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싶다, 그리고 지키고 싶다” 지금도 변함없이, 임명옥은 불타오른다 [MD더발리볼]

마이데일리
IBK기업은행 임명옥./더발리볼

[마이데일리 더발리볼 = 김희수 기자] 20년 전, KT&G의 유니폼을 입고 V-리그의 개국공신으로 나선 임명옥은 백어택을 서슴지 않는 토종 공격수였다. 어느덧 10년이 지나 리베로로 정착한 그는 KGC인삼공사를 떠나 한국도로공사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고의 리베로로 거듭나며 0% 확률을 뚫는 기적의 우승까지 맛봤다. 그리고 첫 이적으로부터 또 한 번 10년이 흐른 뒤, 임명옥은 한국도로공사를 떠나 IBK기업은행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제는 새로운 팀에서 새 역사를 쓸 차례다.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불타올랐다. 언제나 이기고 싶었고, 또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는 불타오르고 있다.

Q. 안녕하세요! <더발리볼> 창간호의 인터뷰로 만나게 됐습니다.

오, 제가 창간호의 인터뷰 주인공이 됐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앞으로 배구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계속 잘하면 한 번 더 찾아주세요(웃음)!

Q.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일단은 몸을 만드는 데 비중을 두고 있어요. 실업연맹전이 끝나면 휴식을 좀 취할 계획이고, 이후에는 완전체 멤버로 정식 훈련에 돌입할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는 그 전까지는 몸 만드는 데 집중할 시간을 주셔서, 밤낮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전 증명하겠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제 마음 속에 새겼으니까요”

Q.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선 이적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지난 시즌 6라운드쯤 김종민 감독님과 면담을 했을 때, 감독님께서는 저를 최대한 배려해주시는 조건을 제시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을 느꼈고,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오히려 제가 이 조건이 진짜 괜찮은 거냐는 역질문을 했을 정도로 조건이 좋았어요. 감독님께서는 “감독이 필요한 선수라면 팀은 맞춰줘야 하는 거니까 괜찮을 거다, 나랑 계속 같이 하자”고 대답해주셨죠. 그런데 계약 시기가 약간 계속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 사무국과 만났을 때는, 제 나이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올라왔죠. 그래서 사무국과 다시 대화를 나눴고 이야기를 잘 마쳤어요. 그런데 시상식이 시작될 때까지도 제대로 된 연락을 못 받았어요. 그러다가 한-태 올스타 슈퍼매치 때 최종 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된 거죠.

Q. 10년을 머문 고향 같은 팀이었으니,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솔직히 좀 울컥했어요. 대체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가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정말 안 괜찮았죠. 이후에 사인 앤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감독님과도 통화를 했어요. 그때 팀 상황과 계약 불발의 이유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제가 정말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일단 여기서는 끝이니, 배구를 계속하기 위한 다음을 생각하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렇게 트레이드가 추진됐고, IBK기업은행으로의 이적을 결정했어요.

Q. 연봉이 대폭 삭감된 것이 언론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연봉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아직 이 정도의 가치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임명옥은 잠시 감정을 추슬렀다)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건 프로라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래서 고민을 좀 했어요.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싶었어요. 그때 한국도로공사 사무국장님께서 정말 미안하다면서 그래도 배구를 좀 더 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가족들과도 상의를 했고, 결국 ‘저의 은퇴 시기는 제가 정해 보자’는 생각으로 이적을 최종 결정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를 친엄마처럼 돌봐주신 이모께서 “명옥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있는 거야. 돈보다 더 값진 걸 얻을 수 있을 테니 네가 재밌어 하는 배구하러 가자”고 말씀해주신 게 큰 힘이 됐어요.

Q. 2014-2015시즌 종료 후 한국도로공사로 이적했던 게 정확히 10년 전입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저도 그걸 정말 많이 생각해 봤어요. 10년 전의 나는 어땠는지를 떠올려 봤죠. 그때는 제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그래서 한국도로공사에서 KGC인삼공사를 상대할 때 ‘나 복수할거야, 무조건 이길 거야’ 하는 마음으로 배구를 했는데 오히려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도로공사를 떠나면서 그때 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때완 달리 제 마음 속에 미움도 많이 잦아들었죠. 그때는 이적하고 나서도 숙소에 틀어박혀서 혼자 있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제가 많이 변했어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생각할 수 있는 연차와 나이가 됐기 때문일까요? 마음 편하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시상식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해서 기쁘다”고 말했던 것이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나이 때문에 안 된다는 건 핑계라는 걸 말하고 싶었죠. 사실 저는 저를 증명한다는 이야기를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 편이에요. 이미 제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걸요.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드리니까요.

