었다.”

-팀워크가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원이 비교적, 아니 대단히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돼 있어서 어떤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인생의 문제든 배우로서의 문제든 육아의 문제든 경청하는 귀가 열려있는 사람들이라 잘 이뤄진 것 같다. 듣는 귀가 좋으면 말도 잘하잖나. 스윗하고 친절한 배우들과 같이 있으니 그냥 내내 웃는 게 일이 된 것 같다. 여고 동창들 모여서 수다 떠는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감성 감독님이 그러더라. 이런 것까지 다 생각해서 캐스팅한 거라고.(웃음) 너무 멋있는 말이었다. 내빼지 않고 자신의 장점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하하. 캐스팅을 정말 공들였더라. 공을 많이 들인 만큼 나온 것 같다.”

-손녀 수아 역의 최유리와의 호흡은 어땠나. 

“나보다 어른인 것 같다. 스태프들이 주는 소품이나 이런 것들을 무심코 지나칠 때가 있는데 그 친구는 다 답례를 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썼습니다’라고. 끝날 때도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간다. 그런 걸 보면서 참 많이 배웠다.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미묘한 지점들을 아주 잘 찾아가서 리액션들을 시시각각 다르게 표현했다는 거다. 만약 밤순 할머니가 인기가 있다면 그것은 손녀 덕분이다. 쫄아붙는 얼굴의 표정도 너무 귀엽고 강아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여러 미묘한 리액션을 어떻게 (강아지를) 키우지도 않은 친구가 표현할 수 있을지. 동물적인 얼굴이 귀엽고 고마웠다. 취미도 특이하다. 곤충을 모아 관찰하기도 하고 소설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언어를 하나 골라도 문학적인 느낌이다. 또래들과 다르다. 그런 탁월한 재능으로 이번 역할까지 하게 된 것 같다.”

-케이팝 댄스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춤 연습은 얼마나 했나.

“노래가 정해지고 나서 춤 선생님을 따로 불러주셨다. 꽤 오랫동안 연습을 했고 더 많은 부분이 있었는데 교차편집을 하고 신을 계속 이어가야 해서 좀 많이 잘렸다. 그런데 난 좋다. 딱 그 길이가 맞는 것 같다. 취미로 방송댄스를 2년 정도 했다. 선생님이 매일 이야기하는데 안무를 외우는 능력은 빨라졌는데 춤은 여전히 ‘뽕’필이라고.(웃음)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이정은. / NEW
믿고 보는 배우 이정은. / NEW

-방송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 

“예전에는 라틴 댄스를 했다. 단조로운 운동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리듬이 있는 걸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요즘 케이팝은 엇박이 많다. 우리 때는 딱 딱 맞춰서 췄는데 요즘은 엇박으로 들어갈 때가 많다. 연기에도 그런 게 필요하거든. 그런 박자를 찾다보니 춤을 가르치는 사람을 찾게 됐고 케이팝이 좀 맞더라. 케이팝에 열광하는 이유가 그런 디테일인 것 같다. 엄청나게 잘게 잘게 쪼개지는 박자. 나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춤 같은 연기.”

-배우의 연기를 보며 항상 엇박자가 있다고 생각했고 타고난 감각이라고 느껴졌는데 그런 노력이 있는 줄 몰랐다.

“송강호 선배도 좋아하고 조정석도 좋아하는데 그들이 사실 정박에 가까운 배우는 아니다. 그런 동료들을 보면 부러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나도 같이 무대 했던 친구들과 다른 호흡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작품을 많이 하다 보면 읽히잖나. 조여정이 ‘재밌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그게 웃기는 배우가 아니라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읽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댄스가 취미기도 하고 치매 예방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예상할 수 없는 박자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있는 것 같다.”

-스크린과 안방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해 왔는데 쉼 없는 행보에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고.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쭉 달렸다. 나는 어떤 고민이 있거나 우울감이 있을 때 움직이는 편이다. 그래서 계속 작품을 했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들더라. 그래서 상반기에 많이 쉬었다. 그러면서 올해 처음으로 아프리카에도 다녀왔다. 김혜자 선생님이 ‘살려고 가는 거야’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고갈돼 있는 느낌을 받았고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좀비딸’을 찍을 때도 사천에서 어떤 연락도 없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이 좋았다. 바다를 보는 것도 좋고 시골도 좋고 세트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번잡함에서 벗어나서 여유 있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배우가 되고 싶다. 흔히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런 법칙을 깨는 배우가 되고 싶다. 멈춰 서기도 하고 달릴 땐 달려보기도 하고. 이 시간은 모든 관객이 바라는 배우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인생에서도 되게 중요한 시간이잖나. 내가 질리지 않고 연기를 하려면 시간을 운용할 줄 아는 배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봉사활동을 많이 해오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많이는 아니고 관심 있는 곳에 좀 다니고 있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어느 정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같이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현장에서도 어린 스태프나 나이 많은 연출, 제작자를 다 아울러서도 평등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에 경중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만드는 것이니까 그런 것을 좋게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는 편이다. 학교 다닐 때도 학생운동이나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진 어른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것은 보통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되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걸 제거하고 없애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런 걸 감싸안고 같이 의논하고 풀어갈 수 있는 다른 측면의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좀비딸’도 그런 측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강점, 관람 포인트를 꼽는다면. 

“제일 좋은 포인트는 전 연령이 같이 볼 수 있다는 것, 건강한 코미디라는 거다. 나의 어머니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영화다. 요즘 추리물을 보면 너무 힘들어한다. 도대체 따라갈 수 없다고. 그런데 이 영화는 충분히 따라가고 즐거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부녀의 감정이 부각돼 느낄 수 있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가족, 온 커뮤니티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하잖나. 그런 지점을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극장에서 즐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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