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파기환송심 연기… ‘절차’ 뒤에 숨은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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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이 멈췄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소추는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조항을 이유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을 ‘추후 지정’으로 연기했다. 제21대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자를 향하던 사법부의 칼날이 이제는 법률에 따른 ‘절차’ 뒤에 숨어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 헌법 제84조, 법률적 흠결 vs 법기술자의 법피아 전략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기일을 변경하고 추후지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결정은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추후지정(추정)’이란 기일을 변경, 연기 또는 속행하면서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법원 실무에서는 이를 ‘추정’이라고 표현한다.

헌법 제84조의 취지는 대통령직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해 국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형사상 특권을 부여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의 해석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소추’의 의미와 관련해 ‘대통령 취임 전 개시된 형사재판이 취임 후에도 계속될 수 있는지’가 주된 쟁점이었다.

대통령 취임 전 공소제기가 된 경우 법원이 현직 대통령을 ‘재판’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의견이 둘로 나뉘고 있다. 우선 한쪽은 헌법 제84조에 따라 법원은 내란‧외환의 죄 이외의 범죄에 대해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대통령 취임 후에는 ‘피고인에 대해 재판권이 없을 때’에 해당하므로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은 헌법 제84조의 ‘소추’란 공소제기만을 의미하므로 ‘재판절차 진행’ 자체는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계속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의도연구원은 “대통령의 취임 전 행위나 직무와 무관한 행위는 이 특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9일) 서울고법이 이재명 대통령의 파기환송심을 무기한 연기함에 따라 헌법 제84조의 해석상 논란과 관련해 법원이 입장을 밝힌 셈이 됐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자들은 5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파기환송 선고에 대해 대법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 뉴시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자들은 5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파기환송 선고에 대해 대법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 뉴시스

이에 국민의힘은 ‘대통령이란 권력 앞에 사법부가 굴복했다’는 취지로 맹비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연기 소식과 관련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권 원내대표는 “판사가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포기한 셈이다”라며 “서울고법의 판단은 사법부 흑역사로 남아 대통령 권력에 무릎 꿇은 판사 이름이 법학 교과서에 박제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동훈 전 대표도 같은 날(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무관하게 임기 시작 전에 이미 피고인의 신분에서 진행 중이던 형사재판을 중지하라는 조항이 아니다”라며 “헌법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법원 독립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잘못된 결정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희대의 사법쿠데타’가 잠시 몸을 낮춘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재명 정부가 집권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점과, 사법개혁을 향한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한 정부라는 점에서 사법부는 최대한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또,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도 사법부가 정치권 눈치를 보는데 한몫했다는 풀이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대선 개입 논란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이들은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절차란 외형 뒤에 숨어 공정한 척 권력에 기생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돌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준비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 때 예정대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대통령 당선 시 형사재판을 중단하는 내용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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