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임다영·안혜림·홍서연 인턴기자 △혼밥 △혼카페 △혼영화. 혼자가 낯설지 않은 사회 속에서 집단은 점점 작은 단위로 분화돼 가고 있다. 이렇듯 혼자가 더 익숙한 현실에도 여전히 청년들은 ‘모이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가 청년들이 한데 모인 현장을 포착했다. 첫 번째 현장은 다름 아닌 야구장. 야구장에서 만난 수많은 20대 청년은 프로야구에 열광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소속감을 고취하고 있었다.
◇ 1,000만 관중 돌파한 KBO 리그… 2030 여성 관중 유입 늘어
지난 1월 KB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KBO 리그는 1,088만7,705명의 총관중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일정을 마쳤다. 또 평균 1만5,122명의 평균 관중을 기록하기도 했다. 평균 관중 1만5,000명 이상을 기록한 것은 KBO 역사상 최초로, 기존 최다 기록이었던 2012년에 비해 무려 약 1,600명이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KBO는 리그 관람객 및 일반 야구팬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 조사업체를 통해 총 8,00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팬 성향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프로야구에 대한 2030 여성의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KBO가 2024년 야구장을 찾은 만 15세 이상 관람객 4,000명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한 결과, 2023년보다 KBO 리그에 관심이 증가했다는 전체 응답은 64.3%였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77.9%의 관심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전체 응답보다도 13.6%p(퍼센트포인트) 높은 수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우리 팀 응원할 때 벅찬 마음 느껴요”
과거에 비해 프로야구에 대한 이들의 관심도가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시사위크 취재진이 직접 야구장 현장에 가봤다.

키움 히어로즈(이하 키움)와 두산 베어스(이하 두산)의 경기가 열린 지난 4월 2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은 궂은 날씨에도 야구장을 찾은 팬들로 북적였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현장엔 미리 도착한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응원 도구와 먹거리를 구매하기도 하고, 챙겨온 유니폼을 들고 사진을 찍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분주했다.
경기 시작 전 야구장에서 만난 김나래(가명·25) 씨는 키움 유니폼을 내보이며 자신을 키움 팬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서 처음 야구장에 왔던 날 재미를 느껴서 계속 야구장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야구장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팀을 응원할 때 소속돼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좋다”며 “각자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기만 해도 소속감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또 “다른 팀들은 모르겠지만 키움은 젊은 층이 더 많은 편이라 20대가 소속감을 느끼기에 적합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경기 시작 전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인터뷰에 응한 김민재(21) 씨는 “최근에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같이 응원가를 부를 때마다 벅찬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현장 분위기도 좋지만 야구는 티켓 가격이 싸서 좋다”며 “공연, 뮤지컬 등 다른 문화생활보다 가격이 확실히 저렴하다”고 전했다. 이어 “값싼 가격에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경제력이 없는 20대에게 정말 메리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응원’ ‘우리 팀’ 강조한 청년, 모이기 위해 찾은 야구장
현장에서 만난 20대 청년들은 개인주의가 심화하고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고 있는 사회에서도 ‘모임’이 필요하다고 입 모아 말했다. 이들은 모이기 위해 야구장을 찾았고, 프로야구의 응원 문화에서 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었다.
20대 후반의 유승하 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소속될 일이 거의 없는 시기가 있는데 야구장에서 팀을 응원하며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좋아하는 구단이 생긴 뒤 팀을 응원하기 위해 유니폼을 사거나 응원 도구를 사는 과정도 즐겁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또 오랜 두산 팬인 이나연(가명·24) 씨는 “두산은 원래부터 20대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20대의 응원 소리가 더 커진 것 같다”고 전했다. 야구장을 찾는 20대가 늘어난 현상에 대해서는 “우리 팀이라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응원하는 건 쉽게 하지 못할 경험”이라며 “소속감 고취는 물론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영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키움과 두산의 경기에서 키움이 우위를 점하자 응원석에 앉은 키움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응원 도구를 흔들며 열광했다.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두산의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두산 팬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결국 키움이 승리를 가져가며 야구 경기는 막을 내렸다.
당시 두산보다 낮은 순위에 있었던 키움이 가뿐히 두산을 이기는 광경은 우리 삶 속에서 청년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꼴찌가 1등을 가볍게 이기는 모습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도 홈런 한 번에 승패가 뒤바뀌는 모습 △경기가 안 풀리는 순간에도 식을 줄 모르는 응원의 열기로 한껏 상기된 팬들의 모습까지. 현실에서는 쉬이 보기 어려운 이 모든 광경을 야구장에선 당연하듯 찾아볼 수 있다.
9회 말까지도 승부를 쉬이 예측할 수 없어 끝까지 희망을 놓지 못한다는 점에서 프로야구는 이날 만났던 청년들이 전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했다. ‘함께’보다 ‘혼자’가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 사회에서도 청년들은 모일 수 있다는 희망을 바탕으로 소속되고 싶어 하고, 그런 갈증을 해소할 만한 희망 중 하나로 프로야구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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