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김혜인] 응용행동분석(ABA) 치료실에서 내 아이와 동갑내기를 만났다. 그 아이는 “엄마” 외에는 아직 유의미한 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 세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따라 말하는 내 아이와 비교하면 표현언어 발달이 많이 늦다.
동갑내기 아이는 표현언어를 제외하고는 다른 발달 영역은 모두 또래 평균 수준이다. 또한 내 아이처럼 강박이나 제한된 관심사 문제가 없다. 성격이 순하다. 게다가 스스로 수저질해서 밥도 잘 먹는다.
그 아이 엄마가 내게 “요즘은 아이가 밥 좀 잘 먹어요?”하고 물었다. 이곳에서 섭식 지도를 받은 지 거의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밥 먹이는 일이 버겁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잘 안 먹어요. 아이가 밥만 잘 먹어도 육아가 한결 쉽죠.”라고 말했다. 그 순간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아니 쉬운 건 아니고…”하면서 뱉은 말을 수습하지 못한 채 버벅거렸다. 아이가 자발적인 언어 표현은 고사하고 단어 모방조차 하지 않아속이 타는 엄마에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그 엄마가 나를 도와주듯 “시름 하나는 덜죠”라고 말을 이어주었다. 나는 “네” 하면서 그마저 적절한 말인지 고민했다. 무표정의 가까운 옅은 미소만 지은 채 자기 아이를 쳐다보는 그 엄마 눈을 똑바로 보기 어려웠다.
물론 내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가 무척 치열하다. 새로운 활동을 할 때마다 아이 반응을 살피며 긴장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발로 차는 도전 행동(challenging behavior)을 줄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매 상황마다 좋은 언어 자극을 주기 위해 고민하고, 어떤 놀이가 발달과 정서에 좋은지 저울질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아이에게만 몰두하고 내가 느끼는 괴로움에만 빠져 있다. “나는 이만큼 힘들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타인에게 동정을 사거나 타인의 고충을 위로하려 들었다.
육아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산을 오르는 일이다. 어떤 이는 언어 문제로, 또 어떤 이는 수면이나 식습관, 감정조절 문제로 고군분투한다. 누군가는 아이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누군가는 밥 한 숟갈과 깊은 잠을 바라며, 또 누군가는 진한 눈 맞춤과 미소를 꿈꾸며 하루를 산다. 오직 그 산을 다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막함과 아이에 향한 간절함만이 공평하다.
그간 한껏 좁아졌던 나의 세계에서 고개를 들어 본다. 각자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과 눈이 마주친다면, 여러 말을 하는 대신에 단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나누고 싶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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