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세금도 안 내고, 의료비도 안 내고, 범죄를 저질러도 추방되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특권(在日特権)’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였다. 인터넷과 극우 미디어는 마치 이것이 사실인 양 퍼뜨렸고, 많은 일본 시민이 ‘뭔가 이상하다’는 불신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이 ‘특권’ 담론은 애초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극우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在特会)’조차도 2013년에는 “우리가 유포했던 특권 리스트는 허위로 밝혀진 바 있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또 다른 대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특별영주자 제도’ 자체였다.

▲ ‘특별영주자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일본 ‘신민(臣民)’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일본 본토로 건너간 것은 국경을 넘는 이민이 아니라 내지 이동이었다. 하지만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은 이들에 대해 제대로 된 국적 보장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일본 정부는 일방적으로 이들에게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대한민국·북한 양국 모두와 수교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은 어느 나라 국적도 없는 무국적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들 구 식민지 출신자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를 40년 넘게 ‘미루었다’. 그렇게 1991년에야 마련된 법이 바로 ‘출입국관리특례법(入管特例法)’, 그리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특별영주자 제도’였다. 이 제도는 ‘특권’이 아니라, 법적 공백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였다.
▲ 그들은 정말 ‘특권’을 누리고 있었나?
일본의 극우는 말한다.
“일반 외국인과 달리, 특별영주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추방되지 않는다.”
“재일코리안은 특별한 법률로 보호받는 특권 계층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특별영주자도 일정 조건(1년 이상의 실형 등)이 되면 추방 가능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3세대, 4세대도 출국 시에는 반드시 재입국 허가가 필요하다. 지방 참정권은 없다. 일상적인 차별과 사회적 낙인은 여전하다. ‘특별’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법적 분류상 특례”일 뿐이다. “특권”이란 말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 일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 역사
사실 일본 정부는 재일코리안에게 국적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1952년 국적을 박탈한 이후, 아무런 국제법적 절차 없이 이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했고, 선택권도, 귀속권도 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외국인 등록 시에는 ‘조선(朝鮮)’이라고만 표기하며, 과거의 일본 국적자라는 이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일본은 식민지였던 조선인에게 식민지 책임도, 법적 권리도, 배상도 하지 않았다. 오직 ‘문제의 관리 대상’으로만 취급한 것이다.
▲ '특별영주자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일본 정치인들
재일코리안의 ‘특권’을 문제 삼는 목소리는 최근 일본 정치권에서도 나타난다. 전 오사카 시장인 하시모토 토오루(橋下 徹)는 2014년 “특별영주자 제도는 이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인 이케다 노부오(池田 信夫)는 “특별영주자는 원래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며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법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이민 3세대에게 시민권을 주는 흐름이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외면하고 배제 논리를 앞세우는 일본의 태도는 국제 인권 기준에도 어긋난다.
▲ 한국인으로서 묻고 싶다
그들이 정말 특권을 누렸는가? 아니면, 일본 사회가 그들에게 줄 권리조차 주지 않았는가?
특별영주자 제도는 일본 정부의 과거 책임 회피 속에서 생겨난 ‘법의 회색지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국민도, 외국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이 제도를 ‘특권’이라 말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일본 사회의 일부는 역사의 맥락을 지우고,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재일코리안의 삶을 지탱해 온 제도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 회복’조차 되지 못한 일본의 후진성의 반영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기준에서 이 논쟁을 바라봐야 할지, 냉정히 되묻는 시점에 와 있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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