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1978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이 종료 수순에 접어들었다. 협정 제31조에 따라 이달 22일부터 어느 한쪽이 협정 종료를 통보할 수 있는 법적 시점에 진입하면서, 일본 측의 ‘새판 짜기’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협정은 제주 남방 약 400km, 동중국해 일대를 ‘공동개발구역(JDZ)’으로 설정하고 양국이 해당 해역의 자원 탐사와 개발을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한 취지로 체결됐다. 7광구라 불리는 이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석유 및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실질적인 개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협정 발효 당시 국제법상 대륙붕 연장론이 우세했기 때문에 일본 오키나와 해구에 인접한 지역이더라도 한국이 해저 지형을 근거로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국제사회의 기준은 ‘거리’ 중심의 중간선(median line)원칙으로 이동했고, 이 기준이 일본 측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2월 9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서는 이 사안이 공식적으로 언급됐다. 일본 민주당 소속 오가타 린타로 의원(緒方 林太郎)은 협정이 “당시 국제법의 통설이었던 자연연장론을 전제로 일본 쪽에만 공동개발 광구(鉱区)를 설정한 불균형한 구조”라며, 현행 국제법이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는 형평 원칙으로 전환된 만큼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해양경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향후 협정 종료 후 재협상 가능성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중간선 기준이 일반적인 국제 판례”라고 답변했다. 또한 당시 외무상이던 가미카와 요코(上川 陽子) 장관도 “국제법상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계 설정은 당사국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중간선이 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 내에서 재협상 필요성과 함께 일본 측의 법적·지리적 정당성을 근거로 한 주도권 확보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그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동개발을 미뤄왔으나, 최근에는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주도권 확보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창건 국민대 교수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를 통해 “일본은 한국 새 정부의 태도를 관망하다가 적절한 시점에 협정을 파기하고 재교섭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이 사안은 독도나 교과서 문제처럼 과거 문제가 아니라 미래 자원과 해양 영토의 문제인 만큼, 청와대 차원에서 TF를 꾸려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이 종료될 경우, 7광구는 단순한 한일 간 갈등을 넘어서 한·중·일 3국의 자원 경쟁지로 변모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은 이미 7광구 인접 해역에서 펑후 유전, 룽징 가스전을 운영하며 동중국해에 자원 주권을 강화하고 있다. 또 최근 서해 공해상에 구조물을 잇달아 설치하며 해역 영향력을 키우는 모습도 포착됐다.
자원의 실체에 대한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한국석유공사가 2000년대 초반 수행한 물리탐사 결과에 따르면, 7광구 일부에 약 2억 6천만 배럴 규모의 원유가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왔으나, 이는 일부 구역에 국한된 수치였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는 동중국해 전체에 1000억 배럴 수준의 석유와 대규모 천연가스가 매장되었을 수 있다고 보았지만, 이 역시 7광구에 한정된 데이터는 아니었다.
외교적으로도 민감한 국면이다. 일본의 일방적인 종료 선언은 한일관계의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될 수 있고, 한미일 협력 구도에도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이 중국의 확장을 경계해 신중한 입장을 택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복잡한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외교적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협정 종료 여부가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동아시아 해양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지금부터의 대응 방향이 향후 수십 년간 한국의 자원 주권과 외교 입지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이 역사 문제와는 별개로 실리를 앞세워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면에서, 한국 정부 역시 과거의 수세적 외교에서 벗어나 주도적이고 구조적인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일본 측 결정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EEZ 해역 내 권리 확립을 위한 탐사 주도, 국제 여론전, 미국과의 공조 등 다층적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교적 협상의 주체로서 이재명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전략적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향후 협정 종료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외교적·경제적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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