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없어도 괜찮습니다
- 안예은 ‘노앵설’ 중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환경범죄’는 말 그대로 환경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는 불법 행위다. 일본 구마모토현의 수은 유출로 발생한 ‘미나마타병’, 미국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가 대표적 예다. 모두 높은 경제적 이익에 비해 적발과 처벌 위험이 낮아 발생한 환경범죄이자 재난이다.
기후변화, 환경보호가 대중적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재, 환경범죄의 위협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디지털·에너지 전환에 따른 핵심 광물 수요 증가, 환경규제 준수 비용 상승, 멸종위기종 등 희귀 생물에 대한 가치 상승은 범죄의 경제적 유인을 키우고 있다.
이처럼 은밀하고 복잡해지는 환경범죄의 대응 수단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지구관측(EO)’ 기술이다. 인공위성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EO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측, 불법 산림 훼손과 채굴, 폐기물 투기, 불법 어업 등 지상에서 포착하기 어려운 환경범죄의 흔적을 추적한다. 조선시대, 음험한 비밀과 잘못을 꿰뚫어 보던 전설의 존재 ‘노앵설(老鶯舌)’처럼 말이다.
◇ 숲·바다까지 훑는다… 실제 단속서 입증된 ‘하늘의 눈’
지구관측(EO, Earth Observation)은 센서가 탑재된 인공위성, 드론, 항공기로 지구 표면, 대기, 해양 등 환경 변화를 원격으로 탐사하는 기술이다. 식생, 토양, 물, 가스는 각각 다른 ‘분광 신호’를 방출한다. 이를 EO를 활용해 측정·분석하면 산림 훼손, 수질·대기 변화, 선박 이동 등 환경범죄의 핵심 증거 포착이 가능하다.
특히 최근에는 AI기술의 발달로 EO 시스템 전반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관련 시장 규모도 매년 급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The Business Research Company)’에 따르면 AI기반 지구관측·모니터링 시장 규모는 2030년 90억2,000만달러(약 12조2,37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20.4%다.
실제로 EO를 활용한 환경범죄 단속은 국제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IAI)’가 22일 발표한 ‘환경범죄 대응을 위한 지구관측: 전 세계 이용자와 활용 사례 검토(Earth Observation Against Environmental Crimes: A Review of Users and Usages Worldwide)’ 보고서에서 확인 가능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산림훼손·수자원 절도 등에 ‘El Guardián Forestal’ 시스템을 도입 운영 중이다. 위성영상과 AI알고리즘을 활용, 아보카도 산지와 산림훼손, 저수지 변화를 감시한다. 멕시코 정부에 따르면 산림훼손 탐지 정확도는 84~92%, 수자원 탐지 정확도는 96% 수준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지난해 멕시코에서는 3,000여개의 불법 과수원의 수출이 차단됐다.
2022년 벨기에 플랑드르에서는 불법 토지변경을 EO로 단속했다. 벨기에 정부는 그해 약 6만 개 토지 구획을 검사했다. 그 결과 2,205건을 선별, 136건의 현장조사 시행과 17건의 벌금을 부과했다. 아울러 같은 해 6월 인도양 Zélée Bank 해양보호구역에서 프랑스 정부는 위성으로 소형 선박을 포착한 뒤 순찰선이 출동해 불법 어획물 126㎏ 등을 적발하기도 했다.
IAI는 EO의 핵심 장점으로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고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의심지역을 선별해 현장조사 대상을 좁히고, 접근이 어려운 지역까지 감시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위성감시는 실제 환경범죄 억제 효과로도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 12조원 시장으로… 민간으로 확장되는 AI·EO 생태계
환경범죄 수사 및 예방에 높은 효과가 기대되면서 관련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 우주프로그램청(EUSPA)’에 따르면 전 세계 EO 데이터·서비스 시장 매출은 2024년 35억유로(약 5조3,907억원)에서 2034년 79억유로(약 12조1,669억원)로 두 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기후·환경·생물다양성’ 분야가 EO매출의 22%를 차지한다.
산업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EO산업은 국가 주도의 위성 개발과 공공기관의 영상 활용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하지만 최근엔 환경범죄와 같이 활용 단계가 세분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민간 시장 영역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EUSPA에 따르면 실제 유럽 EO산업 내 96%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다.
