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건설업계가 국책사업에 있어 '자발적 이탈'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국책사업은 무조건 한다'는 불문율에도 불구, 건설사들이 각종 리스크를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책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는 2029년 개항 목표로 추진되는 '국가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 가덕도 신공항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최근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현대건설 컨소시엄과의 계약 절차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현대건설, 가덕도 신공항 "기술적 한계 등 감당 불가"
앞서 지난해 10월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가덕도 신공항 △부지 조성(667만㎡) △활주로 1개(길이 3500m) △유도로 12개 △계류장(72대 주기) △방파제·항행안전시설 등을 구축하는 부지조성공사 수의계약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사업비는 국내 시행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 역사'상 최대 규모인 무려 10조5000억원에 달한다. 현대건설(지분율 25.5%) 컨소시엄에는 △대우건설(18%) △포스코이엔씨(13.5%)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국토부와 현대건설은 공사기간을 두고,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당초 입찰조건이 공사기간 84개월이지만, 현대건설 측이 기본설계에 있어 "추가 공사 기간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공사 기간을 9년(108개월) 이상으로 산정했으며, 이를 반영한 설계 연장을 요구했다"라며 "바다 속 연약지반 안정화에 17개월이 늘어나고, 공사 순서를 바꾸는 데에만 7개월이 필요해 24개월 가량 추가 기간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토부는 2029년 가덕도 신공항 개항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84개월 완공'이라는 입찰 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국토부는 8일 참고자료를 통해 "부지조성공사 수의계약 상대방 현대건설 컨소시엄으로부터 기본설계를 보완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접수했다"라며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기본설계를 보완하지 않아 국가계약법령에 따라 수의계약 체결이 어려워진 만큼 현재 진행 중인 수의계약을 중단하는 절차에 착수한다"라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현대건설 기본설계·기본계획 토대로 합동 TF·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거쳐 사업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나아가 재공고를 통한 새로운 사업자 선정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현대건설은 이와 관련해 현 입찰 조건으로는 기술적 한계 등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토부 재입찰 조건을 확인 후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최근 국책사업과 관련해 정부·지자체 등 해당 당국과 민간 건설사 간 마찰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갈등의 주요 요인으로는 △정책 불확실성 △리스크 전가 등으로 꼽힌다.
이처럼 국책사업에서 민간 사업자가 빠지는 요인으로는 △정책 불확실성 △리스크 전가 등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인프라 사업을 수익성 전제로 진행하는 건설사 등 민간 사업자와는 달리 정부·지자체는 정책적 목표를 이유로 추진한다"라며 "즉 정부·지자체 등이 앞세우는 비현실적 수익성 목표나 규제가 건설사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책사업 기본인 '공공성'을 고려한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선 민간 건설사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에 사업성 리스크까지…민간 참여 "근본적 검토" 필요
더군다나 최근 건설 경기 침체까지 더해지자 건설업계는 '사업성 리스크'가 우려되는 사업을 향한 태도가 소극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오는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는 서부선 경전철 사업이 대표적이다.
서부선 경전철은 총 사업비 1조5783억원 규모로, 새절역부터 서울대입구역까지 서울 서부 지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서부권 교통 숙원 사업'이다. 지난 2000년 계획이 첫 발표될 정도로 현재 진행되는 수도권 광역 교통망 가운데 가장 오래 지체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민투심)를 통과했지만 '민간사업자' 두산건설 컨소시엄이 건설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으면서 재차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두산건설 컨소시엄 건설투자자로 참여한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해당 사업에서 철수했다. 민간투자사업(BTO) 방식인 점을 감안, 급격한 공사비 상승 및 공기(工期) 차질 등 사업성이 매우 낮고, 장기간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1조7000억원 규모 위례신사선 민자철도 사업도 미궁에 빠진 상태다. 수년 간 사업을 추진한 GS건설이 미흡한 수익성과 과도한 리스크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돌연 철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GS건설이 민간투자사업(PF)으로 추진한 위례신사선 사업은 초기 단계부터 수익성 문제가 대두됐다"라며 "특히 서울시가 제시한 수익성 목표·공사비 상승이 맞물리면서 GS건설 입장에서는 결국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회상했다.
이처럼 최근 건설업계에 있어 국책사업도 수익성 위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선별적 수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공성이 우선되는 사업엔 참여 자체가 '명예'였던 과거와는 달리 △자금 조달 구조 △장기 운영 리스크 △민원 발생 가능성 등 종합적 손익 판단이 선행되는 추세다.
특히 '예산과 기간'이라는 엄격한 제한 속에서 여러 리스크에 대한 불확실성은 나날이 확대된다는 게 건설업계 설명이다. 나아가 정권 교체 또는 정책 변화에 따른 불안감도 또 다른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책사업 '민간 참여 모델'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술적 한계와 수익성, 정치적 리스크가 얽히는 상황에서 민간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지 않으면 대다수 건설사가 국책사업 참여를 꺼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본계획을 짜고, 건설사가 이에 맞추는 과거 방식으로는 민자 유치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라며 "이런 리스크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도 민간 건설사들이 국책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책사업 추진 구조가 제대로 '윈-윈' 모델로 발전하기 위해선 사업 리스크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균형 있게 나눠가질 수 있는 민관 협력 구조가 전환해야 한다"라고 첨언했다.
건설사들이 국책사업마저 외면하는 현상은 단지 수익성 문제를 넘어 개발사업 구조 전반이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대변한다. 과연 정부와 민간이 함께 협력해 실질 수익성과 위험 분담 체계를 갖춘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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