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김성철이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로 관객 앞에 섰다.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로 분해 대선배 이혜영 옆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 그는 “‘투우’가 ‘조각’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성철이 호연한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영화로,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민규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섹션에 이어 제43회 브리쉘 판타스틱 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들의 초청을 받으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지난달 30일 국내 개봉 후 호평 속에 역주행을 기록하는 등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투우’를 연기한 김성철을 향한 반응도 뜨겁다. 냉혹한 킬러의 면모부터 어딘가 불안하고 어쩐지 아이 같은 모습까지 다채롭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 강도 높은 액션과 ‘조각’을 향한 복잡미묘한 감정 연기까지 탁월하게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조각’ 역의 이혜영과의 ‘케미스트리’ 역시 흠잡을 데 없다.
영화 ‘댓글부대’ ‘올빼미’,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등 스크린 안팎을 모두 장악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대중의 신뢰를 얻어온 김성철은 ‘파과’에서도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극의 몰입을 더한다.
김성철은 최근 시사위크와 만나 캐릭터 구축 과정과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 등 ‘파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와 OTT 시리즈까지 종횡무진 활약 중인 그의 원동력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소감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 영화배우였으니까 영화배우로서 큰 영화제에 간다는 것 자체가 뜻깊다. 상을 받고 안받고 떠나서 해외영화제 특히 베를린에서 상영하는 게 감사한 일이었고 뜻깊은 기억이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운이 잘 맞아서 이런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베를린도 생각 못했는데 다녀왔으니 3대 영화제에 다 가고 싶은 마음이다.(웃음)”
-기자간담회에서 ‘조각’을 찾아야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가진 인물이라고 ‘투우’를 설명했는데 어떤 의미였나.
“나도 일을 하면서 목표가 있잖나. 그런데 재작년에 그 목표를 이뤘는데 뭔가 공허해지더라. 그때 읽은 책에 ‘목표 있는 삶을 살기보다 목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글이 있었다. 그게 ‘투우’에게도 적용이 됐다. 목표물만 있었던 거다. ‘조각’이라는 인물을 만나는 것. 영화 안에서 ‘투우’에게 목적이 뭐냐고 물어보면 장난스럽게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자신도 어디로 그 해답을 계속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답들을 시나리오에서 찾을 수 있어서 캐릭터를 만드는 게 더 재밌었다.”
-‘조각’을 향한 ‘투우’의 감정은 어떻게 해석했나.
“시나리오도 그렇지만 원작 자체에서도 알 수 없는 감정, 느낌이 있는데 나도 약간 파헤치는 게 좋은가보다. 그 알 수 없음을 해내고 싶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다. 언제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싶고 알 수 없는 도전 의식이 있어서 이번에도 ‘투우’의 마음을 일차원적으로 느껴지게 하기보다 다채롭게 관객에게 다가갔으며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감정이 느껴졌으면 했다. ‘투우’의 시선으로 보면 잔혹동화지. ‘파과’는 ‘조각’을 대변하는 이야기고 ‘투우’는 ‘조각’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 아닐까 생각했다.”
-민규동 감독이 ‘투우’를 표현하는 데 강조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나는 보통 촬영할 때 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현장에서 조율하면서 찍는 편인데 ‘투우’는 이렇게 가자 이런 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감독님과 애매모호함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애모하다는 것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애매모호한 감정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애매모호하다는 게 정말 애매모호하잖나. 그 해답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냥 시도를 많이 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풀파워도 써봤다가 아예 없이도 해봤다가 그러다 보면 최적의 감정이 나오겠지 하며 여러 시도를 했다.”
-연기적으로 또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
“원작 소설이 굉장히 문학적이고 대사도 그렇기 때문에 그걸 내뱉는 게 사실 쉽지 않았다. 우리가 평소 쓰는 말이 아니니까. 내 대사 중에서도 그런 게 굉장히 많았거든. 그걸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하는 게 중요했다. 원작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되 영화적으로 더 증폭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투우’는 아이의 모습에서 멈춰져 있는데 그게 잔혹함과 맞닿을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상당했다. 이혜영은 그런 ‘투우’를 두고 ‘청순한 잔혹성’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지점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정신연령이라는 게 느껴지잖나. 행동, 말투, 어떤 눈빛에서 정신 연령이 낮다는 게 느껴진다. 애어른 같은 느낌. ‘투우’의 시간은 아버지가 죽고 ‘조각’이 떠나던 날 멈췄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성장은 없었다고 디자인했던 것 같다. 그래야 이 서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같은 게 아니라 어린아이가 맞는 것 같다. 몸만 성장했고. 수많은 경험을 했겠지만 그 경험 속에서도 ‘투우’가 추구한 것은 ‘조각’과 대면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성장도 없었을 거다. 말투나 눈빛, 행동에서 아이 같은 느낌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액션 연기는 어땠나.
