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모이다⑤] 연대감과 소속감 느끼는 ‘열린 공간’

시사위크
사진은 1980년 5월 21일, 전남 광산군 송정리역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청년들이 “계엄철폐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한국일보, 뉴시스
사진은 1980년 5월 21일, 전남 광산군 송정리역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청년들이 “계엄철폐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한국일보, 뉴시스

시사위크=임다영·안혜림·홍서연 인턴기자  1980년대, 당시 청년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문구를 내걸고 권력에 대항하며 똘똘 뭉쳐 그들만의 뜨거운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았고, 대한민국엔 늦게나마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으로 인해 시민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추운 겨울날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에 나와야 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거리엔 늘 청년들이 있었다.

시사위크가 마지막으로 포착한 청년들이 모이는 곳은 바로 집회 현장이다. 지난해 겨울, 어두웠던 시위 현장을 저마다의 빛으로 밝게 비춘 20대 청년들은 그 속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 과거와 달라진 시위 문화, 문화는 변해도 마음은 같았다

1980년대 과거 시위 현장은 유혈사태가 빈번했으며 경찰이 쏜 최루탄으로 인해 많은 시민이 피해를 봤다. 거리는 회색빛 최루탄 연기와 시민들이 흘린 검붉은 피로 혼란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고 부단히 투쟁해 왔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집회의 상징이었던 회색빛 최루탄 연기와 검붉은 피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여러 차례 열린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에서는 다소 생경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친숙한 K-POP 음악과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내뿜는 불빛들이 집회 현장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시민들이 만든 하나의 무대였다. 집단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개개인의 시민들은 혼자서도 깃발을 제작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챙겨온 응원봉을 흔들며 간절한 마음을 표출했다.

청년이 새롭게 만든 문화로 인해 더 이상 집회 현장은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장소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제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는 ‘열린’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변화한 집회 문화 속 청년들이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은 무엇일까. 지난겨울 집회에 참여했던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 추운 겨울 원동력 된 ‘동질감’과 ‘연대감’

정지현 씨가 참여한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 모습 / 사진=독자 제공
정지현 씨가 참여한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 모습 / 사진=독자 제공

집회에 참여한 청년 정지현(가명) 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집회에 자주 참여하지 못해 내심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며 “그러던 중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나 집회에 함께 참여했다”고 전했다.

밴드를 좋아하는 정씨에게는 집회 참여를 위해 늘 챙기는 필수 준비물이 있다. △돗자리 △핫팩 △간식거리 △좋아하는 밴드의 슬로건 등이 그것. 슬로건을 챙긴 것에 대해 정씨는 “콘서트도 아니고 유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마음인 팬이 있으면 조금 더 힘이 되지 않을까 해서 챙겼다”고 전했다.

“집회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저처럼 슬로건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 곳곳에 계셨어요. 밴드 로고와 응원 문구를 넣은 깃발을 들고 오신 기수분들도 계셨고요. 이분들과 이전에 최소 한 번은 콘서트나 페스티벌 현장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다른 공연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요.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들과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게 뭉클하기도 했고 밴드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광장에 나온 시민’으로 함께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간 정씨는 총 6번, 그리고 대부분 혼자 집회에 참여했다. 정씨에게 청년들이 모여 만든 집회 문화에 대해 묻자 “서로 다른 응원봉을 들고 있어도 ‘응원봉’이라는 물건 자체를 매개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며 “(청년층이 비교적) 충분한 개방성을 가졌다는 점이 새로운 문화 형성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무런 연고 없는 개인도 편히 참석해서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며 “집회 현장에서 소속감을 느낀 청년 세대가 지금 형성된 문화를 잘 갈무리해서 점진적으로 사회개혁에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처음 참여한 집회, “미디어에서 접한 것과는 달랐어요”

집회에 처음 참여했다고 밝힌 이예지(가명·23) 씨는 “원래 정치나 집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위헌적 행위에 큰 충격을 받아 움직이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처음 집회에 참여했던 지난해 12월 7일을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집회를 참여하기 위해 이동 중인 모인 사람들의 모습 / 사진=독자 제공
집회를 참여하기 위해 이동 중인 모인 사람들의 모습 / 사진=독자 제공

“집회 장소인 국회의사당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이렇게 많은 사람과 제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모였다는 생각에 왠지 안심되더라고요. ‘민주 시민으로서 사회에 기능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더 소속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씨는 처음 참여한 집회에 대해 “미디어에서 접해온 집회 현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간 미디어가 조명했던 집회 현장은 다소 어둡고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져간 응원봉이 배터리가 없어서 계속 꺼졌는데 같은 응원봉을 가진 분이 여분의 배터리를 나눠주셨다”며 “같은 팀을 좋아하는 분이구나 싶어서 반갑고 감사했다”고 전했다. 또 “모두 다른 빛을 쥐고 있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집회 광경 자체가 민주주의의 표상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겨울, 여의도 밤을 수놓은 각양각색의 응원봉. / 시사위크 DB
지난 겨울, 여의도 밤을 수놓은 각양각색의 응원봉. / 시사위크 DB

이처럼 집회는 투쟁의 공간에서 더 나아가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돼가고 있다. 응원봉을 들고 신나는 음악을 개사해서 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뿐더러 개개인의 참가자가 직접 제작한 깃발들이 부대끼며 자유롭게 펄럭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청년이 있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집회가 축제냐’라거나 ‘집회를 놀러 가냐’는 등 부정적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청년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과,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시민이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터뷰 끝자락에서 이씨는 “변화한 문화가 청년의 정치 참여를 촉진하고 불안정한 정세에 흔들리는 청년 세대의 불안을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집회가 각자의 뜻을 모아 진심으로 임하는 자리인 동시에 너무 무겁지만은 않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청년, 모이다⑤] 연대감과 소속감 느끼는 ‘열린 공간’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