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의 도쿄포인트] 중고차 '주행거리'에 숨겨진 한일 문화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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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고차 사이트엔 15만km 넘는 차가 거의 없다

한국과 일본의 중고차 시장을 둘러보던 기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차이에 주목하게 됐다.

한국 중고차 시장에는 20만km가 넘은 매물이 적지 않지만, 일본은 대부분 15만km 안팎에서 매물이 끊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도쿄 우에노 마루이 백화점 앞을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포인트경제 박진우 도쿄 특파원
도쿄 우에노 마루이 백화점 앞을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포인트경제 박진우 도쿄 특파원

▲ 오래된 차는 떠나보내는 일본

일본에는 차량을 일정 주기마다 점검하고 정비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샤켄(車検)’이라 불리는 정기 차량 검사 제도가 있다. 신차 등록 후 3년, 이후 2년마다 받아야 하는 이 검사는 작은 이상도 그냥 넘기지 않을 만큼 꼼꼼하게 진행되며, 연식이 오래될수록 손봐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검사를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정비 비용으로 수십만 엔이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비 항목이 늘고, 부품 교환이 요구되는 경우도 많아지기 때문에, 차를 오래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자동차 연식이 오래될수록 세금이 올라가는 제도도 있다. 13년이 넘은 차량은 ‘구형차 중과세’가 적용돼 자동차세나 중량세가 일괄 인상된다. 즉, 차를 오래 탈수록 손이 더 가고 지갑도 얇아지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10만km쯤 탄 차량은 ‘이제 놓아줄 때가 된 차’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손을 놓은 차량들은 어디로 갈까.

대부분은 해외 중고차 시장으로 수출된다. 일본 내에서 더는 경제성이 맞지 않는 차라도, 품질이 우수한 일본차를 선호하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에서는 여전히 인기다.

그 결과 일본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는 10만km를 넘긴 차량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다.

최대한 오래 타는 한국

반면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정기검사 제도는 존재하지만, 일본처럼 검사 기준이 까다롭지도 않고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연식에 따른 세금 차이도 크지 않기 때문에, 차를 오래 쓰는 것 자체에 큰 제약이 없다.

특히 렌터카나 택시 등으로 쓰인 차량들이 대량으로 중고시장에 유입되면서, 짧은 시간에 20만km 이상을 달린 차량들도 적지 않다. 이런 차량들은 주로 저렴한 중고차를 찾는 실수요자들의 대안이 된다. 게다가 요즘 자동차는 예전보다 훨씬 내구성이 좋아졌다.

정기적으로 소모품을 교체하고 관리만 잘 해주면 20만km는 물론, 30만km까지도 충분히 탈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행거리가 많다 = 문제 차량’이라는 공식은 점차 옅어지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주행 거리에 대한 문화적 시선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중고차 시장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자동차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문화 차이에 있다.

일본은 차량을 ‘언제든 바꿔야 할 기계’로 인식하고, 관리 기준도 철저하다. 자동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고, 그 부담은 돈으로 환산된다. 그래서 적당한 시점에 다음 차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에서는 차량이 ‘쉽게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수리해가며 오래 타는 것이 경제적이고, 관리만 잘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는 실용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몇 킬로냐’보다는 지금 상태가 어떤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런 시각 차이가 고스란히 중고차 시장에도 반영된다. 한국에서는 20만km가 넘은 매물이 중고차 사이트에 흔히 올라오지만, 일본에서는 15만km만 넘어도 시장에서 보기 어려워진다.

같은 자동차라도, 나라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생애 주기를 갖는 셈이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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