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이후에도 이어진 참극… ‘관계성 범죄’ 막을 해법은

시사위크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가 가해자로 목숨을 위협하는 이른바 '관계성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고위험 가해자를 조기에 식별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이혼 소송 중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차량에 태워 도주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가 가해자로 목숨을 위협하는 이른바 '관계성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고위험 가해자를 조기에 식별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이혼 소송 중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차량에 태워 도주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서울 송파구 장모 살인사건부터 제주 전 연인 살인사건, 전북 전주 배우자 살인사건까지. 올해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가 가해자로 목숨을 위협하는 이른바 ‘관계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앞서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거나 접근금지‧스마트워치 지급 등 보호조치를 받은 이후에도 참극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고위험 가해자를 조기에 식별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계성 범죄 신고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는 2021년 21만8,680건에서 2025년 28만9,368건으로 4년 사이 약 32.3% 증가했다. 교제폭력 신고 역시 △2021년 5만7,305건 △2022년 7만790건 △2023년 7만7,150건 △2024년 8만8,394건 △2025년 10만5,327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는 2021년 21만8,680건에서 2025년 28만9,368건으로 증가했다. 교제폭력 역시 2021년 5만7,305건에서 2025년 10만5,327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는 2021년 21만8,680건에서 2025년 28만9,368건으로 증가했다. 교제폭력 역시 2021년 5만7,305건에서 2025년 10만5,327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한 차례 관계성 범죄로 입건된 이후 동일한 피해자를 상대로 살인이나 살인미수를 저지르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관계성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가 이후 동일 피해자를 대상으로 살인 또는 살인 미수 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202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501건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23년 143건 △2024년 154건 △2025년 136건으로 매년 100건을 웃돌았으며, 올해도 상반기에만 68건이 발생했다.

◇ 위험성 커지는 교제폭력, 법적 공백 여전… 별도 처벌법 필요성 제기

전문가는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이 은폐되기 쉽고 △반복적으로 발생해 재범 위험이 높으며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폭력부터 GPS 추적 등 디지털 감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폭력이 중첩되고 △상대방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양상을 보이는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성에도 교제폭력을 직접 규율하는 별도의 법률이 없어 초동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긴급임시조치나 접근금지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가능하다. 스토킹 역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에 조치가 이뤄진다. 반면 교제폭력은 별도의 법률이 마련돼 있지 않아 폭행‧협박‧살인 등 개별 행위가 각각의 범죄 요건에 해당해야 형사법적 개입이 가능하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관계성범죄, 반복되는 여성 피해와 국가의 책임'을 주제로 간담회가 진행됐다. (좌측부터) 최응렬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명예교수, 김병배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 박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 정회진 성평등가족부 친밀관계폭력방지과 과장, 김상민 경찰청 스토킹정책 계장, 김혜미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과 조사관, 이성원 국민의힘 성평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모습. / 이민지 기자
지난 21일 국회에서 '관계성범죄, 반복되는 여성 피해와 국가의 책임'을 주제로 간담회가 진행됐다. (좌측부터) 최응렬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명예교수, 김병배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 박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 정회진 성평등가족부 친밀관계폭력방지과 과장, 김상민 경찰청 스토킹정책 계장, 김혜미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과 조사관, 이성원 국민의힘 성평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모습. / 이민지 기자

지난 21일 국회에서 진행된 ‘관계성 범죄, 반복되는 여성 피해와 국가의 책임’ 간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교제폭력은 아직 별도의 입법이 마련돼 있지 않아 기본적인 관계성 범죄사건 처리 절차에 준해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사실혼 관계의 경우 별도로 마련된 ‘사실혼 판단 체크리스트’를 통해 사실혼으로 확인되면 가정폭력 사건에 준해 긴급임시조치가 이뤄지고, 스토킹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스토킹 사건에 준해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며 “문제는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은 사례다. 이 경우 폭행이나 상해 등 개별 형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경찰이 선제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관계성 범죄의 유형 간 경계가 중첩되고 모호해 경찰이 현장에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도 언급됐다.