“액션을 주로 하는 작품을 만날 기회가 지금까지는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진짜 하고 싶던 와중에 ‘파과’를 만나게 됐고 이 작품을 통해 다음에도 액션을 기대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액션 영화를 할 수 있다면 또 하고 싶다. 액션 스쿨에 가서 기초 훈련하고 합을 맞춰보고 그렇게 준비했다. 부상은 피지컬 팀에서 케어를 잘 해줘서 없었다. 다만 ‘조각’의 속도에 맞춰야 해서 템포가 힘들었다. 내가 해오던 템포가 있는데 완전히 다운되니까 그걸 맞추는 게 쉽진 않았다.”
-이혜영의 노련함과 연륜으로 완성된 ‘조각’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선배들 모니터 보면서 ‘와 미쳤다’ 싶은 경우는 많았는데 ‘경이롭다’고 표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초반 선생님(이혜영)과 촬영하다가 저 멀리서 걸어와서 딱 보는 거였는데 너무 경이로운 거다. 그냥 뭘 하지 않았는데 느껴지는 품격과 이미 ‘조각’이 된 얼굴까지. 연륜과 경험이 배우에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에 60년 동안 쌓여 보이는 거니까 그냥 경이롭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선생님의 존재는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많이 계시지만 이혜영 선생님의 유니크함은 없었던 것 같거든. 시나리오와 소설을 같이 읽으면서 ‘조각’이라는 인물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이혜영 선생님밖에 없었다. 웹툰이나 소설을 보면서 대중이 가상 캐스팅으로 상상하곤 하잖나. 본인이 생각한 배우가 아닐 때 지탄을 많이 받기도 하는데 선생님을 과연 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까. 난 없을 것 같다.”
-현장에서는 어떤 선배였나.
“같이 연기할 때는 굳이 어떤 대화를 하지 않아도 나는 ‘투우’로서 까불었고 선생님은 ‘조각’으로서 나를 대해줬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많이 했고 그 캐릭터와 완전 ‘찰떡’이잖나. 그 사람 같고. 그만큼 연기를 잘한다는 건데 대중이 느꼈을 때는 원래 그런 사람처럼 보일 수 있잖나. 나조차 촬영할 때 쫄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실제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첫 리딩 때 엄청 멋있게 하고 오셨는데 이런 자리인지 몰랐다면서 당황하시더라.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선생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게 재밌었다.
정말 너무 멋있지 않나. 주름으로도 표현을 하시니까 너무 멋있다. 배우는 보이는 직업이기 때문에 얼굴도 중요하고 목소리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가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뿜어나오는 에너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거든. 그런데 선생님의 에너지 자체는 너무 고유하다. 모든 배우가 대체 불가이길 원하는데 선생님은 대체 불가다. 그런 면에서 정말 닮고 싶다,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엄청 크다.”

-배우로서 세운 목표를 이뤘다고 했는데 그 목표가 무엇이었나. 새로운 목표, 목적이 생겼나.
“한 해에 연극, 뮤지컬, 드라마를 다 하는 게 목표였다. 스케줄이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 그런데 그게 돼서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약간 허탈감이 있었다. ‘그냥 목표였을 뿐이네’ 싶은 마음이었다. (새로운 목표는) 모르겠다.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 같다. 힘든 시국에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감사한 마음이고 좋은 작품을 또 만나서 좋은 캐릭터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시간이 갑자기 빨리 가더라. 뭔가 느끼고 생각할 겨를 없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하루하루를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떤 목표나 목적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쉼 없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치진 않나.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내게 주어지는 기회들을 100% 활용하고 싶다. 무대에 설 수 있고 영화도 찍을 수 있고 드라마도 찍을 수 있는 여건이 되고 기회가 주어지니까 그 자체가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에너지가 소비되고 힘들어도 그 당시 감사함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팬들이 찾아와 주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
-인간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어떤 생각, 공감을 했나.
“배우야말로 정말 ‘쓸모’ 있어야 하잖나. 항상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 어떤 작품에서도 내가 이 역할에 맞으니까, 쓸모가 있으니까 캐스팅되는 거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거든. 그래서 쓸모에 대해 언제나 생각한다. 지금도 ‘파과’에서 내가 과연 쓸모 있게 ‘투우’를 잘 해냈나 생각한다. 사실 자책도 매번 하고 흥행이 안되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생각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나를 계속 찾아주신다는 것에서 나의 쓸모를 찾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얼마 안 걸렸다. 신인 때는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나 진짜 쓸모없구나’ 생각했는데 배우라는 작업이 단순히 연기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더라. 이미지도 맞아야 하고. 나는 무대를 했으니까 무대에서는 영국 사람도 할 수 있고 일본 사람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거든. 그런데 영상에서는 그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그걸 이해하고 나서는 떨어져도 이미지가 맞지 않나 보다 하면서 씁쓸하지만 자책은 안하게 됐다.”
-최근 주로 장르물에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끌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연기할 때 재밌다. 캐릭터가 워낙 세니까 평소 안하는 것들을 할 수 있잖나. 엄청 집중해서 하는 과정이 재밌고 찾아내고 창작하는 것들이 재밌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좀 산뜻하고 그런 거 하고 싶다. 다음 작품도 악역이긴 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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