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화장실①] 한 칸에 담긴 서로 다른 필요

시사위크
매일 드나드는 익숙한 공간도 그 안에 담긴 사정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화장실도 그렇다. 문을 열고 들어가 용변을 보고 손을 씻는 잠깐의 일상에서 거울의 각도나 벽과 바닥의 색을 눈여겨볼 일은 드물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마련된 이른바 ‘모두의 화장실’은 이러한 필요를 한 칸에 담으려 한 공간이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입구. / 김윤혁 기자
매일 드나드는 익숙한 공간도 그 안에 담긴 사정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화장실도 그렇다. 문을 열고 들어가 용변을 보고 손을 씻는 잠깐의 일상에서 거울의 각도나 벽과 바닥의 색을 눈여겨볼 일은 드물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마련된 이른바 ‘모두의 화장실’은 이러한 필요를 한 칸에 담으려 한 공간이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입구. / 김윤혁 기자

시사위크=김윤혁 기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매일 드나드는 익숙한 공간도 그 안에 담긴 사정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화장실도 그렇다. 문을 열고 들어가 용변을 보고 손을 씻는 잠깐의 일상에서 거울의 각도나 벽과 바닥의 색을 눈여겨볼 일은 드물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사소한 차이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공간의 경계를 구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된다.

사람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상황과 방식이 다르다. 혼자서는 움직이기 어려워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공간이지만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구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작은 차이에도 이유가 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마련된 ‘모두의 화장실’은 이러한 필요를 한 칸에 담으려 한 공간이다. 성소수자의 화장실 이용 문제에서 출발한 논의는 장애인과 보호자, 아동과 양육자의 필요로 넓어졌다. 성별과 나이, 장애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필요를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어떻게 반영했을까. 지난 3일 성공회대를 찾아 그 안에 담긴 고민을 들여다봤다.

걷는 사람에게는 몇 걸음이면 지나갈 자리가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방향을 바꾸고 설비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다. 보호자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일 자리도 있어야 한다. 이유 없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여유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필수 공간인 셈이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내부. / 김윤혁 기자
걷는 사람에게는 몇 걸음이면 지나갈 자리가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방향을 바꾸고 설비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다. 보호자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일 자리도 있어야 한다. 이유 없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여유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필수 공간인 셈이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내부. / 김윤혁 기자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자리한 모두의 화장실에 들어서자 넓은 내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변기와 세면대 등 설비가 놓인 자리 외에도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확보돼 있었다. 일반적인 화장실과 달리 내부가 넓고 이동에 제약이 적은 구조였다. 성공회대 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입구에 미닫이 자동문을 설치하고 충분한 내부 공간을 확보했다고 한다.

보행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공간일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방향을 바꾸거나 설비에 접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다.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면적도 확보돼야 한다. 이유 없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여유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필수 공간인 셈이다.

내부에는 높이가 조금 다른 세면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세면대 위 거울은 손으로 눌러 상하 각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인권위는 휠체어 이용자나 키가 작은 사람도 자신의 모습을 쉽게 확인하도록 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거울의 기울기 하나에도 서로 다른 눈높이를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세면대 위 거울은 손으로 눌러 상하 각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인권위는 휠체어 이용자나 키가 작은 사람도 자신의 모습을 쉽게 확인하도록 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거울의 기울기 하나에도 서로 다른 눈높이를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세면대 거울 모습. 상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 김윤혁 기자
세면대 위 거울은 손으로 눌러 상하 각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인권위는 휠체어 이용자나 키가 작은 사람도 자신의 모습을 쉽게 확인하도록 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거울의 기울기 하나에도 서로 다른 눈높이를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세면대 거울 모습. 상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 김윤혁 기자

벽과 바닥의 타일 색에도 이유가 있었다. 밝은 벽과 달리 바닥에는 짙은 색의 타일이 깔려 있었다. 인권위는 약시 등 시력이상자가 두 면을 구분하기 쉽도록 색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경계가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에게는 인테리어의 일부일 수 있지만, 눈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공간을 알아보고 움직이는 데 도움을 주는 단서가 된다.

◇ 누구의 기준으로 만든 공간인가

벽면에는 기저귀 교환대와 영유아용 거치대가 설치돼 있었다. 아이와 함께 화장실을 찾는 양육자에게는 용변을 볼 자리 외에도 필요한 것이 많다. 기저귀를 갈 공간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용변을 보는 동안 아이를 안전하게 둘 수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성인 한 사람이 혼자 들어가는 상황에서 시선을 넓히면 화장실에 담아야 할 기능도 달라진다.

성별 구분이 없는 구조는 동행인의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또는 보호자의 성별이 다르면 남녀로 나뉜 화장실에서 함께 들어갈 공간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 구분을 없애 보호자나 활동보조인의 성별과 관계없이 함께 들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특별한 장치가 아닌 익숙한 설비에 더해진 작은 차이들이다. 거울을 기울이고, 손잡이를 더하고, 동행할 자리를 남겨뒀다. 그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조건도 드러난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모습.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한 보조용 계단이 놓여있다. / 김윤혁 기자
이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특별한 장치가 아닌 익숙한 설비에 더해진 작은 차이들이다. 거울을 기울이고, 손잡이를 더하고, 동행할 자리를 남겨뒀다. 그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조건도 드러난다. 사진은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모습.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한 보조용 계단이 놓여있다. / 김윤혁 기자

물론 넓은 공간과 안전바, 이용하기 쉬운 세면대 등은 기존 장애인 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는 설비다. 모두의 화장실은 여기에 성별에 따른 이용의 어려움과 돌봄·위생상의 필요를 함께 반영했다. 인권위는 월경컵을 편하게 세척할 수 있도록 내부에 세면대를 마련하고, 샤워기도 갖춰 용변 외에 몸을 씻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특별한 장치가 아닌 익숙한 설비에 더해진 작은 차이들이다. 거울을 기울이고 손잡이를 더하고 동행할 자리를 남겨뒀다. 그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조건도 드러난다. 서서 거울을 보고, 문제없이 공간의 경계를 구분하며, 도움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비가 필요한 이유를 알면 화장실을 보는 기준도 달라진다. 넓게 비워둔 자리는 남는 공간만은 아니고, 기울어진 거울이나 색이 다른 타일도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일 수 있다. 익숙한 화장실의 작은 차이는 공공의 공간을 누구의 기준으로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모두의 화장실은 그야말로 모두가 같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향을 담고 있다. 다만 처음부터 이 모든 필요를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 학내 성소수자 모임에서 시작된 질문은 어떻게 장애와 돌봄의 필요까지 아우르게 됐을까. 다음 편(https://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805)에서는 그 과정과 함께 다양한 이용자의 필요를 반영하며 달라져온 화장실의 기준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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