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인사이트 57]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함께 열어가는 가치소비의 새로운 장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지난주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이 시작됐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한 정부 정책이다.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소비자 반응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단순히 “어디서 쓸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의미 있게 쓸까?”를 생각하는 시민이 눈에 띈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는 가격만이 아닌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소비 철학을 체화하기 시작했다. 소비 자체가 개인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으며, 정부 지원금조차 사회적 의미를 담아 사용하려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소비 행태의 변화를 포착한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절약과 의식적 선택을 동시에 추구하는 YONO(You Only Need One), 자신만의 가치에 투자하는 미코노미(Me+Economy), 환경과 경제성을 모두 고려하는 푸드 리퍼브(Food Refurb) 같은 용어다.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치소비 문화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의 소비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같은 혜택을 받을 때도 단순히 개인의 이득만이 아닌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다.

가치소비 문화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는 폐기 위기의 음식을 구출하는 방식이다. 덴마크 투굿투고(Too Good To Go)가 대표적인 사례로, 2016년 창립자들이 뷔페 레스토랑에서 버려지는 음식을 보며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고 느낀 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식당과 카페의 당일 미판매 음식을 ‘매직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최대 7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시스템을 제시했다.

프랑스 푸드테크 기업 페닉스(Phenix)는 식품 유통업계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재고 관리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립했다. 대형 슈퍼마켓과 직접 계약을 맺고 유통기한 임박 상품의 재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해 자동으로 할인 상품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소비자는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할인 상품을 확인하고 픽업 예약까지 가능해서, 매년 무려 100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 감소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라스트오더’가 많이 알려져 있다. 베이커리에서 당일 만든 빵이 저녁 시간에 남게 되는 상황에서, 앱을 통해 소비자가 미리 주문하고 지정된 시간에 픽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특히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당일 만들어진 빵을 40~5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서 인기가 높다.

두 번째 유형은 못난이 농산물을 재발견하는 소비 패턴이다. 미국 온라인 식료품 유통업체 미스핏츠 마켓(Misfits Market)은 농업계의 오랜 문제였던 외관 기준으로 인한 농산물 폐기 문제에 주목했다. 모양이나 크기가 표준에 맞지 않아 폐기 위기에 처한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영국에선 친환경 식품 유통업체 오드박스(Oddbox)가 농산물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유통채널을 구축했다. 구독 기반 서비스로 매주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고객에게 배송하고, 농부에게는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한다. 고객은 어떤 농산물이 올지 모르는 설렘까지 덤으로 얻으며, 단순한 할인 구매를 넘어선 새로운 쇼핑 경험을 만들어냈다.

국내 못난이 농산물 분야에도 여러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못난이마켓’ 같은 플랫폼은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며, 외관상 흠집이 있는 농산물 상태를 정확히 표시하고 농가 사정을 소비자에게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어글리어스’는 정기 구독 방식으로 못난이 채소와 과일을 시중 가격보다 30% 저렴하게 배송하며, 예상치 못한 농산물을 받는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 브랜드 제품 재고를 새롭게 유통하는 트렌드다. 영국 탑다운트레이딩(Top Down Trading)은 패션 브랜드의 과잉 재고, 시즌 아웃 상품, 취소된 주문 등을 전문적으로 매입해 65개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브랜드 가치는 유지하면서도 합리적 가격을 추구하는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며, 기업 재고 처리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

국내 패션 브랜드 재고 상품 재유통 분야에서는 ‘라스트라벨(Last Label)’이 최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내외 패션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정상 판매가보다 50-90% 낮은 가격에 판매하며, 최근 오프라인 매장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를 만나는 편집숍 형태로 운영하며, 온라인 중심에 익숙했던 가격에 민감했던 고객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고 있다.

가치소비 문화가 확산되는 근본 원인은 기후 위기를 직접 체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폭염, 한파, 홍수 등 이상기후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커졌다. 젊은 세대에게 가치소비는 단순한 절약 수단이 아닌 환경을 생각하는 실천적 행동이 됐다.

기업도 변화에 발맞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핵심 과제로 순환경제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정부 역시 농림축산식품부의 못난이 농산물 유통 활성화 예산 편성, 환경부의 음식물 쓰레기 감소 목표 설정 등으로 움직임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같은 정책은 가치소비 문화 확산 기여로 기대된다.경기 침체에서 출발한 가치소비는 이제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희망이 되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은 전국민이 단순한 할인 혜택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담은 소비를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 개인의 현명한 선택이 사회 전체의 긍정적 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그 출발점에 우리 모두가 서 있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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