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캔들’ 지창욱, 익숙함을 벗어나 마주한

시사위크
배우 지창욱이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로 글로벌 시청자 앞에 섰다. / 넷플릭스
배우 지창욱이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로 글로벌 시청자 앞에 섰다. /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지창욱이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였다. 감정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해 왔던 기존의 방식을 내려놓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도 몰랐던 표정과 표현을 발견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을 통해서다.

‘스캔들’은 사랑은 없다고 믿는 조씨부인(손예진 분)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분)이 벌이는 위험한 사랑 내기 앞에 순수한 마음을 지닌 희연(나나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프랑스 고전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다. 지난달 18일 공개 후 2주 만에 글로벌 TOP 10 비영어 쇼 3위에 오르는 등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지창욱은 명망 높은 가문 출신이지만 쾌락과 재미를 좇으며 살아가는 조원을 연기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나눈 사촌누이 조씨부인과 재회한 뒤 위험한 내기에 뛰어드는 인물로, 욕망과 사랑, 미움과 집착 등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을 품고 있다. 지창욱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조원의 마음을 정답 없이 좇으며 인물의 복합적인 면면을 그려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지창욱은 작품을 택한 이유와 캐릭터 구축 과정, 손예진‧나나와의 연기 호흡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조원을 연기한 지창욱. / 넷플릭스
조원을 연기한 지창욱. / 넷플릭스

-‘스캔들’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부담은 없었나. 작품을 택한 이유는. 

“워낙 많은 작품으로 리메이크됐고, 한국에서도 2003년 영화로 만들어져 많이 알려져 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원작이 있다는 점이 도전할 수 있는 큰 용기가 됐다. 정지우 감독님과 작업한다면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처음에는 조원을 두 여자를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들여다볼수록 굉장히 복합적이었고, 인물 간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이런 복합적이고 어려운 감정을 표현해 보고 싶었고,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조원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시리즈다 보니 인물의 서사나 관계의 변화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었고, 그런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조원이 가진 알 수 없는 감정들을 감독님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색다르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떤 해답을 찾아서 그것을 표현해 나가는 작품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의 심리 자체에 해답이 없었다. 계속 흔들리고, 계속 알 수 없는 상태로 표현됐기 때문에 감독님도 나도 ‘이건 이런 감정이야’라고 명확하게 정답을 내려놓고 촬영하지 않았다. 여러 테이크를 가다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새로운 표현이 나올 때가 있었다. 연기하는 나조차 내가 무엇을 표현하게 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테이크들이 있기도 했는데, 추측건대 감독님이 그런 것들을 의도했던 것 같다.”

-평소 연기 방식과는 달랐나.

“나는 연기할 때 배우가 인물과 감정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 과정이 굉장히 혼란스럽고 괴롭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또 재미있었다. 그 안에서 나도 몰랐던 표정이나 표현 방식을 만났을 때는 색다르고 새롭게 느껴졌다. 온전히 정지우 감독님의 의도 위에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도 새롭게 느껴졌던 장면이 있나.

“조씨부인과 조원의 첫 재회 장면이다. 첫 촬영 날 찍었다. ‘이걸 첫 촬영으로 배치한 연출자의 심리가 뭘까’ 굉장히 궁금했다. ‘되게 고약하다, 배우한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도 했다.(웃음) 몸도 풀리지 않았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장면을 찍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감독님은 그 익숙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새로운 지점을 원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만족하기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나오는 미묘하고 새로운 호흡이 있었고 그런 점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희연에게 살려주겠다고 말하면서 무릎을 꿇고 정면을 바라보다 갑자기 웃는 장면도 있다. 그 역시 내가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았던 표현 방식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연기하면서 나오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익숙한 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고민도 있었나.

“그런 고민은 매 작품 한다.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데 가끔은 그게 싫을 때가 있다. ‘왜 내가 하면 너무 뻔해 보이지?’ ‘왜 항상 하던 것처럼 보이지?’ 하는 고민을 매 작품 해왔다. 이번에는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만의 작업 방식을 구축해 나갔다. 굉장히 많은 테이크를 가면서 이런 표현도 해보고, 저런 표현도 해보고, 또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도 시도했다. 모니터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작업했다. 그렇게 감독님과 계속 방법을 찾아가면서 우리만의 작업 루틴을 만들어갔다. 힘들었지만 분명 새롭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조원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굉장히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사람과 닮아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이다. 좋아하면서도 밉고, 사랑하면서도 보기 싫은 마음이 있지 않나. 조원 역시 그런 감정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작품에서는 조원의 감정을 어느 한쪽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어렵다. 굉장히 헷갈리고, 심지어 인물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헷갈려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이 작품의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창욱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넷플릭스
지창욱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넷플릭스

-조원과 조씨부인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했나.