'관계성폭력 속 인명손실 방지를 위한 대안 모색'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한 박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교제폭력은 아직 별도의 입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입법 공백을 지적했다. / 이민지 기자
'관계성폭력 속 인명손실 방지를 위한 대안 모색'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한 박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교제폭력은 아직 별도의 입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입법 공백을 지적했다. / 이민지 기자

박성훈 박사는 “관계성 범죄는 유형이 서로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는 각각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며 “관계성 범죄 사건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수사관들은 비교적 빠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새롭게 업무를 맡은 경우엔 혼란을 겪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가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사건으로 처리해야할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결해야 할지 판단하기 모호한 상황에서 ‘통합 판단조사표’가 도움이 됐다는 현장의 반응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 통합 판단조사표를 활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박 박사는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범죄 경력을 확인하는 등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통합 판단조사표 자체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그러다보니 현장이 아닌 사무실로 돌아와 사후적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관계성 범죄 대응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평가도구 관련 교육 강화와 평가체계 개선 등 위험성 평가 고도화 △유치‧구속영장 신청 및 응급입원 등 고위험 가해자에 대한 사법적 조치 우선 고려와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고위험 가해자 대응 강화 △다기관 협력체계 구축 △교제폭력 관련 입법 등을 제시했다.

◇ 전자감독 확대만으로는 한계… “‘치료목적 보호수용제’ 도입해야”

현행법상 스토킹 가해자에게는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지만, 가정폭력 가해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현행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은 성폭력과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강도범죄, 살인, 스토킹 범죄 등 특정 범죄를 전자장치 부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해서도 전자장치 부착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자감독 대상이 확대될 경우 정신질환을 가진 고위험 대상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과제로 제시됐다. 

‘정신질환 고위험 전자장치 착용자에 대한 사법 입원 수용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는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 수용자의 증가로 인한 보호관찰 인력의 부족과 전자감독의 한계를 꼬집었다. / 이민지 기자
‘정신질환 고위험 전자장치 착용자에 대한 사법 입원 수용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는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 수용자의 증가로 인한 보호관찰 인력의 부족과 전자감독의 한계를 꼬집었다. / 이민지 기자

이날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교정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스토킹 범죄에도 전자감독이 도입돼 현재 수백 건 수준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신변보호 스마트워치와 연동되는 전자장치는 피해자가 피신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앞으로 잠정조치 형태로 전자감독을 명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자감독 대상의 확대만으로는 고위험 가해자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자장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 수용자가 6,000명 수준까지 증가한 상황에서 현재의 보호관찰 인력만으로 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관찰관 한 명이 20명의 고위험군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앞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잠정조치뿐 아니라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전자감독이 가능해질 경우 현장의 관리 부담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 교수는 ‘치료목적 보호수용제’ 도입 필요성을 제시했다. 현행 제도만으로는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정신질환 범죄자가 형기를 마친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21일 국회에서 진행된 '관계성범죄, 반복되는 여성 피해와 국가의 책임' 간담회에서 이수정 교수는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정신질환 범죄자를 형기가 끝난 뒤 치료 전담 시설에 수용해 재범 위험이 낮아질 때까지 치료‧재활하는 '치료목적 보호수용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 이민지 기자
21일 국회에서 진행된 '관계성범죄, 반복되는 여성 피해와 국가의 책임' 간담회에서 이수정 교수는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정신질환 범죄자를 형기가 끝난 뒤 치료 전담 시설에 수용해 재범 위험이 낮아질 때까지 치료‧재활하는 '치료목적 보호수용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 이민지 기자

이수정 교수는 “현재 정신질환이 있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치료감호를 적용하는 방식이 있지만 주로 중범죄자에게 적용되고 있다”며 “치료감호소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안정되면 남은 형기를 일반 교도소에서 채우는 방식으로 운영돼 실제 적용 대상은 극소수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교도소에 수용된 정신질환자 수가 2017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늘었다”며 “약물을 복용하는 수용자도 많은데, 결국 이들이 출소한 뒤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보호관찰을 받게 되면 관리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한국은 중범죄자가 형기를 마치면 지역사회로 돌아가게 된다”며 “반면 미국에서는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형기가 끝난 뒤에도 별도의 치료시설에서 약물 치료 등을 받으며 재범 위험성이 모두 소각될 때까지 입원을 하는 제도가 있다. 이러한 형태가 ‘치료목적 보호수용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객관적인 위험성 지표가 마련된다면 전자감독 대상자뿐 아니라 경찰이 관리하는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가해자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도 치료하는 형태의 입법을 검토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제도가 마련된다면 고위험 대상자 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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