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공평할 공(公)에 보일 시(示)를 씁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알아야 할 정보라는 의미죠.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발표되는 공시를 보면 낯설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할 뿐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공시가 보다 공평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시사위크가 나서봅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리쥬란’으로 유명한 재생 바이오 전문 제약사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파마리서치는 지난 8일 ‘기타 주요 경영사항’ 공시를 통해 회사분할 결정을 철회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달 13일 공시했던 ‘주요사항 보고서’도 정정공시해 당초 계획을 모두 백지화시켰죠. 중대한 결정을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뒤집은 건데요.
파마리서치가 철회한 결정은 무엇일까요?
파마리서치는 지난달 13일 이사회를 통해 회사 분할을 결정하고 이를 공시했습니다. 인적분할을 통해 존속회사는 지주회사 파마리서치홀딩스로 전환하고, 주력 사업인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등의 연구제조 및 판매부문은 떼어내 파마리서치를 신설한다는 게 골자였죠.
이 같은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의 목적으로는 사업전문성 제고, 경영효율성 극대화, 투자위험과 경영위험의 분산, 책임경영체제 구축 등이 제시됐습니다. 이를 통해 장기적 성장을 위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궁극적으로 전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포부였는데요.
하지만 파마리서치의 인적분할 추진은 이내 거센 반발과 비판, 그리고 논란에 부딪히며 파문에 휩싸였습니다.
파마리서치의 인적분할은 왜 거센 반대에 부딪혔을까요?
통상적으로 인적분할은 또 다른 분할 방식인 물적분할에 비해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에게 존속회사와 신설회사 주식이 모두 지급되는 반면, 물적분할은 존속회사가 신설회사 주식을 100% 보유하며 자회사로 두게 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물적분할 시 기존 주주는 신설회사 사업부문에 대해 직접적이었던 지배력이 간접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또한 이후 투자유치나 상장 등에 따라 주주가치가 희석될 가능성도 존재하죠.
파마리서치가 선택한 분할 방식은 인적분할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센 반발에 부딪혔는데요.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분할 비율에 있습니다. 파마리서치는 이번 인적분할의 분할비율을 존속회사 0.75, 신설회사 0.25 수준으로 제시했는데요. 이는 100주를 파마리서치 주식 100주를 가진 주주의 경우 지주사 주식 75주와 신설회사 주식 25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주사가 되는 존속회사의 비율이 높죠.
그런데 존속회사 사업부문은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32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신설회사 사업부문은 3,095억원을 기록했죠. 파마리서치가 지난해 거둔 1,260억원의 영업이익 역시 신설회사 사업부문이 주된 역할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은 ‘알맹이’라 할 수 있는 사업부문 지분은 25% 밖에 받지 못하고, 실속 없는 지주사 지분은 75%나 받게 되는 겁니다.
더욱이 파마리서치는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온 성장세가 최근 들어 더욱 뚜렷해진 바 있습니다. 2014년 247억원이었던 연간 매출액 규모가 2020년 1,087억원으로 1,0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 △2021년 1,540억원 △2022년 1,947억원 △2023년 2,610억원에 이어 지난해 3,501억원까지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2022년 65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2023년 922억원에 이어 지난해 1,260억원을 기록했죠.
이러한 성장세를 주도한 건 신설회사 사업부문이었습니다. 주주들 역시 그 점에 투자한 것이었고요. 그런데 인적분할을 통해 신설회사 사업부문 지분을 25%만 받게 되자 주주들이 분노한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파마리서치의 이 같은 인적분할이 사실은 승계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습니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의 평가가치를 떨어뜨리고, 이후 오너일가가 사업회사 지분을 현물출자해 지주사 지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구축하면서 승계 또한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란 지적이었죠. 주가 상승으로 승계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 현물출자 시 과세 이연 특례 효과를 볼 수 있는 점 등이 더해지면서 이 같은 지적엔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파마리서치가 결국 인적분할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마리서치의 인적분할 추진은 그야말로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발표 이후 주가는 급락했고, 일반 소액주주들은 물론, 1.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행동주의펀드 머스트자산운용도 거듭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죠.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 개인회사와의 내부거래 문제도 제기됐구요. 언론과 투자 업계에서도 냉담한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럼에도 파마리서치는 기업설명회를 수차례 개최하고, 주주서한을 통해 “글로벌 재생의학 시장에서 더욱 빠르고 유연하게 성장하기 위해 내린 전략적 결단”이라고 강조하며 인적분할 강행 의지를 드러냈는데요.
한편으론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자본시장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주식시장 활성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고, 소위 ‘쪼개기 상장’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요. 취임 이후엔 즉각 신속한 공약 이행에 착수했고, 특히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속도를 냈죠.
이런 가운데, 인적분할을 둘러싸고 불거진 각종 지적과 반발, 논란은 파마리서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죠.
파마리서치는 인적분할 철회 결정에 대해 “분할 계획 발표 이후 취지에 공감하며 글로벌 도약을 응원해주신 주주 여러분의 기대가 있었던 한편,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소통의 충분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제기됐다”며 “이에 당사는 시장의 신뢰 회복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 분할을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기업의 의사결정은 전략적 필요나 법적 타당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보다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신뢰 기반의 주주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죠.
시장의 반응은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파마리서치 주가는 인적분할 철회 발표 이후 급등세를 보였죠.
이렇게 인적분할을 둘러싼 파문은 한 달여 만에 일단락됐습니다만, 파마리서치 앞엔 풀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습니다. 먼저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번 파문으로 파마리서치는 주주가치 제고는 외면하고, 오너일가의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이란 오명을 씻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주주가치 실현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론 승계 문제가 오너일가의 ‘난제’로 남을 전망입니다.
파마리서치 ‘기타 주요 경영사항(회사분할결정 철회)’ 공시 https://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50708900076 |
|
---|---|
2025. 7. 8.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