&lt;더발리볼&gt; 창간호 임명옥 인터뷰의 일부./더발리볼

Q. 이적하고 나서 IBK기업은행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적을 결심한 날, IBK기업은행 부단장님과 사무국 분들께서 너무너무 고맙다는 연락을 해주셨어요. “우리는 지금 축제 분위기”라고 말씀해주신 게 정말 감사했어요. 김호철 감독님께서는 그때 이탈리아에 계셔서, 전화보다는 문자를 먼저 드렸어요.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왔고 통화도 했어요. “와 줘서 너무 고맙고, 우리 열심히 해보자”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감독도 내가 최고 연장자고 너도 선수 중에 최고 연장자니 우리 연장자끼리 힘을 합쳐 보자”고 농담도 해주셨죠(웃음).

Q. 그간 적으로 상대했던 IBK기업은행은 어떤 팀이었나요?

제 생각엔 항상 3라운드 초중반까지는 정말 잘하는 팀이었어요. 그런데 뒷심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죠. 체력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팀에 합류해서 선수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단순한 체력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멘탈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팀에 온 만큼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다잡아주는 역할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동안 IBK기업은행은 잘 안 되거나 실수가 나올 때 다독여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좀 받았는데, 고참들이 그럴 때 분위기를 잘 잡아나가야 하는 법이거든요. 그런 역할도 제가 잘 해보려고요!

Q. 이제 한국도로공사를 곧 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아마도 상대 리베로는 영혼의 듀오였던 문정원 선수가 될 것 같은데요.

아직 (문)정원이를 상대 리베로로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리베로를 처음 할 때 잘한다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어요. 뭘 잘 모르고 덤빌 때가 가장 쉬운 법이거든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포지션이 리베로예요. 상대는 저를 피해서 공을 때리니까 제가 그걸 따라다녀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면 제가 지금 팀에서 하는 게 뭐지 싶은 순간이 올 거예요. 그럴 때마다 펼쳐질 자신과 싸움을 잘 이겨내길 바랄게요. 또 정원이뿐만 아니라 (배)유나, (김)세빈이, (전)새얀이를 보면 눈물이 날까봐 걱정되는데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요. 이제는 새 동료들이 제 옆에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유나는 영상통화가 오더니 “언니, 내 공격은 잡지 말아줘” 이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너도 나한테 서브 좀 쳐줘”라고 화답했어요(웃음).

Q. 그간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한국도로공사 팬들에게 인사를 전해 볼까요?

한국도로공사 팬 여러분들이 타 팀 팬들한테 “너네는 최리(임명옥의 별명, 최고의 리베로) 없지? 우리는 최리 있는 팀이야!”라고 자랑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직까지는 제가 팀에 없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고도 이야기해주시는데, 저 역시도 아직은 적응이 쉽지 않네요. 제가 이제 한국도로공사 소속은 아니지만, 저라는 선수를 끝까지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간 한국도로공사에서 정말 행복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감사했습니다!

20주년 베스트 리베로들의 만남

은밀한 프로젝트 제안까지?

Q. IBK기업은행과 새로운 시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볼게요. 가장 먼저 팀의 수비 시스템이 명옥 선수의 합류로 변화할지가 궁금한데요?

지금도 연습을 하다보면 (황)민경이나 (이)소영이가 “언니 범위 진짜 넓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러면 속으로 ‘나는 반도 안 보여준 건데? 나 몸 하나도 안 올라왔는데?’ 생각했죠(웃음). 일단 기존의 시스템과 제 수비 범위가 코트 왼쪽에서 좀 겹치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은 그걸 조율하고 있는 과정이에요. 수비수들이 제 쪽으로 너무 넘어오기보다는 콤비네이션 수비에 집중해줄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어요. 리시브에서는 세터들의 신장이 크지 않으니 스피드 있게 밀어주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고 있어요!

Q. 알리사 킨켈라-빅토리아 댄착-육서영 삼각편대가 구축된다면 리시브에서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팀 합류 전부터 감독님께서 튀르키예에 외국인 선수를 뽑으러 가시기 전에 저랑 통화를 하셨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킨켈라의 리시브가 어느 정도냐고 여쭸더니 “자기 앞 한 자리 커버는 된다. 근데 무슨 걱정이냐. 우리한텐 네가 있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저도 자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다만 제 대각에서 리시브를 좀 더 신경써 줄 선수가 한 명 있으면 좋긴 하겠죠. 소영이랑 민경이가 돌아가면서 잘 해준다면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소영이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소영이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선수라고 믿어요. “돈 값해야 된다, 그러니까 욕 먹는 거 아니냐”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놀려도 소영이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다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더라고요!

