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슬픔과 함께 살아가기

마이데일리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한성수] 시기와 대상은 제각각이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 상실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다. 그 슬픔은 살면서 겪는 어떤 고통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힘들다. 어떤 사람은 이를 이겨내고자 전문가를 찾는다.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며 남은 인생을 비탄과 우울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

대학 졸업 후 뉴욕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사랑하는 친형을 암으로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가족 간 오랜 유대감 덕에 형과 함께한 마지막 나날들은 아름답고 충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단짝처럼 지내던 이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브링리에게 맨해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도유망한 직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 없었다. 아니,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결심한다. 푸른 제복으로 자신을 가린 다음 사람들이 그림을 못 만지게 하는 일이었다.

브링리는 그렇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수만 년에 걸쳐 내려온 고대 유물부터 거장들이 남긴 눈부신 작품까지, 300만 점에 달하는 예술품에 둘러싸여 살게 된다.

“아침은 늘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더욱이 미술관 문을 열기까지 30분 정도 남겨두고 근무 자리에 도착하는 날이면 말을 걸어 나를 속세로 끌어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뿐이다. 메트의 옛 거장 전시관이 마을이라면 주민은 거의 9천 명에 달한다(몇 년이 흐른 후 전시실 하나하나를 섭력하면서 모두 세어본 결과 정확히는 8496명이었다).”

이전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안전지대에 머물며 얻은 건 완벽한 고요함이 주는 위로였다. 그 안에 살며, 수 세기를 걸쳐 내려온 경이로운 예술품 모두가 지금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브링리는 형이 죽은 직후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잠이 든 아들을 보고, 나를 보고, 새벽빛을 보고, 아픈 몸을 보고, 그 끔찍함을 보고 그 우아함을 보았다. ‘우리 좀 봐.’ 어머니가 말했다. ‘봐, 지금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린 그림이잖아.’”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하며, 역설적으로 그런 예술로 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책 말미에 ‘이 책의 모든 건 형 톰을 위한 것’이라고 썼다. 그의 고백처럼 이 책은 죽은 형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일 수도 있다. 고독 속에서 이 책을 쓸 때, 자신의 자전적 고백이 전 세계 수많은 독자 가슴에 깊게 박힐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이것이 책이 지닌 힘인지 모른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뉴욕에 사는 잘 나가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극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상실을 극복하는 것 말고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독특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안내하는 예술서로, 나약한 인간이 극한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치유서로,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지를 다룬 철학서로도 읽힌다. 어떤 관점에서 읽든 인생은 유한하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 그래서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각설하고 이번 주말엔 어디 가까운 전시회라도 다녀오고 싶다. 충만한 고요가 주는 위로를 나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북에디터 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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