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22년 9월26일, 민주당의 주도 하에 양곡관리법의 개정안이 상정됐다. 이는 도지사들이 정부에 쌀값 안정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는데, 많은 논란을 낳은 채 2023년 4월4일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이 논란의 양곡관리법이 무엇인가?
양곡관리법, 줄여서 양곡법은 1950년 2월16일 양곡의 효율적인 수급 및 관리, 그리고 양곡증권정리기금의 설치 등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이 제정된 원인은 특정 양곡이 과잉 생산되었을 시 정부가 수매 및 시장격리 조처를 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과잉 생산되는 곡물은 쌀밖에 없기에, 양곡법은 결국엔 쌀에만 적용이 가능한 실정이다. 2024년 대한민국은 365만 7000톤의 쌀을 생산하였는데, 이는 2023년에 비해 약 1.2% 감소한 수준이다 (통계청). 그러나 1인당 쌀 소비량 역시 55.8kg로 전년대비 1.1% 감소했다 (통계청).
또한 대한민국의 쌀의 식량자급률은 매년 90% 이상을 웃돌고 있고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해 매년 40만 8700톤, 즉 한국 생산량 약 11%가량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쌀 과잉 상태로 매년 고생 중이다.
이에 반해 밀, 콩, 옥수수 등 다른 곡물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대한민국의 식량자급률은 밀 0.7%, 콩 7.7%, 옥수수 0.8% 수준에 달할 정도로 쌀을 제외한 품목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상이다. 더더군다나 2021년 곡물 수입액에만 89.5억 달러를 소비해 대한민국에게 큰 재정적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양곡법에 따른 국가적 손실과 비슷한 가격인데,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양곡법에 따른 쌀 매입과 보관에 연간 1조6000억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2024년에는 1조2266억 원을 매입비에, 전국 3400개에 쌀 168만 톤을 보관하기 위해 4061억 원을 사용하는 등 큰 지출이 매년 일어나고 있다.
쌀 외의 높은 수입 비중, 쌀의 과잉 생산, 그리고 양곡법에 따른 쌀 매입과 보관에 드는 비용 등 양곡법의 비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여러 가지다. 이는 양곡법으로는 현재 이어지고 있는 악순환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쌀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보다 1인당 소비량이 더욱 빠른 속도로 감소하며 추가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양이 있는데, 정부가 쌀을 매입해 보관하는 형태로는 세금의 부담만을 남긴 채 아무런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예산마저 감소하는 추세인 현재 양곡법은 돈이 질질 새는 구멍 역할밖에 하고 있지 않다.
필자는 양곡법의 근본적 한계를 직시하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농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제안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쌀 재배 면적은 69만8000헥타르로 전체 식량작물 재배면적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WTO 협약에 따른 연간 40만8000톤의 의무수입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농업은 이미 과잉공급의 늪에 빠진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쌀 매입과 보관 비용으로만 매년 1조 6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적, 재정적으로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예산 낭비를 넘어, 미래를 향한 투자 기회를 스스로 봉쇄하는 어리석은 행위다. 따라서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쌀 중심 농정의 틀을 과감히 깨야 할 시점이다. 정부 주도의 명확하고 강력한 정책을 통해 쌀 재배 면적 일부를 밀, 콩, 옥수수 등 수입 의존도가 극히 높은 주요 곡물로 전환해야 한다.
밀(자급률 0.7%), 옥수수(0.8%)와 같은 곡물은 대한민국 식량안보의 아킬레스건이며, 이를 외면한 채 쌀에만 몰두하는 것은 정책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러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권고가 아닌 정부 차원의 체계적 계획과 인센티브 제공, 대규모 농업단지 조성, 계약재배 기반 구축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대규모 단지에서의 일괄 재배는 생산성과 단가 경쟁력을 높이며,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속에서 국내 수급 안정을 보장하는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농업은 한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 산업이다. 더 이상 표심을 위한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농업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 쌀 중심 농업을 과감히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재정 낭비를 막고, 식량 자급이라는 국가적 명제를 실현하며, 농민들에게도 새로운 생존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이제는 실용적 농정을 통해, 국가와 농민 모두가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를 구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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