Q. V-리그 20주년 남녀부 베스트 리베로로 선정된 여오현-임명옥이 코치와 선수로 뭉친 것도 흥미롭습니다.

여 코치님은 몸 관리 같은 부분에 있어서 저를 잘 이해해주세요. 이미 저를 너무너무 잘 알고 계시는 느낌이에요. 훈련 때도 제가 한계치까지 몰려서 힘이 들 때, 하지만 제가 그걸 차마 말을 못하는 상황일 때 그걸 먼저 파악하시고 저를 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런데 최근에 저한테 본인이 도전하셨던 45세 현역 프로젝트를 제안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전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웃음).

Q. 지난 시즌 첫 주전 리베로로 나섰던 김채원 선수는 명옥 선수와 함께 시즌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오자마자 같이 밥을 먹었는데, 제가 “여기 오면서 네가 제일 마음에 걸렸다”고 말하니 (김)채원이가 “제 기준에서 슈퍼스타가 아니거나 저와 레벨이 비슷한 선수가 와서 저를 밀어내면 기분이 나쁠 것 같지만, 저보다 아득하게 잘하는 언니가 왔으니 오히려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어요!

&lt;더발리볼&gt; 창간호 임명옥 인터뷰의 일부./더발리볼

Q. 명옥 선수 개인으로 봤을 때 지난 시즌은 초반부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유가 있었을지,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가 궁금해요.

지난 시즌에는 컵대회까지만 해도 몸이 괜찮았는데, 유니(유니에스카 바티스타)랑 같이 뛰었던 시즌 초반에 3인 리시브 시스템 속에서 유니의 범위를 많이 커버했어야 했어요. 항상 해오던 거긴 했는데, 유니 쪽 커버를 깊게 들어가다가 오히려 제 정상범위로 노리고 들어오는 서브에 한 번 당했어요. 그런데 또 메리(메렐린 니콜로바)가 라이트 공격을 하러 전위를 가로지르는 로테이션에서 제가 시야를 방해당할 때 짧은 서브가 들어오는 게 또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어요. 그 상황을 예측 못 했거든요. 거의 처음으로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리시브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아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 이후부터 여러 조정으로 좀 안정을 찾았던 것 같아요! 물론 궁극적인 해답은 결국 연습이었죠. 연습량을 끌어올리면서 이렇게까지 연습했는데도 코트 안에서 안 되면 그만해야 하는 거라고, 연습량을 믿고 해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줬어요. ‘나 임명옥이야, 할 수 있어. 믿어보자고’ 하는 생각으로 코트에 들어섰던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도 같은 해답을 믿고 나아가려고 합니다!

여전히 승리를 갈망하고

꼭대기를 지키고 싶기에

Q. 선수 임명옥 개인의 배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예측형 전진 수비를 기반으로 하는 특유의 플레이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우선 저는 분석을 정말 많이 하긴 해요. 하지만 분석은 결국 분석에 불과해요. 실제로 나오는 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정도라고 봐요. 분석에는 스몰 샘플의 함정이 늘 있으니까요. 또 임명옥하면 리시브나 연결을 많이 이야기하시지만, 저는 말씀하신 대로 예측, 즉 리딩 능력이 제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쯤에 위치를 잡으면 변수가 발생해도 대처할 수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는 게 리딩 능력의 핵심이고요. 결국 그건 보는 눈이 좋아야 하는 부분이에요. 거기서는 남들보다 선천적으로 좋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Q. 아무리 리딩 능력으로 커버를 하려 해도, 결국은 반응 속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 리베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노쇠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요.

