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에 대해 최대 2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애초 예측을 훌쩍 넘는 관세 수위에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현지 생산 확대부터 추가 공급망 확대 등 대응 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내각 회의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의약품에 최대 2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즉시 시행되지는 않으며 "(외국 제약사들이) 미국으로 돌아올 시간을 1년 또는 1년 반 정도 줄 것"이라고 유예 기간을 언급했다. 리쇼어링(생산기지 회귀)을 통해 미국 내 의약품 생산과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예기간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관세 부과율 역시 지난 2월 직접 언급한 수준은 25%였다. 이번에 예고한 200%는 예상했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국내 업계는 관세가 당장 시행되지 않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초고율 관세에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이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최대 수출국이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미(對美) 의약품 수출액은 지난 2023년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4600억원)에서 지난해 15억 달러(약 2조2000억원)로 크게 늘었다. 한국의 전체 의약품 수출에서 미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기준 18%에 달한다.
미국 시장에서 매출이 큰 한국 제약 기업으로는 셀트리온(068270), 에스케이바이오팜(SK바이오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이 있다. 셀트리온은 2024년 1분기 북미시장 매출 668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48% 증가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로 미국 시장에서 1333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47% 성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4년 1분기 미국 시장 매출이 55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0% 증가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 이후 다양한 대응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 능력 확대와 함께 공급망 다변화에도 나서고 있다.

셀트리온은 단기 대응책으로 미국 수출 의약품에 대해 2년치 재고를 이미 확보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향후에도 상시 2년치 재고를 보유해 수급 안정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셀트리온은 중장기 대응책도 마련하고 있다. 중기 대응책 중 하나로 미국 판매 제품은 미국 내에서 생산 할 수 있도록 현지 위탁생산(CMO) 파트너와 계약을 마쳤다. 장기 대응책으로 미국 생산시설 보유 회사 인수도 검토 중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SK바이오팜도 FDA 승인을 받은 현지 생산 파트너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관세가 발효될 경우 현재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수출 중인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곧바로 미국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지난달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바이오USA 2025' 행사에서 "관세 리스크에 대비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내 생산 가능성도 검토했으며, 실사까지 마쳤다"고 밝혔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공장 인수를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관세 계획이 나오기 전까지는 기존 전략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미국에 생산 시설을 확보한 기업들도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미국 시러큐스의 브리스틀-마이어스 스퀴브(BMS) 공장을 인수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이 공장에 항체약물접합체(ADC) 설비를 증축하면서 연내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바이오텍(12,000원 △ 100 0.84%)의 자회사인 마티카바이오테크놀로지도 미국 텍사스에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공장을 확보한 데 이어 2~3년 내 미국에 공장을 더 지을 계획을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실제 200%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도 제기한다.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는 미국 내 의약품 가격 인상을 초래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미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200%라는 관세 수준은 상징적 메시지에 가까울 수 있다"며 "실제로 시행되기보다는 리쇼어링을 압박하기 위한 협상 카드 성격이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생산은 비용, 규제, 인프라 측면에서 단기간 내 실현이 쉽지 않다"며 "결국 다국적 제약사뿐 아니라 미국 소비자에게도 부담이 전가될 수 있어 실제 관세 적용까지는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의약품 관세와 관련해 조만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부장관은 내각 회의 후 "의약품과 반도체의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조사결과들이 월말에 완료될 예정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그때 정책을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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