“굉장히 재미있었다. 조원의 성장 과정에서 조씨부인, 조윤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사랑뿐 아니라 조원의 가치관이나 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조원에게 조씨부인은 굉장히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조원이 어린 시절 조씨부인에게 느꼈던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은 관계지 않나. 작품에서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이후 조원이 조씨부인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 역시 사랑이면서 욕심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복수의 과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기보다 복수의 과정과 굉장히 닮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원은 조씨부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너지는 모습도 표현된다. 조씨부인이 조원의 갓끈을 묶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후 조원이 말을 타고 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답답하다는 듯 갓끈을 풀어 헤친다. 그 장면에서 조씨부인에게 답답함과 압박감을 느끼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조원의 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정작 당시의 조원 자신은 그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조원이 희연에게 느낀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고 감독님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조원이 희연에게 ‘따뜻함’을 느꼈다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생각한다. ‘따뜻하더이다’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이 조원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조원은 아주 어릴 때부터 조윤에게 사랑을 느꼈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처를 받았다. 이후 방탕하게 살며 쾌락을 좇았고 난봉꾼이 됐다.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조윤이 줬던 사랑 역시 따뜻한 사랑은 아니었다. 그런 조원이 희연에게 따뜻함을 느낀 순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을 거라고 봤다.

그래서 희연에게 느낀 감정 역시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조원이 희연을 살리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사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작품은 그것을 ‘사랑이다,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판단해서 표현하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감정적으로 본다면 조원은 희연에게 따뜻함을 느꼈고,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었던 것 같다. 작품 자체에서도 문학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표현 방식 역시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청자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도해서 그렇게 연기하지 않았더라도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 역시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매 작품 변주를 멈추지 않는 지창욱. / 넷플릭스​
매 작품 변주를 멈추지 않는 지창욱. / 넷플릭스​

-조원의 마지막 선택과 엔딩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관계가 계속 변화하고, 마지막에는 조원이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배우로서 이런 관계의 변화를 표현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웠다. 내부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감독님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 원래 엔딩은 지금과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엔딩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만족스러웠다. 특히 조원이 바다에 뛰어든 뒤 뱃사공이 ‘아이고, 양반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하는 대사가 좋았다. 그 한마디가 이들의 사랑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자체가 코미디처럼 다가왔다. 이 작품이 북촌의 사람들을 풍자하는 결하고도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런 해석의 여지가 재미있었다.”

-손예진, 나나와의 호흡은 어땠나.

“조씨부인과 조원이 함께하는 장면 중 긴장하지 않았던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서로 웃고 있지만 사실상 싸우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관계다. 그래서 촬영할 때도 굉장히 긴장했고 그만큼 집중도 많이 했다. (손)예진 선배님과의 작업은 꿈 같은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선배님이기도 하고, 함께 작업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파트너이자 동료가 되고 싶어서 정말 많이 긴장하고 준비했다. 굉장히 든든한 동료이자 선배님이었다. 작품 안에서도 기둥 같은 역할을 해줬다.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줬고, 선배님이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와 그만큼 작품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배 입장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나나가 연기한 희연은 작품 안에서 깊이 몰입해야 했고 감정을 계속 드러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현장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들고, 나나가 최대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동료로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 역시 나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노출이나 베드신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준비했나.

“작품의 특성상 노출이나 베드신이 있기 때문에 긴장이나 부담이 없을 수는 없었다. 특별히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거나 근육을 만드는 식의 준비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외적인 모습보다는 연출적인 의도에 더 중점을 뒀다. 우리 작품에서는 베드신이 비주얼적으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공개 후 작품을 두고 호불호가 엇갈렸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애초에 호불호가 없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반응조차 재미있다. 원작과 비교하는 반응이나 작품의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고 충분히 납득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작품을 ‘한국의 브리저튼’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런 작품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같은 작품을 보고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반응들도 이해가 된다. ‘스캔들’을 보고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해주셨고, 그 과정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지우의 스캔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까지 여러 의미가 담긴 감사였다. 처음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는 정지우 감독님이 쓴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호흡이 다소 느리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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