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정감사는 권력을 가진 쪽이 듣고 싶은 말을 듣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을 가진 쪽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요구하는 자리다. 그래서 국정감사를 두고 흔히 '야당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국정감사는 야당만의 시간이 아니라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권력 감시의 시간'이다.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증인 채택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조희대 대법원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을 거부한 경위 등을 묻겠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표면적으로는 한 명의 증인을 국정감사장에 부를 것인가의 문제지만, 본질은 그보다 크다. 국회가 사법부를 어디까지 견제할 수 있는지, 사법부 독립은 어디까지 보장돼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견제의 기준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라져도 되는지를 묻는 문제다. 국정감사는 권력기관을 감시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증인 채택 역시 일관된 원칙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여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증인은 채택하면서 야당이 요구한 증인은 배제하거나, 특정 권력기관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다른 권력기관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국정감사는 본래의 감시 기능보다 정쟁의 수단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야당 역시 정치적 공격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증인 채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를 부르느냐'보다 '왜 부르느냐'다. 왜 이 증인이 필요한지,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국민에게 어떤 답변을 들려주려는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기준이 다른 권력기관에도 적용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삼권분립의 핵심 역시 서로 다른 권력이 완전히 단절되는 데 있지 않다. 각 권력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되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데 있다.
고대 로마 공화정은 현대적 의미의 삼권분립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권력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여러 관직과 제도를 통해 상호 견제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권력분립의 역사적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키케로의 삶은 제도만으로 권력의 집중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공화정의 제도가 존재했지만 권력투쟁이 격화되면서 그는 결국 숙청의 희생자가 됐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회가 되새겨야 할 것도 제도의 이름보다 제도를 운용하는 원칙이다.
권력은 스스로를 견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정감사가 필요하고, 그래서 불편한 증인과 불편한 질문도 필요하다. 다만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증인을 부르거나, 반대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증인 채택을 막는다면 국정감사의 본질은 흔들린다.
권력자에게 듣기 좋은 질문은 당장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한 질문을 듣지 않는 권력은 스스로의 문제를 발견할 기회도 잃는다. 국정감사는 증인을 얼마나 많이 불러냈는지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정치적 상대를 얼마나 몰아붙였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도 아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묻고, 그 답변을 통해 어떤 권한 행사가 적절했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자리다.
조희대 대법원장 증인 채택 논란 역시 특정 정당의 유불리만으로 볼 일이 아니다. 사법부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면 그 근거와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하고,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그 경계 역시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국정감사에서 필요한 것은 '선택적 견제'가 아니라 '원칙에 따른 견제'다. 삼권분립은 서로 싸우라는 원칙이 아니다. 어느 한 권력도 다른 권력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서로 감시하고 균형을 이루라는 원칙이다.
이번 국정감사가 권력 견제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가 될지는 국회가 어떤 기준으로 증인을 채택하고, 무엇을 묻느냐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국정감사장에 앉느냐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질문이 오가고, 그 질문을 통해 어떤 사실이 확인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국정감사의 질문은 권력을 가진 쪽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결국 국정감사는 증인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데 의미가 있다. 선택적 견제가 아닌 원칙에 따른 견제, 정쟁을 위한 질문이 아닌 국민을 위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이 국회에 맡긴 것은 권력을 위한 국정감사가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라는 국정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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