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같은 날, 같은 컨택센터에서 두 건의 민원이 올라왔다. 하나는 배송 지연을 문의한 고객에게 상담사가 농담을 건넨 건이었다. "아이고, 기사님이 길을 잃으셨나 봐요. 저도 어제 치킨 두 시간 기다렸잖아요"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던 말이었다.
돌아온 답은 싸늘했다. "지금 저랑 장난하세요?" 다른 하나는 아버지를 여읜 딸의 전화였다. 딸은 고인의 휴대폰 해지를 문의했고, 상담사는 절차를 안내했다. 그리고 매뉴얼대로 마무리했다. "더 궁금하신 점은 없으신가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고객은 민원 게시판에 한 줄을 남겼다. "사람이랑 통화한 게 맞나요?"
한 명은 너무 자유로웠고, 한 명은 너무 매뉴얼대로였다. 관리자는 머리가 아프다. 고삐를 풀자니 망아지가 되고, 고삐를 죄자니 로봇이 된다. 상담사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알아서 유연하게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매뉴얼대로 안 하면 또 뭐라고 해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요?"
상담 품질을 지키려면 표준은 필요하다. 그런데 표준이 지나치면 상담사는 고객이 아니라 스크립트를 본다. 그렇다고 표준을 풀면 품질은 복불복이 된다.
결국 리더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 정해주고 어디부터 맡길지, 그 경계다. 실마리는 여기 있다. 표현은 자유롭게 두되, 단계별로 성취해야 할 것만큼은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소설에 기승전결이 있듯 상담에도 흐름이 있다. 문의파악, 조건확인, 해결제안, 마무리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리고 단계마다 고객이 경험해야 할 성취기준이 있다. 문의파악 단계의 목표는 고객의 용건과 마음을 함께 읽어 고객이 '이 사람이 내 얘기를 들어주는구나' 하고 믿게 하는 것이다.
조건 확인 단계의 목표는 처리 권한과 조건을 정확히 짚어 고객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다. 해결제안 단계의 목표는 고객 입장에서 최선책을 내놓아 '내 문제가 풀렸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마무리 단계의 목표는 고객이 안심하고 만족하며 전화를 끊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최종 목표는 고객이 존중받고 각별히 대접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기준을 들고 앞의 두 상담을 다시 보자. 첫 번째 상담이 잘못한 것은 표현이 자유로웠다는 데 있지 않다. 문의파악 단계의 목표를 놓친 데 있다. 상담사에게도 목표는 있었다. 분위기를 풀어 고객을 웃게 하는 것. 하지만 그건 상담사가 스스로 정한 목표였다.
이 단계에서 이뤄야 할 것은 고객의 용건과 마음을 함께 읽는 일이었다. 배송을 기다리다 지친 고객에게 필요한 건 웃음이 아니라 "지금 바로 확인해 드릴게요"라는 믿음이었다. 선의는 있었지만 과녁이 틀렸고, 고객은 존중이 아니라 가볍게 취급당했다고 느꼈다.
두 번째 상담사는 반대다. 절차 안내는 완벽했지만 마무리 단계의 목표를 놓쳤다. 아버지를 잃은 딸에게는 "경황이 없으실 텐데, 서류 준비하시다 막히면 언제든 다시 전화 주세요." 같은 한마디가 필요했다.
두 사람의 실수는 말솜씨나 센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각 단계에서 무엇을 이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목표가 비어 있으면 누군가는 자기 감으로, 누군가는 매뉴얼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렇다면 유족용 스크립트를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의 사정은 무한하고 스크립트는 유한하다.
유족, 투병 중인 고객, 방금 사기를 당한 고객 등 경우마다 대본을 쓰다 보면 매뉴얼은 끝없이 두꺼워지고, 상담사는 대본을 찾느라 정작 고객을 놓친다. 모든 경우의 대본은 만들 수 없지만, 모든 경우에 통하는 목표는 세울 수 있다. 물론 목표를 알려준다고 바로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보자. 누구나 기우뚱기우뚱한다. 왼쪽으로 쏠렸다가 오른쪽으로 쏠렸다가, 그러면서 몸이 균형감각을 익힌다.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운 사람은 없다. 상담의 감각도 그렇다. 망아지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로봇 쪽으로 기울기도 하면서 균형을 터득한다.
이 기우뚱한 시간을 줄이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자전거 뒤에서 '그렇지, 잘한다' '조금만 왼쪽' 하고 외쳐주던 사람처럼, 리더는 그날의 좋은 한마디를 바로 찾아 어느 단계의 목표를 해냈는지 모두에게 알린다.
선을 넘은 장면도 알리되, 실수한 상담사의 이름은 감추고 사례만 공유한다. 넘어졌다고 창피를 주면 아무도 다시 페달을 밟지 않고 매뉴얼 뒤로 숨어버린다. 실수는 혼내는 재료가 아니라, 모두가 균형을 배우는 교재여야 한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성신여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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