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존재보다 더 되기 어려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이영주X한미르, 자부심을 갖고 전진 [MD더발리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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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한 한미르(좌측)와 이영주./단양=김희수 기자

[마이데일리 더발리볼 = 단양 김희수 기자] 이영주와 한미르가 없는 현대건설은 너무나 허전하다. 이제 그들은 그런 존재가 됐다.

배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포지션과 역할군 중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리베로와 원 포인트 플레이어다. 리베로는 득점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원 포인트 플레이어는 출전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빛을 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팀에 꼭 필요한 존재다. 좋은 리베로와 원 포인트 플레이어의 존재는 강팀이 되기 위한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에서는 이영주와 한미르가 그런 선수들이다. 화려하게 빛을 발하거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팀에서는 무척 중요한 선수들이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현대건설의 2025 한국실업배구연맹 & 프로배구 퓨처스 챔프전 단양대회 여자부 예선전 마지막 경기였던 7일 정관장전에서도 두 선수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영주는 선발 리베로로 나서 풀타임을 안정적으로 소화했고, 한미르는 원 포인트 서버로 나서 경기의 흐름을 주도했다. 두 선수의 활약 속에 현대건설은 정관장을 3-1(25-18, 12-25, 27-25, 25-18)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경기 후 두 선수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 이영주는 “(나)현수가 부상이기도 해서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다. 그래도 한 번 즐겨보자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만족스럽다”는 소감을 전했고, 이어서 한미르도 “다들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모두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힘이 되고 싶었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두 선수의 말대로 현대건설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주포 역할을 수행해야 할 나현수가 손가락 부상을 당했고, 김희진-지민경 등 이적생들의 컨디션도 아직 100%가 아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긍정의 힘으로 이를 이겨내려고 한다. 이영주는 “이 대회가 없었다면 컵대회와 시즌을 대비하면서 몸을 만들었을 시기인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사이클을 좀 빨리 올린 상태라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경기를 많이 못 뛰는 선수들에게는 실전 감각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대회이기도 하다”고 말했고, 한미르는 “힘들긴 하지만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다.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며 미소 지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번 대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두 선수다. 먼저 한미르는 흥국생명전에서 부상을 당한 나현수를 대신해 공격수로 나서는가 하면, 정관장전에서는 3세트 21-24에서 원 포인트 서버로 나서 연속 서브를 구사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건설 한미르./KOVO

한미르는 “흥국생명전은 상상도 못한 상황이었다. 코치님이 일단 들어가라고 하셔서 들어갔는데, 일단 필요한 플레이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운이 좋아서 잘 된 것 같다. 정관장전 3세트 때는 솔직히 내가 서브만 잘 치면 우리가 무조건 역전해서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서브에만 집중했고, 동료들이 잘 도와준 덕도 있다”고 두 상황을 복기했다.

그런가하면 이영주는 주로 리시브 상황에 출전했던 리그 때와는 달리 풀타임 리베로로 팀의 후방을 지켰다. 타이트한 대회 일정 속에 갑자기 늘어난 출전 시간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그는 “내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그 동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잘하면 됐는데, 지금은 전체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확실히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들긴 한데, 그래도 좋다. 더 많이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이영주에게 김연견이라는 스타 리베로와 함께 뛰는 탓에 출전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묻자, 이영주는 망설임 없이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냥 그것들을 잘 하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이제는 많이 못 뛰어서 아쉽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나는 팀이 어려울 때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때 들어가서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전만큼이나 중요한 자리인 소방수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영주였다.

한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 포인트 서버 특유의 적은 출전시간을 아쉬움이 아닌 자부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다. 그는 “계속 원 포인트 서버 롤을 수행하다 보니 자부심과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옛날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내가 경기의 정말 중요한 순간과 흐름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 두 선수 모두 빛나는 존재보다 더욱 되기 어려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책임감과 자부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배구 실력만큼이나 멘탈도 함께 성장한 이영주와 한미르는 이번 대회 내내 함께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선배답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선수 모두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임에도 후배들이 떨지 않고 각자의 몫을 해주고 있어서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 멋지다”며 후배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영주(5번)와 현대건설 동료들./KOVO

그러나 인터뷰 내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던 두 선수도 장영기 코치와 강성형 감독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는 질문에는 유쾌한 ‘금쪽이 모드’가 됐다. 장 코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민하던 이영주는 장난스럽게 “할 말을 쥐어짜야 된다(웃음). 음…어린 선수들과 수비수들에게 항상 많은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함께 힘냈으면 좋겠다. 네, 그렇다”며 멋쩍게 웃더니 “장영기 파이팅~”을 외치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미르도 지지 않았다. 그는 강 감독에게 “감독님은 벤치에 안 계셔서 대회 내내 편하셨을 거다(웃음). 저희는 정말 힘들었다. 감독님 빼고 다 고생했다. 꼭 알아주시고, 커피 좀 자주 사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질문할 거 있다고 하는데 자꾸 무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웃음). 아까도 뭐 물어보러 갔더니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셨다”며 폭풍처럼 핀잔을 쏘아댔다. 그리고는 “강성형 파이팅~”으로 앞의 이야기들을 무마한 한미르였다.

유쾌할 땐 누구보다 유쾌하게, 진지할 땐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번 대회에 임하고 있는 이영주와 한미르다. 현대건설의 소중한 퍼즐 조각인 두 선수는 실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멋진 선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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