그걸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이 있죠! 나이가 많다고 불필요한 예외를 적용받지 않는 것이 비결입니다. 예를 들어 김종민 감독님께서는 7월까지는 볼 운동 없이 몸을 만들 수 있게 해주세요. 대신 체력 운동 같은 건 빼 주지 않으세요. 진짜 노 배려(웃음). 하지만 저는 그게 절대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그런 과정들을 거치고 나서 볼 운동에 돌입해서 개인 수비 연습을 할 때도 절대 빠지지 않고 제가 제일 먼저 해요. 다른 어린 선수들과 같은 과정을 무조건 저도 함께 하는 거죠. 지금 팀에서는 감사하게도 약간의 배려를 받고 있는데, 덕분에 지금은 몸을 만드는 데 리듬을 더 끌어올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완전체로 훈련이 시작되면 바로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Q. 기술 외적인 부분을 살펴보자면, 선수 임명옥이 언제나 투쟁심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건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네요. 지금까지의 제 모습이 정말 그래보였나요? (네, 그 누구보다 코트 위에서 승리에 목말라 보였어요.) 맞아요! 제 승부욕이 어느 정도냐면, 저는 몸을 풀 때 언더게임도 하기 싫어요. 무조건 이기고 싶어져서 화가 자꾸 나거든요(웃음). 연습 때도 저는 치열하게 머리를 써서 이겨야만 하는 사람이라, 동생들이 좀 가볍게 하는 모습을 보면 또 화가 나고요. 저는 경기에서 너무 크게 지면 화가 나서 잠도 못 자요. 지난 시즌 초에 제가 흔들릴 때도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제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과,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늘 버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가끔은 그게 저에게 큰 스트레스였어요. ‘나 또 1등 해야 해? 또 내가 다 해야 해?’ 하는 그 생각들이요. 그런데 제가 그 생각을 좀 내려놓고 그냥 열심히만 하자는 생각을 하는 순간 김종민 감독님이 그걸 파악하고 저를 부르셨어요. “너 지금 이렇게 생각하지? 그러면 안 돼” 하면서요. 그러면 저는 “감독님, 저 그런 게 너무 스트레스예요, 저는 맨날 1등해야 돼요?” 말하거든요? 그러면 감독님이 “누구나 그런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는 법이야!”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갑자기 (김)연경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연경이도 이런 스트레스를 받겠지? 하는 생각이 들고 나니 제 스트레스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스트레스에서는 자유로워지고, 그런 제 성격을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배구라는 스포츠에 이토록 치열하게 덤벼들 수 있는 임명옥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음…. 지금까지 말했던 저의 욕심들이 제 원동력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저는 그렇게 착하지는 못한 사람인가 봐요. 대신 저의 그런 천성이 누군가를 욕하거나 공격하는 식으로 드러나진 않고, 코트 위에서의 독기와 승부욕으로 표출되는 것 같아요!

&lt;더발리볼&gt; 창간호 임명옥 인터뷰의 일부./더발리볼

IBK기업은행에서도 임명옥의 등에는 8번이 새겨진다!

Q. 가벼운 이야기들로 인터뷰를 정리해볼까요? 팀에서 ‘할머니’라고 불린다고요?

선수들이 처음에 민경이한테 할머니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제가 왔으니 제가 할머니가 된 거죠(웃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그렇게 부르던데, 처음에는 “아, 할머니 아니라고!” 이랬거든요(웃음)? 하지만 그게 저를 편하게 느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애들은 저랑 얘기하는 게 그렇게 재밌고 웃기대요(웃음). 제가 재밌는 사람이긴 하죠(웃음)! MBTI도 E고요. 사실 한국도로공사 때도 신나게 까불고 싶었지만, 늘 치열하게 운동하는 언니라는 이미지가 워낙 고착화됐다 보니 그러지 못했거든요. 여기선 그래도 돼요! 그래서 그러고 있어요(웃음).

Q. 배구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족 단체 메신저 방이 있어요. 저랑 언니-동생-남편까지 4명이 있죠. 여기가 정말 활발합니다. 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기사 같은 거 올라오면 비하인드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은 “나 오늘 어디로 간다. 다들 몇 시까지 모여” 하면서 번개 모임을 즐기기도 하고요!

Q. 등번호는 그대로 8번을 사용하나요?

그렇습니다! 원래 (김)수빈이가 쓰고 있었는데, 양보를 해줘서 제가 쓰게 됐습니다. 소영이는 팀에 올 때 (육)서영이한테 소고기를 사줬다는데, 저는 향수를 선물해줬어요! 마침 수빈이가 향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남편이 저한테 “소고기 먹으러 가면 결국 수빈이가 굽지 않겠니? 향수를 주면 너를 생각하면서 예쁘게 쓰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해준 것도 결정적이었습니다(웃음). 향수도 주고, 밥도 같이 먹으러 갔어요!

Q. 새로 쓸 응원가는 결정됐나요?

안 그래도 지금 가족들끼리 회의 중입니다(웃음). 아직 못 정했는데, 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어차피 많이 안 나오는 응원가라서요(웃음).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어요! 한국도로공사 때는 자꾸 잘 받다가 아깝게 하나를 놓치면 그때 응원가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화가 나서 “이거 왜 자꾸 실수할 때 트냐”고 항의도 했어요(웃음). 아무튼 리베로 응원가는 자주 안 들리는 게 상책이라고 하니, 중요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골라 보겠습니다!

Q.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어땠나요?

한 번 더 제가 배구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적에 대한 이야기 속 제 진심도 이번 인터뷰로 후련하게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어요. 사실 그래서 지난주부터 이 인터뷰를 기다렸답니다(웃음)!

Q. 그렇다면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저 후련하게 털어내 주세요!

사실 이적을 고민하는 사이에 몇몇 분들에게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 줘라”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수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프로인데,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저는 제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그만둘 겁니다. 그 동안은 실력으로 제 가치를 인정받을게요. 연봉도 다시 올려 보겠습니다(웃음). 앞으로도 치열하게 나아갈 저를 지켜봐 주세요!

(이 기사는 배구 전문 매거진 <더발리볼> 창간호에 게재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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