다만 환경범죄 분야는 이제 막 상업화가 본격화되는 틈새시장에 가깝다. IAI 역시 “민간 EO 서비스가 환경범죄에 기여하고 있다”면서도 “무료 공공위성 자료의 존재, 높은 상업 서비스 비용, 환경범죄 분야에서의 좁은 활용 범위 때문에 아직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정부기관과 민간기업 간 협력을 통한 시장 확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내 역시 위성 관련 AI기반 EO산업의 핵심 데이터가 될 수 있는 고해상도 표준영상을 대규모로 민간에 제공할 예정이다.
29일 우주항공청은 다목적실용위성이 촬영한 고해상도 표준영상 약 6만7,000장을 무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내 위성활용기업의 AI혁신기술 개발 지원을 위해서다. 표준영상은 기하·방사보정 등 표준 처리를 마쳐 별도 가공 없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위성영상이다.
고성능 EO와 같은 위성영상 기반 AI모델을 개발하려면 학습·분석·검증에 대량의 영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고해상도 영상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기술개발에 제약이 있었다. 이에 우주항공청은 지난 7월 발표한 ‘대한민국 우주항공 산업육성전략’의 핵심과제로 표준영상 공개를 반영, 이번 시범 공개를 추진하게 됐다.
이번에 공개하는 표준영상은 ‘다목적실용위성 3호·3A호’로 2025년에 해외지역을 촬영한 광학영상이다. 공개 표준영상은 국내기업이 AI모델 등 위성활용 기술개발 및 활용서비스 개발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습한 AI모델과 서비스 상용화도 가능하다. 단, 공개 영상 자체의 판매나 재배포는 금지된다.
우주항공청의 표준영상 공개가 환경범죄 단속을 위한 EO 개발의 직접적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환경범죄 탐지 역시 대량의 고해상도 영상과 AI 분석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공공 위성데이터 개방은 향후 국내 환경감시 서비스 시장 확대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국가가 축적해 온 국가위성 표준영상을 민간에 과감히 개방해 우리 기업들의 인공지능 기반 혁신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이번 시범 공개를 시작으로 공개 규모와 방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민간 중심의 위성정보 활용산업 생태계를 키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 ‘범죄 포착’과 ‘유죄 입증’은 다르다… 남은 법·제도의 장벽
다만 AI EO기반의 환경범죄 단속·예방에는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넘어야할 장벽이 다수 산적해 있다. 대표적으로 법률상 문제다. 위성영상은 불법 산림훼손이나 폐기물 투기 등 범죄의 흔적을 포착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특정 행위자의 범죄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IAI는 “위성이 수상한 흔적을 포착하는 것과 당사자 혹은 기업, 단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법정에서 입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EO에서 찾은 자료는 ‘상관관계(correlation)’는 보여줄 수 있지만 ‘인과관계(causation)’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한 AI 분석 결과의 증거능력과 신뢰성도 쟁점이다. AI기반 EO를 사용할 경우, 위성에서 촬영한 원자료를 AI가 분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원래 데이터가 AI에 의해 보정·가공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챗GPT에 이미지 보정을 요청할 시,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원본 사진 데이터는 이미 손상된 것과 유사하다. 이 경우, 데이터가 훼손되거나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법정에선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사생활 침해다. EO로 주변 지역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국내선 이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현행 ‘우주개발 진흥법’ 제17조 제3항에 따르면 “정부는 위성정보를 활용할 때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위성정보 활용 자체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범죄 수사나 감시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공익성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명확한 기준이 요구된다. 특히 AI 분석을 통해 특정 지역·행위자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기술이 확대될수록 정보 수집 범위와 활용 한계를 둘러싼 법적 논의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IAI 역시 위성이 영상·동영상·음향·위치정보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할 경우 데이터보호법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개인을 넘어 난민캠프나 취약 집단처럼 집단에 관한 민감정보가 드러날 가능성도 우려했다.
IAI는 “위성을 통해 사적 공간이나 개인의 위치를 관찰할 경우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가 드러날 수 있다”며 “사생활 보호권과 환경범죄 수사라는 공익 사이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EO시스템을 가동하기 전 사전 현장 조사를 통해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며 “코스타리카에서는 이 방식이 수사의 정확도를 높이고 불명확한 정보 때문에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고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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