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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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이미연] 담해북스, 부동산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 9평 남짓 자그마한 공간. 때로 책방, 사무실, 작업실로 부르지만 모두가 답이자 답이 아닌 공간. “저도 책방을 열고 싶어요”라든가 “이런 공간에서는 정말 글이 잘 써지겠어요” 하는 칭찬에 애써 웃게 되는 공간. 이 공간을 한 번 더 이어갈지 고민에 빠졌다.
“이 공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5년 전 이맘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내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물음표를 가득 품고 부동산 수십 곳을 찾아다녔다. 손님이 찾아올 공간인데도 ‘나’에 한정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 공간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출판계 불황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손님이 자주, 많이 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두려움에 떨고 아직 백신도 나오지 않은 시기였다.
확인한 상가를 백 곳 가까이 채워갈 무렵, 드디어 ‘자기만의 방’을 만났다. 물론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이 공간에서도 일이 잘되는 때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었다. 특히 월세를 내는 날이면 일이 손에 잡히기는커녕 손이 떨려 잘되던 일도 안 될 지경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거나 기대하는 것만큼 항상 잘되거나 잘 풀리는 공간은 아닌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공간이 존재하기는 할까. 영감은 특정 공간에 있다고 해서 번뜩 나타나지 않는다.
<영감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방’을 소개한 공저자 20인도 이와 같이 말한다.
이다혜 씨네21 기자는 “내가 아무리 집에서 멀리까지 떠나도 나 자신을 데리고 가는 한 어디에서도 원고는 저절로 써지지 않는다”고 하고, 정승민 디자이너는 “영감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찾아내고 만들어가야 하는 수련의 과정”이라고 하며, 홍인혜(루나) 만화가는 “영감이 샘솟고 창의력이 몰아치면 좋겠으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다만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는 긍정은 생겨난다”고 한다.
<영감의 공간>에서 소개한 공간은 침대(박참새), 욕조(하완), 요가 매트(민혜원)의 한 뼘 공간부터 올리브영(원도), 망원유수지 체육공원(미깡), 덕수궁(최재혁), 제주도 하도리 해변(황의정)의 광활한 공간까지 다양하다.
각기 다른 공간이지만 작업자에게 쉼을 선사하는 공간, 가장 ‘나’다운 상태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은 모두 같다. 작업자마다 공간과 방법은 달라도 내 작업을 꾸준히 해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잘 쉬고 잘 채워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모레도 계속하기 위해 애썼다.
애초에 공간이 어디든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다음에는 다른 공간이 영감의 공간으로 소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작업자 20인이 소개하는 공간보다 그 속 담긴 그들의 의지, 각오, 마음가짐이 더 돋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공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영감의 공간>을 읽고 나서 질문을 바꿔 보았다. “나는 그동안 이 공간에서 어떤 마음이었나?” “무얼 해왔나?” “앞으로는 무얼 하고 싶나?” “가장 나다운 일인가?” “그 일을 하기에 이 공간이 알맞은가?”
줄줄이 늘어난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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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이미연 |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인스타그램 담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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